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패랭이꼭지에 가화를 꽂고, ‘춤추는 홍길동’
[윤중강의 뮤지컬레터]패랭이꼭지에 가화를 꽂고, ‘춤추는 홍길동’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09.3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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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한국뮤지컬의 한계에 대해 늘 생각한다. 여러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뮤지컬은 어떻게 소재를 다양하게 해서, 뮤지컬의 수용층을 넓힐 수 있을까? 한국뮤지컬은 어떤 작품을 계발해서, 세계뮤지컬시장에서 당당하게 ‘한국뮤지컬’을 내세울 수 있을까?

‘재미있는 영웅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갑작스러운 얘기로 들리겠지만, 난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과연 ‘즐거운 영웅’을 뮤지컬(음악극)으로 누가 만들어 낼까? 또한 ‘즐거운 영웅’은 누구일까? 홍길동이다.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어린이를 주 관객으로 한 작품이라도 좋다. 국악을 많이 살리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리 상관이 없다. 한국의 음악극에서 지금까지 찾아보지 못했던 ‘즐거운 영웅’을 잘 그려내면 좋다.

노래와 춤이 있는 뮤지컬을 선호하는 관객은, 일단 심각하고 어려운 작품보단,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원한다. 뮤지컬 ‘조로’와 뮤지컬 뮤지컬 ‘스카렛 펌퍼넬’이 대표적이다. 작품을 보면서 ‘유쾌, 상쾌, 통쾌’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적인 소재로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홍길동’이다.

홍길동과 같은 작품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홍길동의 고향은 어디일까? 홍길동이 태어난 곳은 어딜까? 창덕궁 앞 권농동이다. 지금 돈화문국악당이 있는 바로 옆이다. 여기에 허균이 살았고, 거기서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한다.

홍길동은 허균은 완전 새롭게 만들어낸 인물인가? 아니다. 홍길동이란 이름이 저자거리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회자되었다. 홍길동(洪吉同)이란 의적이 있었다. 허균은 이름의 마지막 한자를 아이 동(童)자로 고쳐서 작품을 완성했다. 실존인물을 가져와서 ‘의적(義賊) 스토리’를 만들었고, 여기에 조선의 백성들은 환호했다.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인 의적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늘 혹하게 되는 소재가 아닌가!

홍길동의 매력은 ‘초-능력’ 상황과 ‘지능형’ 수법에 있다. ‘도술을 부릴 수 있어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한다’는 점이 홍길동의 매력이자, 관객이 궁금해 하는 지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무대적 해결을 요한다. 얼마 전 본 한국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은 일반인들이 ‘초-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실제 배후를 접근한 영화였다. 마치 마술사만 알고 있던 ‘마술의 비밀’을 공개한 기분이랄까?

홍길동이란 인물과 연관된 ‘믿지 못할 실상’이 실제 활빈당과 당시 민중들의 도움으로 성사된 것이라는 설정이 가능하다. 이런 내용에 요즘 관객들은 더 반응할 것이다. 홍길동이 재밌어지려면, 홍길동을 적서차별(嫡庶差別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런 내용은 더 이상 요즘 관객들에게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홍길동은 현대의 시대로 살려낸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장르인가? ‘만화영화’를 통해서 홍길동은 거듭 태어났다. 만화의 인기를 더하면서, ‘우리나라 최초 장편만화영화’가 탄생되었다. 신동헌이 총지휘를 맡았고, 신동우 화백이 구성을 맡은 만화영화를 통해서다. 1967년 1월 21일, 홍길동은 다시 한국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글자로 존재했던 홍길동의 실제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홍길동하면 연상되는 것이 ‘패랭이’로, 초립(草笠)의 일종이다. 패랭이는 서민의 상징이다. 조선시대의 포졸과 보부상과 연관된다. 그들은 서민일지라도 움직임의 반경이 크면서, 생활력을 강하게 부각하게 하는 이미지다.

전해오는 농부가에는 이런 사설(가사)가 있다. “패랭이 꼭지에 가화(假花)를 꽂고서 마구잡이 춤이나 추어보세” 이 노래는 홍길동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가화(假花)는 실제 꽃이 아닌 꽃을 말하면, 종이 등으로 접어서 만든 꽃을 말한다.

이 가을, 돈화문국악당에서 펼쳐지는 ‘돈화문나들이’에는 홍길동이 등장을 한다. 그리고 농부가의 노래 사설을 실제로 보여준다. 홍길동의 패랭이모자에 ‘가화’가 더해진다. 그러니까 과거 신동우 화백이 만든 홍길동의 이미지를 이어가지만, 여기에 가화가 더해지는 거다. 의적 홍길동 일행이 선행을 베풀고 간 곳에는 가화(假花)가 놓여있는 설정이다. ‘조로’는 못 봐도, 상황이 순조롭게 해결된 후 조로의 심볼을 보는 것과같다. 일지매가 ‘한 가지의 매화’를 그려놓고 떠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홍길동은 그간 여러 형태의 작품 속에 존재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존재인 홍길동을 누구 놓치겠는가? 하지만 매우 아쉽게도, 지금 한국에서 ‘홍길동’은 음악극(뮤지컬)의 콘텐츠로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예전 뮤지컬로 홍길동이 만들어진 바 있다. 아쉽게도 나는 못 봤고, 또 공연은 계속되지 못했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홍길동을 살려냈으면 좋겠다. 누군가 ‘홍길동’을 뮤지컬의 영역에서 빛을 보게 해야 한다. 그게 홍길동을 살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국뮤지컬이 다변화되는 한 방법이다. 1967년, 홍길동이 애니메이션 (만화영화)로 성공했듯이, 누군가 홍길동을 가지고 음악극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홍길동은 어느 시대에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지금과 같은 한국에선, 홍길동과 관련 캐릭터를 더욱더 원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