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황푸강에서 유람선 타기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황푸강에서 유람선 타기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9.10.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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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지난 9월 25일부터 3일간 국제도시조명연맹 LUCI (Lighting Urban Community International) 연례총회가 상하이에서 열렸다. 연례총회는 주간에는 주제발표를 하고 석식 후 호스트 하는 도시의 야경을 돌아보는 것이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어서 상하이시에서는 황푸강주변야경을 유람선을 타고 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상하이시가 자랑하는 황푸강 야경은 그 규모나 현란함 그리고 다양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하는데 해가 지나며 점점 정도가 더해지는 것 같다.

1989년 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상하이 거리를 매웠던 시점과 야간경관이 생기기 시작한 때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장쩌민과 주롱지가 베이징으로 영전되어 가기 전에 야간 조명시설 설치안이 내려져 황푸강 와이탄(外灘) 주변 건축물에 조명을 설치하고 난징루 거리에 네온사인을 설치하여 도시가 밝아지도록 한 것이 시민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의지와 결정으로 시작되었다는데 이는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여서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1990년대 상하이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현재 100Km에 이르는 황푸강변 건물의 조명이 빛의 병풍을 형성하였고 이를 유지관리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재원 뿐 아니라 법과 제도적인 지원까지 더하여 고층건물의 실내등까지 활용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야간경관의 종합선물세트라고 일컬을만하다.

상하이의 야경이 도시의 기능이나 시민들의 삶과는 아무 상관없이 감시용으로 시작되어 - 이는 프랑스 가로등의 역사와 유사한 것이 흥미롭다- 여전히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고 여기에 소비되는 에너지가 막대하여 산업용 에너지가 부족한 현실이라는 비평이 쏟아져도 야간경관을 통한 상하이 명소화 사업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매체에서 다루는 바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이 보인다. 이번 루시에 참석한 세계 여러 도시로부터 온 빛정책 관계자들도 일부는 눈이 휘둥그레졌으니까.. 아마도 그 눈에 나타난 놀람은 두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하나는 사진 혹은 상상 속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정도에 대한 놀람이고 또 하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대한 놀람일 것이다.

빛의 기원을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해도 사람의 삶을 더 낫게 하는데서 시작되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공조명의 시작도 마찬가지이다. 조명기술의 발전과 상용화에 정치, 문화, 경제의 간섭이 있긴 했어도 여전히 빛이 주는 혜택은 사람의 삶을 더 좋게 하는 방향이어 왔다. 빛이 있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어둠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었다. 조명기술이 발전하여 필요한 만큼만 쓸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필요한 정보를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고 예술의 매체로 까지 그 쓰임새는 확대되어 이제 그야말로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때가 되었다.

LUCI 연례총회의 호스트 도시, 상하이시에서 마련한 황푸강 유람선타기 프로그램은 서서 1시간동안 빛의 고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망막은 계속 자극을 받는데 그 양과 속도가 지나쳐 시신경 따라 뇌로 전달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태 - 옆에서 보면 너무 놀라 말을 못 잇는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 마치 좁은 구멍에 양동의 물을 한꺼번에 들이부어 내려가지 못하고 도로 솟아오르는 상태라고 표현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세계도시조명연맹 LUCI는 빛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빛을 어떻게 사용해야 도시의 기능에 보탬이 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이로움을 줄까에 대해 고민하며 도시별 상황에 따른 빛정책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인데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이 기막힌 광경에 대해 탄성과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면 눈을 가리며 뒹구는 퍼포먼스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불편했던 것은 몇몇 도시- 조명 보급이 필요한 소도시나 야경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은데 재원이 부족한 도시-의 사람들은 이렇게 나라의 법적, 경제적 강력한 지원을 받아 마음껏 조명을 하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빛공해에 대한 법이나 민원이 이슈 되기 시작하는 도시의 사람들은 사방이 빛공해 여도 누구하나 목소리 내지 않는 상하이의 공무원을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빛공해가 단기간에 사람을 포함한 동식물이나 자연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하거나 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어떤 식으로든 해를 입히고 있음을 경고하는 장치의 마련이 LUCI라는 조직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발명된 순간부터 이미 우리 삶에 엄청난 혜택을 주었던 인공조명을 사람에게 이로울 정도까지만, 꼭 그 정도까지만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혹시 나도 더하고 더하는 조명설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참 많았던 황푸강 유람선타기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