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두 개의 퍼포먼스-김남식의 ‘검은 사각형’과 이나현의 ‘안무노트’
[이근수의 무용평론] 두 개의 퍼포먼스-김남식의 ‘검은 사각형’과 이나현의 ‘안무노트’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9.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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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전형적인 극장식 무대공연을 떠나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색다른 의미가 있다. 갤러리 전시실 공간에서 관객들에 둘러싸여 펼쳐진 김남식의 ‘검은 사각형’과 강의형식을 빌린 이나현의 렉쳐퍼포먼스 ‘안무노트’를 보았다. 

서울 숲 안에 뾰족이 솟은 쌍둥이 건물 지하에 위치한 페이지 갤러리가 ‘검은 사각형-의미 없음의 의미’(9,4~6)‘의 무대다. 러시아의 전위적 화가인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의 단색화인 ‘블랙 스퀘어(black square)’가 원작이다.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화가의 평면화를 무용가의 몸으로 입체화한 퍼포먼스였다. 이어진 세 개의 장방형 전시공간이 무대다. 검정색 사제복에 검은 망사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김남식이 검정색 천으로 말아놓은 스테인리스 원통을 두 발로 굴려 이동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손에는 작은 종을 들고 두 줄로 몸에 연결한 방석크기의 검정색 사각형더미를 끌고 입장한다. 무대 한 쪽에 8m 사방의 커다란 검은 사각형이 마련되어 있다. 퍼즐을 맞추듯 그는 운반해온 작은 사각형으로 커다란 정사각형의 빈 곳을 하나씩 메워간다. 100개의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사각형이 완성되면 한쪽 코너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전혁진이 내려와 핑크색 천을 펼치며 검정색 위를 덮는다. 색과 색이 만나고 면과 면이 겹쳐진다. 검정색 사각형 하나를 머리에 이고 두 번째 공간으로 이동하는 김남식을 따라 관객들도 천천히 움직인다. 검은 사각형을 중심으로 전시장 가운데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4각 코너에 앉아있던 네 명의 무용수(최명현, 이바다, 조재현, 신유진)와 김남식이 번갈아가면서 검은 사각형을 펼치고 접는 동작을 리드미컬하게 반복한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하얀 소금밭(혹은 모래밭)의 중심에 검은 사각형이 놓여 있고 한 쪽 코너에 액자에 담긴 말레비치의 그림이 천정 높이 걸려 있다. 위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검은 커튼을 뒤로 하고 최재혁은 쉬지 않고 고무래로 하얀 소금밭을 일군다. 전시장의 다른 한쪽 벽면에 걸린 분홍색 사각형 그림은 또 하나의 배경이다. 말레비치의 사각형 시리즈 작업은 검정색(Black Square on White Ground, 1915)과 붉은색(Red Square, 1915) 흰색(White on White, 1918)들로 이어진다. 그에 있어서 형태를 배제한 완전한 단색은 순수함의 절대적 표현이다. 그에게 절대주의(suprematism)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점차로 순수성을 잃어가는 현대예술에서 “의미 없음의 의미‘로 이름 붙여진 퍼포먼스의 부제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의 추상적 움직임이 절대적인 순수성으로서 무용예술계를 신선하게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무노트 2019’(8.31~9.1, 플랫폼엘 라이브홀)는 이나현이 강의형식으로 보여준 자신의 안무법이다. 그녀는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바지차림의 단정한 선생님 모드다. 부드럽고 맑은 음색이 설득력 있게 강의를 풀어나간다. 유럽에서 귀국한 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자신의 작품 ‘Below the Surface'(2003)의 솔로영상이 먼저 벽면에 뜬다. 안무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이고 무용수의 움직임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안무가의 능력이라고 그녀는 운을 뗀다. 무용수들 간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이 그녀에겐 첫 번째 어려움이었다. 세 무용수(강요섭, 최희재, 전소희)가 강의보조자로서 동작을 실연한다. TV에서 스포츠경기를 즐겨 시청한다는 그녀는 춤을 만들기 위한 재료의 하나로 테니스동작을 분석한다. 서브동작, 서비스 리턴과 서버의 대응...그 세밀한 동작의 특징을 포착하는 것이 춤을 만들기 위한 그녀의 첫 번째 작업이다. 선수들의 동작은 두 사람간의 대화를 닮았다. 말없이 몸으로만 오고가는 선수간의 대화를 그녀는 2인무로 만든다. 선수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판정하는 심판이 필요하다면 이는 3인무가 될 것이다. 테니스동작을 모델로 창조되는 안무과정에서 발견된 우연을 놓치지 말아야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춤이 음악에 종속되는 것이 싫은 그녀는 먼저 춤을 만들고 이에 맞는 음악을 찾아내거나 작곡을 의뢰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자신이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 이유를 그녀는 다른 무용수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모델로 상정하고 따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무용수 각자의 개별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50분간 지속된 강의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 혹은 질문시간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의문은 ’안무를 주제로 한 강의가 공연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이 무료로 진행하고 있는 ’춤추는 강의실‘ 시리즈의 9월 특강주제도 안무였다. ’렉쳐퍼포먼스‘가 지원금의 수혜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용 강의와 어떻게 차별화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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