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의 시인, 잉고마우러를 추모하며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의 시인, 잉고마우러를 추모하며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9.11.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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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잉고마우러 Ingo Maurer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조명, 빛, 예술, 미디어아트.. 이런 단어들과 조금이라도 인연을 맺어본 사람들에게는 한번쯤은 들어얇은 전기선에 할로겐 보았을, 닮고 싶은 조명기구 디자이너이다. 그가 조명기구라는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담는 가치와 철학은 함부로 조명기구를 하나의 제품으로 대하지 못하게 만들곤 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철사줄에 할로겐 전구를 얹어 놓았었던 야야호 Yayaho, 백열전구 베이스에 날개를 붙인 루첼리노 Lucellino, 깨진 도기 그릇을 무심히 매달아 놓은듯한 포르카 미제리아 Porca Miseria등 그가 만드는 조명기구는 위트가 넘치고 기발하면서 동시에 기능과 최고의 기술을 담아 감히 흉내낼 수 없기로 유명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 그의 조명기구는 작품으로 분류되는 것이 정당하다- ‘Wo bist du Edison..?’ 으로 홀로그램을 이용하여 에디슨이 발명했던 백열전구를 실체없이 형상화함으로서 에디슨에 대한 경의 표현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진 공간, 광화문 흥국생명 건물에 가면 볼 수 있다. LED를 유리 사이에 놓은 테이블이나 OLED로 양탄자를 만든 잉고마우러는 최근까지도 조명의 신기술을 유머러스하게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작업을 쉬지 않았다. 

독일에서 태어나 뮌헨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그가 뮌헨 지하철역사 디자인을 통해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베스트프리드호프역 westfieldhof station에 설치된 거대한 돔형의 펜던트는 그것에 반사되어 나오는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은은하면서도 콘크리트 마감의 건조한 분위기에서 색다른 시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 그의 사무실이 위치한 도시 북동부의 뮌헤너 프라이하이트 Münchner Freiheit역에는 노란색 벽면과 파란빛으로 비추어진 기둥의 극적인 대비를 볼 수 있고, 구시가 한복판의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역은 천정에 붉은 빛의 조명을 비추어 건축적으로는 실용적으로 단순화한 지하공간을 각각 기억에 남을 만한, 특색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가 룩셈부르크의 공공공간에 설치한 가로등 Guddevol 역시 가로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미안한 디자인의 조명기구이다. 가운데가 뚫린 원반형태의 면을 엘이디 광원이 비추어 간접적으로 지면에 밝기를 형성하도록 하여 밝게 비추어진 원반과 주변의 어둠이 대비를 이루고 주간에도 하나의 예술조형물처럼 보이게 한다. 어린 아이들은 이 가로등 아래에 모여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이곳의 사람들은 이것을 UFO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Have a good flight'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

잉고마우러가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세계디자인평화선언을 기념하는 상징조형물 ‘평화의 빛’을 디자인하면서 부터 라고 한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 설치한 바 있는 umbrella series와 같이 잉고 마우러의 작업들은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볼거리, 이야기거리 그리고 마음에 담을 거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에 설치된 작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빛의 시인, 빛의 마술사 잉고마우러가 518 광주 항쟁이라는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빛의 조형물은 개인적으로 아름답지도, 그 정신을 기리지도, 그 한을 담지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그 조형물에 담고 싶어 했다는 ‘광주항쟁의 소용돌이 치는 강한 에너지’도 올바른 정신인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여기에 우리가 흔히 놓치는 몇몇의 오류가 있었으리라 본다. 일단 우리의 아픈 역사를 외국인에게 기리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누군가는 했었어야 한다. 외국작가에게 기리도록 하도록 이미 결정이 났었으면 충분한 설명을 미주알고주알 했었어야 한다, 그 속에 뿌리 깊게 박힌 정서들을 알렸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완전하게 주었어야 한다.

이미 너무 오래전의 일이고 지금 자잘못을 따지자는 의미가 아니라 비슷한 사례들이 이미 넘쳐나고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3일 잉고마우러가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Light & Building' show에서 매년 선보이던 신기한 ’작품‘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졌다는 슬픔과 함께, 빛계획은 넘쳐나고 빛정책도 촘촘하지만 이렇다할 빛의 조형물이 없는 서울에 누군가 그것을 만든다면 잉고마우러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었던 터라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추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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