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 전시구조 박찬경展 개최, 대중 공감 끌어낼까?
실험적 전시구조 박찬경展 개최, 대중 공감 끌어낼까?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10.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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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동안 준비...작가이자 기획자 박찬경, 액자 구조로 풀어
영상, 평면 작품 독특한 주제와 관점으로 시각화해

“미술은 미술에 대한 대화”라는 말은 박찬경 작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대중과 미술로서 대화할 수 있을까? 박찬경 작가는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사진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은《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박찬경 – 모임 Gathering》을 오는 26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주로 소설과 문학, 영화, 연극 등에 사용하는 액자구조를 차용해 전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전시 방식에선 드문 사례로 작가의 기획력이 더해진 점에 의미가 있다.

▲박찬경 작가가 '모임 Gathering'展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26일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24일 국현 서울관 교육동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찬경 작가는 “전시 준비가 많이 길었고, 풍요로운 조건에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시이다”라고 전시개최 소회를 전했다.

전시를 기획한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박찬경 작가를 “작가이자 감독, 기획자이자 비평가”라 소개하며 “<세트>(2000) 전시로 주목받았고, <파워통로>(2004~2007), <비행>(2005), <반신반의>(2018) 등 한국의 분단과 냉전을 대중매체와의 관계나 정치 심리적인 관심 속을 다뤄왔다”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주로 미술에 관한 글과 전시를 기획했다. 1997년 첫 개인전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을 시작으로 전시도 꾸준히 이어왔다.

▲임대근 학예연구관이 전시를 설명한다

이어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2004)과 각종 영화제에서도 수상하는 등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한 작가다”라며 “2014년에는 <미디어시티서울>‘귀신ㆍ간첩ㆍ할머니’예술 감독과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2008년 <신도안>을 발표하며 한국의 민간신앙과 무속을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해석하는 장·단편 영화를 연출했다. 이후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2010), <만신>(2013) 등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가로의 활동 이외에도 작가론, 미술제도, 민중미술,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전통 등에 관한 에세이를 써왔다.

전시 의의에 관해선 “국현에서 열리는 박찬경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해외에선 이미 주요 박물관 전시로 이어졌기에 큰 의미가 있다”라며 “‘MMCA 현대차 시리즈’로 2014년 이불 작가 이후 6번째 전시작가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작가에 관해 “미술관이나 미술사와 같은 관습적인 미술 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흔하지 않은 작가”라고 평가하며 “권의나 학자, 미술사의 관습과 제도의 저항해 개인의 상상력으로 제도를 재구성하는 것이 전시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박찬경, 해인(海印), 2019, 시멘트, 5×110×110cm, 20×110×110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박 작가는 재난 이후 동시대 상황에서 미술가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 제시할 수 있는냐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작업의 범주를 작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큐레이팅까지 작업 도구로 확장했다.

‘모임 Gathering’을 제목으로 전시 공간은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전시는 대표작 <늦게 온 보살>을 비롯해 <작은 미술관>ㆍ<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ㆍ<맨발>ㆍ <5전시실> 등 총 8점의 신작과 구작 <세트> 1점을 선보인다.

▲박찬경, 늦게 온 보살, 2019, HD 영화, 흑백, 4.1채널 사운드, 55분(사진=국립현대미술관, 홍철기)

전시는 ‘액자 구조’이다. 전시장 입구 쪽에 설치된 <작은 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액자 역할을 한다. 작업은 작가가 직접 한 것이 아닌 작가가 발견한 이미지를 큐레이팅한 공간이다. 익숙한 미술사와 미술관이 인위적으로 주입된 틀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기존의 출발선을 달리 보는 것이다.

박 작가는 전시관 벽이 낮은 이유에 관해 “일반적인 뮤지엄 보다는 낮은 회랑으로 구성했다”라며 “미술관이 왜 높아야 하나? 낮으면 안 되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한옥에서 밖을 바라보는 형식으로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는 원전 사고 피폭 마을을 촬영한 박찬경의 사진과 방사능을 가시화하는 일본 작가 카가야 마사미치의 오토래디오그래피 이미지가 교대로 보이는 작업이다. 이 작품과 <세트>(2000)가 나란히 전시돼, 서로 다른 소재의 접점을 찾는 박찬경의 작업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박찬경, 모임, 2019, 디지털 사진, 80×80cm(사진=국립현대미술관)

<해인(海印)>은 다양한 물결무늬를 새긴 시멘트 판, 나무 마루 등으로 구성된다. 미술을 “미술에 관한 대화”라고 규정하는 작가의 예술관처럼,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설정했다. 전시와 연계해 <해인>에선 5주간(11월 8일~12월 5일) 전시주제와 관련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 강연과 토론이 진행된다.

<늦게 온 보살>은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55분 분량의 흑백 반전 영화로 상영해 ‘석가모니의 열반’이라는 종교적 사건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동시대 재난 하나로 엮었다. 산속을 헤매는  한 중년 여성과 방사능 오염도를 조사하며 산을 다니는 여성을 교차 시켜 줄거리를 이끈다.

전시실 후반부에 설치된 <맨발>과 <모임> 등의 작업은 앞선 영상 속 소재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5전시실 전경모습(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 마지막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5전시실의 1:25 배율 축소모형 <5전시실>이 있다. 작품은 ‘액자 속 스토리’에, 미술관의 관람 관습에 익숙한 관객을 액자 밖으로 끌어낸다. 5전시실 ‘모형’으로 ‘부처 열반’을 통해 본 여러 작품을 감상 라인으로 줌 아웃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강요된 권위와 틀에 저항하는 것이며, 전시 해석은 관객들의 몫으로 돌린다. 각자 방식대로 전시를 관람하는 제목인 ‘모임’에 초대받은 이들임을 이야기한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화 문의는 02-3701-9500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