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잇기] 어느 예술가 부부의 죽음 … ‘더 나은 삶’의 끝
[박희진의 문화 잇기] 어느 예술가 부부의 죽음 … ‘더 나은 삶’의 끝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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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지난달 16일, 이 시대 예민한 사회문제들을 영상이나 퍼포먼스 등의 예술작품과 전시 등으로 세상에 알려오던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의 이정미(48), 진시우(44) 작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정미, 진시우 작가와 김화용(41) 작가가 집단으로 미술 작업을 하며 만들어진 그룹 ‘옥인콜렉티브’는 2009년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던 서울 종로 옥인시범아파트에서 진행된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은 옥인콜렉티브 일원인 김화용 작가가 거주하던 옥인아파트의 강제철거를 도시의 공동체적 사회문제로 바라보고 2009년 7월부터 이를 예술작업으로 이어가다 2010년 인권재단에서 제안을 받아 ‘옥인아파트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옥인콜렉티브는 도시 공간의 재개발 문제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부당해고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사회 비판적인 미술 작업을 협업으로 진행하여 ‘사회적인 작가 그룹’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들의 작업은 자신들만의 무대가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데에 의미를 뒀다. 이들은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예술이 아니라 사회문제와 직면한 그들의 처절함에 공감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도심 속에 공동체, 연대(連帶)의 의미와 한계를 그들은 모두 예술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신들의 작가 생활에서 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옥인콜렉티브의 예술작업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3명이 ‘함께’하기 위해 작품 논의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며 협업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것이 부족함을 서로 채워가며 도전하기에도 좋다고 했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모두의 사회문제를 ‘삶의 고민’으로 ‘함께’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옥인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라이브 퍼포먼스, 2014(사진=박희진 제공)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창 활동 중에 있던 옥인콜렉티브 두 작가의 갑작스런 죽음 뒤에는 생전에 남긴 메시지와 추측성 소문들, 두 작가의 지인들의 말들이 이어지고 있다.

죽기 전 두 작가가 남긴 전자우편의 메시지 내용을 보면, 지난해부터 어려움이 있었던 그룹 내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룹의 운영을 맡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룹의 운영을 감당하지 못한 점을 자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작가로서 ‘작업을 만드는 사람’으로, ‘예술이 전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메시지로 전했다.

언론들은 이들의 죽음을 ‘생활고’로 연결지어 예술인복지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예술작업에 몰두하기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노동의 가치를 찾고, 예술인이란 직업의 권리와 지위가 보호받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바보 예술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분명한 생계대책이 있어야 한다.

옥인콜렉티브가 이러한 우리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문제를 자신들의 작가적 삶과 일치시키던 이들이 예술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회와 ‘함께’ 하는 데에 가치가 소멸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것은 아닐까. 예술가의 고단한 삶이 오롯이 예술의 길을 택한 예술가 개인의 삶의 몫이라고 착각하는 지금 우리 사회의 해체된 공동체에 대한 허탈감은 아니었을까.

바뀌지 않는 사회인식 속에서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고 최선을 다해 예술을 해왔던 이들의 죽음을 ‘생활고’라고만 단정 짓지 말아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로 똘똘 뭉쳐진 해체된 공동체 속에 이들이 바라본 사회문제로의 예술작업이 얼마나 괴리감이 컸을지 필자는 짐작해본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로 보고 그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길 바랐던 세계가 주목한 젊은 예술가 이정미, 진시우 작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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