[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부러진 삽 이야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부러진 삽 이야기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9.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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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8월 14일 제247호 본지에 발행된 ‘이불뭉치 이야기’ 후속편 ※편집자 주

내 이름은 부러진 삽이야. 영어로는 'Broken Shop'이고. 처음에 난 이름이 없었어. 그냥 사람들이 삽이라고 불렀지. 근데 그건 보통명사야. 사과, 배, 별, 나무처럼 편의상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지어 붙인 거지. 태어나서 난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 주로 공사 현장이었지. 난 구로구청으로 팔려갔는데 거기서 잔뼈가 굵었지. 취로사업이란 게 있는데 넌 아마 잘 모를 거야. 좀 가난한 주민들 생계를 보조하기 위해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공공근로사업이야. 주로 부녀자나 노인들이 하는 일이지. 난 구로구의 관내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면서 일을 했어. 그 사람들이 쉴 때는 날 내동댕이치고 가는 바람에 어느 땐 비도 흠뻑 맞고 그랬어. 몇년 동안이나 눈도 맞고 비도 맞고 어떤 때는 화가 난 노동자가 날 가지고 시멘트벽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에 골병도 들었어. 너도 알다시피 삽 자루인 내 몸은 나무잖아. 그러니깐 세월이 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썪는 거지. 하루는 화단공사를 하는데 공사장의 십장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담당 공무원한데 한바탕 욕을 먹었어. 근데 그 사람이 간 뒤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십장이 마침 화단에서 삽질을 하고 있던 늙은 인부한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어. 삽질을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하면서 말이야.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이던데 그 사람도 너무하데.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길옆 가로수에서 들리는 매미소리가 요란했지. 내가 그 소리를 왜 기억하냐면 바로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난 늙은 인부가 나를 보도블럭에 패대기쳤기 때문이야. 그 순간 그렇잖아도 늙고 병든 내 몸이 딱 두 동강이가 났어. 그러자 쇠로 된 보습은 돈이 되니까 다른 인부가 가져가고 낡고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는 삽자루는 화단에 버린 거지. 그래서 보습과 난 생이별을 하게 된 거야. 본래 한 몸이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궁금해진 이불뭉치가 귀를 쫑긋하며 채근을 했다2010년 11월 22일 오후 3시경, 왕치(Wangzie)는 지하철 구로역에서 내려 문래예술공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문재선이 대표로 있는 판아시아 퍼포먼스 페스티벌(PAN Asia Performance Festival)이 있는 날이다. 왕치는 문래예술공장에서 가까운 사거리 대로변에 서서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그는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으로 꺾어들었다. 문래예술공장은 거기서 오백미터 거리에 있었다. 왕치가 약 십 여 미터쯤 걸어갔을 때 보도 옆에 화단이 있었다. 초겨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꽃나무는 시들어 가지만 앙상했다. 왕치는 이 을씨년스런 광경에 잠깐 눈길을 주었다. 순간 누렇게 메마른 꽃나무 사이로 부러진 삽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왕치가 약 십여 미터 정도 걸어가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가던 발길을 돌려 다시 화단으로 갔다. 그는 삽자루를 집어들었다. 자루에는 빗물에 튀었는지 모래가 묻어 있었다. 왕치는 걸어가면서 손으로 모래를 탈탈 털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뭐가 좋을까? 부러진 삽자루라. 옳지, 그러면 부러진, 영어로는 'Broken'이 좋겠군. 그 다음에 삽은 영어로 하면 'Shop'에 가깝지. 그럼 '부러진 삽'이라 하고 영어로는'Broken Shop'으로 부르면 되겠구나. 왕치가 문래예술공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왕치는 그 중 한 사람에게 유성 사인펜을 달라고 해서 멋지게 이름을 써넣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나서 마침 자리에 있던 참여작가들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성능경, 문재선, 조은성, 슈양(Shuyang), 미야끼 이누까이Miyaki Inukai), 김진수 등이 사인을 한 뒤 부러진 삽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좌담(Round Table)

Very Funny G.P.S (G.P.S) : '이불뭉치'니'부러진 삽'이니 하는 이게 다 무슨 소린가?

Yoon Jin Sup(Y.J.S) :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에 의인화의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좀 재미있게 끌고가기 위해 당의정을 입혔다.

So So(S.S) : 의인화란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말인가?

Y.J.S : 그렇다. 장자가 우화적 수법을 썼듯이 때론 그런 방법도 효과적일 수 있다.

G.P.S : 너무 사람의 관점에서 사물이나 사건, 사태를 보니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거 아닌가?

Y.J.S : 다분히 그런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질 필요가 있다.

S.S : 연재하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구분없이 오락가락 한다.

Y.J.S : 그것이 상상력의 특권 아닌가? 그러나 시간의 앞뒤 순차는 있을지 몰라도 사건은 분명히 일어난 것이다. 제시된 사진자료가 말해주지 않나? 또한 복수의 등장인물이 자신의 관점과 경험에서 동일한 사태를 진술하는 것도 특이하다.

G.P.S : 예를 들자면?

Y.J.S : 골목에 버려진 이불뭉치를 두고 지족거사와 허무한 씨, 그리고 맨 처음 도입부에 등장하는 '나'의 대목이 그렇다.천둥치는 이 밤에(천둥) : 이들은 동일한 인물들인가 서로 다른 인물들인가?Y.J.S : 같은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So So : 글을 읽다보면 허무한 씨는 이불뭉치가 버려진 사건의 현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 같은데?

Y.J.S : 주민일수도 있지만 먼 곳에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나?

G.P.S : 출근시간에 늦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불뭉치를 집에 가져다 두고 오는 걸 포기하지 않았나? 그래서 결국은 잃었고.

Y.J.S : 부산에 사는 허무한 씨가 서울에 출장와서 일보러 가는 것도 출근하는 일이다. 직장이 어디라는 말은 없었다.

S.S : 따지고 보니 그렇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 부러진 삽을 화단에 버린 인부의 이야기는 실제인가?

Y.J.S : 실제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걸로 안다.

G.P.S : 그런 걸로 안다고? 그럼 사실이 아니고 허구가 아닌가?천둥 : 반드시 허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서울에서 일부러 부러진 삽자루를 그런데 버리는 경우는 없으니까.

S.S : 사실일 수도 있지. 트럭의 짐칸에 타고 지나가던 어떤 노동자가 친구와 장난을 치다 삽자루가 부러지니까 쓸 모 없다고 판단해서 던져버린다는 게 화단일 수도 있고.일동 : 맞네(다 같이 웃음)

So So :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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