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문경새재가 아리랑고개인가?
[김승국의 국악담론] 문경새재가 아리랑고개인가?
  •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19.09.30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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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 김승국 노원문화재단 이사장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민요이다. 해외동포는 물론 북한 동포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공통언어이다. 우리 민족과 아리랑이 함께한 시간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였겠지만 대표적인 우리의 민요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후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26년 10월 춘사 나윤규가 제작하고 직접 주연으로 출연한 무성영화 ‘아리랑’의 주제곡인 ‘아리랑’은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우리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영화 ‘아리랑’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겁탈하려던 오기호를 죽인 영진이가 수갑을 차고 일본 순사에 끌려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구성진 변사의 설명 뒤로 절절히 흐르던 주제곡 ‘아리랑’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며 마음 속 깊이 아리랑을 새겨 놓았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아리랑이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흔들어 놓은 것은 영화 ‘서편제’이다. 주인공 딸 송화(오정해 분)와 아버지 유봉(김명곤 분)이 남도(南道) 길을 걸어가며 육자배기 토리로 매기고 받으며 구성지게 부른 <진도아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도 남았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 ... > 그런데 호남의 노래 <진도아리랑>에 왜 영남의 ‘문경새재’가 등장할까? 진도아리랑에서 ‘문경새재’를 아리랑고개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문경새재’를 아리랑고개로 연상해보기에 충분하다. 

<진도아리랑>은 전남 진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이라는 뜻으로 <진도아리랑>이라 부르지만 실은 남도(南道)에서 두루 부르던 노래다. 이 노래를 새롭게 편곡한 사람은 전남 진도 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53)로 알려졌으며 당시 박종기 등 이 지역의 음악인들이 모여 이 노래의 노랫말을 짓고, 선율을 다듬었다 한다. 

문헌 상 처음으로 ‘아리랑’에 ‘문경새재’가 등장하는 것은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가 1896년 오선악보로 남긴 ‘아리랑’에서이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오 아르랑 얼사 배띄어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맹이 다나간다> 이 노래는 경북에 있는 ‘문경새재’를 거론하였지만 동부민요의 메나리 토리가 아닌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하는 경(京)토리 선율구조로 되어있다. 

'문경새재'는 이어 조선조 말 음악교육자인 이상준(李尙俊, 1884~1948)이 1914년 펴낸 『朝鮮俗曲集(조선속곡집)』에 오선악보로 소개된 <아르랑타령>에도 등장한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 아리령 아리령 아라리오 아리령 띄여라 노다가게 /....> 이 노래 역시 경토리 선율구조이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께 방망이>는 전국적으로 당시 대중들 사이의 야한 유행어로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 된다. 왜냐하면 ‘홍두깨’는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나무를 가운데가 약간 굵고 양 끝으로 가면서 약간 가늘게  둥글고 길게 깎은 방망이로, 길이가 보통 70cm나 되며 옛날에 뻣뻣한 옷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드는 데 썼다. 조선조 말에는 여인네들은 홍두깨를 남자의 성기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말을 불쑥 꺼내거나 뜻밖의 일을 당했을 때 사용하는 속담으로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당시 수절하는 여인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남정네가 흑심을 품고 담을 넘어와 규방(閨房)에 들어오는 황당한 상황에서 이러한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문경새재’는 경남 밀양시 지명이 달린 <밀양아리랑>에도 등장한다. 지금의 <밀양아리랑>의 가사는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로 시작하지만 1926년 대구 달성권번 출신 김금화(金錦花)가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한 초기의 <밀양아리랑타령>에는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시고 날 넴겨줄까 / 문경아 새자는 웬 고개드나 구부야 구부로 눈물이 난다 / 아리아리랑 어리어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시고 날 넴겨줄까 / 정든 님 오시난디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끗 / 아리아리랑 어리어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얼시고 날 넴겨줄까>이다. <밀양아리랑>에 ‘문경새재’가 등장하는 것도 또한 흥미롭다. <밀양아리랑> 역시 서울 경기민요의 특징이 드러나는 경토리 선율구조이다.  

물론 문경지방에서 부르는 <문경아리랑>에도 ‘문경새재’가 등장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 문경새재에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 /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가 좋아 큰 애기 손길로 놀아나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 문경새재를 넘어갈 제 구비야 구비 구비가 눈물이 나네> <문경아리랑>은 지명답게 문경지역의 선율구조인 메나리 토리이다. 일부 사람들은 ‘문경새재’가 바로 그 ‘아리랑고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리랑의 역사가 유구한 <정선아리랑>에도 아리랑고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렇게 ‘문경새재’는 문경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아리랑에 등장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오고 갔을 ‘문경새재’는 경북 문경을 넘어 모든 지역의 상징적인 ‘아리랑고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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