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부터 6세기...‘함안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
5세기부터 6세기...‘함안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10.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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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ㆍ일제강점기 고적조사보고에 ‘아라가야 중심지’ 추정

문화재청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는 「함안 가야리 유적」(咸安 伽倻里 遺蹟)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4호로 지정했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해발 45~54m의 구릉부에 사면을 활용해 토성(土城)을 축조하고 내부에는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고상건물(高床建物)과 높은 장소에서 망루(望樓) 등을 축조한 유적으로 조선 시대 사찬읍지(私撰邑誌)인 『함주지(咸州誌)』와 17세기의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등 고문헌과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 ‘아라가야 중심지’로 추정돼 왔다.

▲「함안 가야리 유적」현장(항공 촬영)(사진=문화재청)

2013년 5차례의 지표조사를 대략적인 유적의 범위를 확인했고, 2018년 4월에 토성 벽의 일부가 확인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시굴과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木柵, 울타리) 시설,  대규모의 고상건물지 등 14동의 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 건물지 내에서는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찰갑, 札甲) 등이 나와 이곳이 군사적 성격을 가진 대규모 토성임을 알 수 있으며, 출토유물로 보아 유적의 시기는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부터 6세기 해당되는 걸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시작한 정밀조사는 가야문화권 최초로 얇은 판 모양으로 쌓는 판축토성(板築土城)을 축조하기 위한 구조물들이 양호한 상태로 확인돼 있다. 아라가야의 우수한 축성기술을 보여주는 구조들은 이전에 확인된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아라가야는 물론, 우리나라 고대토성의 축조수법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함안군 가야읍을 가로질러 남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신음천(新音川)과 광정천(廣井川)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독립구릉 상에 자리한 유적이다. ‘남문외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226호)’, ‘선왕고분군’, ‘필동고분군’ 등 중대형 고분군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에는 ‘당산유적’, 남쪽으로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 있어 이곳이 아라가야의 중심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 구역 전경(사진=문화재청)

유사한 성격의 유적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ㆍ합천 성산토성(경상남도 기념물 제293호) 등과 비교할 때 상태가 온전하고 주변유적과 연계된 경관이 잘 보존되었다. 고대 가야 중심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연차적인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하여 금관가야ㆍ대가야와 나란히 하며 고구려ㆍ백제ㆍ 신라ㆍ고대 일본과 활발히 교류했던 아라가야의 실체와 위상을 재조명해 정부혁신 역점과제인 가야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함안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에 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앞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등과 협력해 「함안 가야리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라며 “함안군은 가야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아라가야 비전선포식을 오는 31일 개최한다. 비전선포식은 가야리 현장공개, 문화재관리단체 지정서 교부, 제막식과 기념식수 등의 순서로 진행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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