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창극 ‘만세배더늠전’,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배우여러분께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창극 ‘만세배더늠전’,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배우여러분께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10.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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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창극 ‘만세배더늠전’은 수작입니다.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의 역량이 발휘된 작품입니다. 기대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제야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그간 나는, 남도(南道)의 창극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십여 년 전 전주에서 본 창극은 범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로선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썼고, 몇 가지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비평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비판을 비난으로 왜곡’할 때, 평론가는 함구(緘口)합니다. 전통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고, 창작의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작품을 거론한다는 건, 평론가에게도 매우 소모적일뿐 이었습니다.

이미지를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판소리의 대가들이 단원들로 포진해 있지만, 창극의 결과물에 대해선 아쉬움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 ‘만세배더늠전’을 보면서, 그간의 선입견이 다 사라졌습니다. 좋은 대본과 좋은 연출을 만났을 때,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도 국립창극단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니,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은 국립창극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잠재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창극 ‘만세배더늠전’은 전라북도의 얘깁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냈던 이 지역 사람들의 얘기를 창극으로 풀어냅니다. 일제의 수탈을 이겨낸 전라도 사람들의 끈기와 긍지가 느껴집니다. 전라도의 기름진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뚤린 ‘전군가도 건설’을 포함해서, 군산미선공 파업과 이엽사농장 소작쟁의를 다룹니다. 전주, 익산, 삼례, 김제, 군산, 옥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일제강점기 ‘만세배’를 타고 저마다의 얘기를 진솔하게 풀어냅니다. 우선 대본이 좋았습니다. 임영욱과 고선웅이 공동집필했습니다. 임영욱은 전통적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떠오르는 작가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고선웅은 판소리의 율격(律格)을 참 잘 아는 작갑니다.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가져와서, 이 작품에 맞게 변형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되더군요. 그는 판소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임을 확인합니다. 전통판소리의 사설과 상황이 그의 몸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에, 기존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창작이 가능합니다. ‘더늠’이라는 것이 보통 판소리의 소리(노래)에 해당되는 것인데, 고선웅을 통해서 판소리의 사설(대본)이 ‘더늠’이라는 형식을 가져와서 업그레이드되는 걸 확인했습니다. 창극 ‘만세배더늠전’을 통해서, 판소리가 다룰 수 있는 ‘시대적, 장소적, 상황적’ 영역이 매우 자연스럽게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창극 ‘만세배더늠전’은 작가 고선웅을 협력연출로 해서, 이왕수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의 연출가발굴 ‘출사표’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연출가로 데뷔했지만, 그는 그간 많은 국악공연에서 기획구성과 무대감독에 참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판소리를 전공했다는 것이 그의 연출자로서 큰 장점이라는 걸, '만세배더늠전‘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배우의 등퇴장이나, 소리를 통한 극적완급(劇的緩急)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간 창극에는 많은 연출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창극모습을 형성하기까지, 이정표가 된 분은 허규(1934~2000)입니다. 내가 실제 객석에서 지켜본 삼십여년의 창극을 돌이켜보면, 다음 다섯 분에서 특히 자기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다섯 분은 판소리를 제대로 아는 분입니다. 손진책, 김명곤, 지기학, 고선웅, 주호종의 대를 이어서, 이왕수는 창극연출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연출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특정한 연출의 계보를 잇기 보다는, 앞선 연출들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이왕수 스타일‘을 만들어줄 것을 기대합니다.

창극 ‘만세배 더늠전’의 제작진은 정말 드림팀이었습니다. 조통달 창극단장을 비롯해서, 작창의 한승석, 작곡의 김성국, 지휘의 권성택은 이미 이 분야의 전문가 중 전문가이시죠. 창극 ‘만세배더늠전’이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의 대표브랜드가 되길 바라면서, 좀 더 다듬고 다듬어서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봅니다. 창극단의 단원들에게 딱 어울리면서도, 춤동작을 통해서 ‘전통과 재미를 동시에 만족’하게 해준 김시화의 안무도 이번 작품을 빛나게 한 숨은 주역이었음을 꼭 밝히고 싶습니다. 무대디자인(김종석), 조명디자인(최보윤), 의상디자인(황연희), 영상디자인(이원호)의 디자인 사인방의 좋았던 건, 자신의 분야를 특별히 내세우시보다는 전체작품의 조화를 생각한 것입니다. 공연을 볼 때마다 이 중 어느 한둘이 유독 튀어서 오히려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된 경우를 많이 보게 되지요? 작품은 결국 ‘무대위 배우’에게 초점을 맞춰져야 하는데, 창극 ‘만세배 더늠전’에선 모든 디자인이 깔끔하고 분명하며, 궁극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를 살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긍정적으로 성과를 밝힐 게 있습니다. 창극 ‘만세배 더늠전’의 ‘근대가요’의 수용입니다. 이 시대, 이 지역사람들의 정서를 그려내기엔 필수적인 것이었겠지요. 일반적 창극과는 다르게, 근대가요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애수의 소야곡’ (1937년,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은 요즘 사람도 잘 알고 있지만, 근대가요의 숨은 명곡 ‘꽃피는 포구’(1938년, 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 이은파 노래)와 ‘제 3 유랑극단’ (1940년, 유도순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한 것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여러분! 당신들은 판소리명창이기도 하지만, 창극단 단원입니다. 창극은 판소리를 중심으로 해서 많은 노래를 수용하여야 하고, 특히 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그 시절의 노래’는 필수겠지요. 근대가요를 그 시대의 정서에 맞게 부르는 연구도 더 해야 할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고양곤명창, 색소폰을 연주하는 유재준명창이 더욱 돋보였고 특히 박수를 많이 받았던 걸 잘 아시죠?

창극 ‘만세배더늠전’에는 모두 27명이 출연하더군요. 작품의 내용에는 주인공이 따로 있었지만, 무대 위의 모든 배우(창극단워)가 장면마다 주역이었습니다. 이건 전적으로 ‘대본과 연출’의 ‘배려와 역량’입니다. 이 작품을 보신 분이라면, 창극 장면마다 단원들이 얼마나 성의껏 또 스스로 즐겁게 작품에 임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셨을 겁니다. 창극 ‘만세배더늠전’은 그간 단체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의 잠재적 역량을 확인한 수작입니다. 서울을 포함해서, 전국방방곡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길 바람입니다. 송하진 도지사님과  이태근 원장님께, 간곡히 부탁합니다. 전라북도의 자랑스러운 위상과 도립국악원만의 개성적 역량이 작품에 올곧게 담겨있습니다. 두 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