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뇌腦창創 칼럼 18]인공지능과 리턴 투 에덴
[미美뇌腦창創 칼럼 18]인공지능과 리턴 투 에덴
  • 고리들 화가/ <두뇌사용설명서>저자
  • 승인 2019.11.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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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들 화가/'두뇌사용설명서' 저자

‘에릭 캔델’은 책 ‘통찰의 시대’에서 고대 동굴벽화의 화가들이 자폐형 천재화가들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어릴 적 천재적 스케치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 능력이 사라지는 경우와 평범했던 사람들이 치매가 걸리면서 그림실사 능력이 좋아지는 점도 말했지요. 그런데,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치매가 걸리면 더 과감한 필치와 구도를 겁 없이 구사하면서 동네 화가 수준의 그림이 세계적 명화처럼 기막히게 변한다는 점이 제게는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미술 전공자이니까요. 제가 마지막 미뇌창 칼럼을 쓰는 이유는 제 그림을 좀 더 멋지고 과감하게 바꾸고 싶어서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글쓰기는 제 두뇌를 비판적 언어로 채우면서 그림의 표현과 구도를 딱딱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어적 구조를 벗어나 느낌과 감각의 세계로 더 빨리 들어가고 싶습니다. 제 칼럼을 눈여겨 보셨던 분들에게 죄송하기 때문에 마지막 칼럼은 존댓말로 쓰고 있습니다. 이은영 대표가 제 화실에 오셨을 때,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쓴 이유를 물었습니다.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의 노동과 일을 차지하게 되면 인간은 다시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험할 것입니다. 출애굽기와 비슷하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있어야 가능할 수도 있지요.

최근 글쓰기 훈련이 된 최진기 이지성 등의 작가들이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신간을 내고 있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사색보다는 정보수집과 글쓰기에 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입니다. 진화심리학(뇌과학)과 미래학(과학기술) 지식이 없이 4차 산업과 인공지능에 대해 글을 쓰는 짓은 매우 위험합니다. 인간은 피식자로서 자신의 감정과 공감을 압축적으로 제한하면서 진화했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면 잡혀 먹혔기에 생각보다는 공포심과 달리기에 익숙해지면서 살아남았죠. 그래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과 공감능력을 파악하거나 모방하거나 응용하는 일은 매우 간단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감정 중 공포심과 사랑이 가장 강력하게 대칭이 되는 이유는 생존+번식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더 미묘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이는 호르몬칵테일 효과들은 안전하고 풍요로운 도시에서 문화로서 발달하지요. 그렇더라도 문학에 등장하는 감정들은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수리논리를 먼저 정복한 이후 감정적 인과관계도 파악하고 응용하여 영화 시나리오를 순식간에 쓰도록 진화하여 인간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할 것입니다. 공감도 인문학도 인공지능이 접근할 수 있기에 인간이 어떤 역할을 꾸준히 할 영역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어처구니없이 인과관계를 벗어나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잘 놉니다. 그런 놀이나 늘 규칙이 새로워지는 놀이는 인간의 피난처로서 오래 유지가 될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의 고향은 노동이 없는 에덴이라는 놀이동산이었죠. 인간이 에덴에서 추방당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신에게 들었는데, 분명 저주가 섞인 말이었습니다. 진화론과 창세기가 동시에 등장해서 죄송합니다만, 필자의 사상은 노장과 불교에 가깝고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아담과 이브 얘기가 대중적이라서 마지막 칼럼 제목을 리턴 투 에덴으로 정했습니다. 에덴의 특성 중 하나는 성기 노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남녀가 늘 신과 함께 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신은 최초의 남녀를 아이처럼 보살펴주었고 남녀는 신과 에덴의 품에서 잘 놀았습니다.

지금 인류는 자본주의의 종말기에 과소비가 습관이 되어 있어서 경제적 고통을 더 심하게 느낄 과정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랐던 제 3국들은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살 터전을 잃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다시 강대국들의 대리전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고, 생존경쟁이 심화되어 돈이 더 필요한 시점에 자동화로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고 그나마 알바들은 키오스크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일명 무인화 자본주의 프레카리아트 전성시대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오솔길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한국의 인공지능 정책은 희망적입니다. 고령화 해법과 취약계층을 위한 인공지능을 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공약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로봇과 협력하여 이루어 낼 노동이 시작되기 전의 에덴을 나름대로 상상해야 합니다. 인간적 공동체를 만들어 구성하고 환경을 지키며 문화를 즐기면서, 다시 아이처럼 놀이를 찾으면서 에덴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비판적 글쓰기를 감성적 글쓰기로 바꾸다가 결국 언어로 이루어진 세상을 벗어나 동굴 속 화가가 되어 화폭에서 어린아이처럼 즐기며 놀겠습니다. 저의 에덴동산은 감각적 화폭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에덴동산을 찾거나 만드시기 바랍니다. 게을러지자는 뜻이 아니며 더 바쁘게 재미를 찾아야 하고 더 깊은 재미를 찾자는 말입니다. 즉 놀이와 영성에 대한 사색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제 칼럼을 눈여겨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직접 전화를 주셔서 칭찬해주신 일랑 이종상 사부님 감사합니다. 에덴동산이 된 제 그림 전시로 또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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