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LG아트센터∙LDP의 ‘트리플 빌’ 세 작품과 한창호의 ‘부드러운 몸’
[이근수의 무용평론] LG아트센터∙LDP의 ‘트리플 빌’ 세 작품과 한창호의 ‘부드러운 몸’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1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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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춤은 음악이고 무용은 시(詩)다. LG아트센터와 LDP가 공동으로 기획한 트리플 빌(정영두, 김동규, 김설진) 세 작품 중 정영두의 ‘새벽’(9,26~29, LG 아트센터)은 이러한 명제에 합당한 작품이다. 하루가 밝아오기 전 미명(未明)의 시간, 주위는 희뿌연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다. 먼 곳에서 종소리가 울려오며 천지는 여명(黎明)의 시간으로 바뀐다. 암중모색하듯 남성 무용수(강혁, 황창환, 윤승민)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고요함 가운데 일어나는 움직임이니 정중동(靜中動)이다. 선(禪)의 세계에 빠져들 듯 고요한 음악이 낮게 깔리고 음악을 따라 움직임 역시 부드럽게 리듬을 탄다. 새벽은 어제를 지우며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 신비스러움을 색으로 표현하면 푸른빛이다. 새벽은 아침을 거쳐 한낮으로 옮겨가고 저녁시간 어스름한 황혼을 지나 다시 어둠으로 회귀해간다. 한 사람의 일생, 자연의 사계,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흐름이 그 하루로서 시작된다. 정영두의 ‘새벽’은 고요한 명상가운데 그 시간의 소중함과 생명의 고귀함을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그려낸다. 한 편의 서정시처럼 가슴을 순화시켜주는 세련된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김설진의 <MARRAM>은 <새벽>과는 전혀 대조적이다. 무대가 복잡한 것이 우선 눈에 뜨인다.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들, 책상들, 가구들로 무대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물건들을 함부로 던지고 여기저기로 이동시키고 부숴버리는 거친 손길과 소음들이 눈과 귀에 거슬린다. 남과여가 등장한다. 애증이 교차한다고 할까, 이별하고 결합하고 다시 헤어지고 또 부딪치는 요령부득의 관계는 무대만치 복잡하다. 여인의 두 팔을 잡고 몸통을 360도 회전시키고 때로는 어깨 너머로 메다치기도 하는 남자의 손이 거칠다. 격투기에서의 일방적인 남녀 이색대결을 보는 듯하다. 동작과는 달리 서정적으로 바뀌는 음악은 오히려 동작과 부조화다. 안무가의 설명처럼 이러한 복잡함과 거칠음이 뇌 속에 두서없이 저장된 불안하고 불편한 기억들일까. 예술의 가치는 메시지의 직선적 표현이 아니라 은유와 생략과 상징을 통해 전달되는데 있다. 리듬과 여백은 그 조건 중의 하나다. 미니멀하고 단순한 무대에서 감성이 깊숙이 녹여진 김설진의 작품을 보고 싶다. 

트리플 빌에서 세 번째로 보여준 김동규의 ‘몸부림(MOMBURIM)’은 군무위주로 구성된 작품이다. 멀리서 울려오는 북소리처럼 그들의 춤은 당당하고 활기차다. 일사불란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LDP의 역동적인 군무다. 혼성군무로는 아마도 이들과 견줄만한 무용단을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그들의 약점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춤들이 대동소이하고 무대에 여백이 없다. 관객을 위로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객석과 무대의 거리를 멀게 만든다.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 자연스럽게 움직임의 이유를 발견한다고 김동규는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움직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몸부림’에서 보여준 무용수들의 엄청난 에너지와 화려한 몸짓을 칭찬하면서도 이 작품이 LDP의 전형적인 춤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함께 지적하고 싶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춤 기능의 완성이 아니라 틀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그 밑바탕이 되는 창조적인 상상력이다. “새롭거나 놀랍거나 재미있거나...“100년 전 디아길레프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지 않을까.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처음 기획한 공연예술창작기반사업(Step by SPAF)에 선정된 세 작품(부드러운 몸, 체르노빌의 목소리, 공공하는 몸 1) 중 한창호(온앤오프무용단)의 ‘부드러운 몸’(11.9, 대학로 예술대극장)이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미색의 부드러움이 뒷벽과 무대 바닥을 감싸듯이 뒤덮고 있다. 무대와 벽 사이 틈새에서 아지랑이처럼 안개가 피어오른다. 무대 중앙에 앞뒤로 서 있던 두 무용수(한창호, 도유)의 자태가 어두움 가운데서 서서히 드러난다. 잔잔한 음악이 낮게 깔리고 제자리에서 무용수들은 두 팔과 허리, 몸통과 머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온 몸에 시동을 건다. 시동이 걸린 몸에서 감각이 깨어나고 몸은 무의식의 상태에서 내재율에 따라 전후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리며(緩) 부드럽고(柔) 둥글고(圓) 끊어짐이 없는(連) 자유로운 몸이다.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움직임이 충만한 무용수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정영두의 ‘새벽’이 어제를 지우고 새날을 시작하기 전의 고요한 분위기를 담백하게 써내려간 서정시였다면 한창호∙도유의 ‘부드러운 몸’은 분주한 한낮의 빠름 속에서 잠시 몸을 빼내어 자신 만의 리듬을 찾은 구도자의 명상같이 정갈한 무대를 보여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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