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말과 기술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말과 기술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11.2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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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말은 곧 고향이다. 말 속에는 태어난 곳의 자연과 공기, 흙, 물 등 삶의 원초적 요소들이 담겨 있다. 말이 한 번 몸에 각인되면 그 기억은 화인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몸은 그래서 고향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향ㅡ말ㅡ몸의 등식은 선천적, 후천적 요소를 내재화하며 삶의 경로를 좇아 진화한다. 엄마, 저게 뭐야? 응 그건 고추잠자리란다. 그러면 고추잠자리는 이내 말이 돼 아이의 몸 안에 흡수, 각인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노년에 이른 그 아이의 눈에 들어온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 이때 노인은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어 고향을 머리 속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나들이를 원족이라고 불렀다. 원족은 일본식 표현이지만,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어머니가 나들이를 그렇게 불렀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나의 어머니는 1912년 생이다. 소년시절에 조국을 떠난 백남준 선생의 인터뷰에 보면 바로 이 원족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원족이란 말이 튀어나왔을 때, 사람들은 타임머신에서 나온 줄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러분들은 '우정'이란 말을 기억하는가? 우정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기억력이 좋은 60대 이상은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말도 사라졌다. 시인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에서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등을 열거했는데, 만일 오늘의 20대가 이 글을 보면 외계인의 언어가 아닌지 의아해 할 것이다. 약방이나 애꾸면 몰라도 그 외의 단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몸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강이나 망건, 장죽 따위를 몸에 접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들의 유전자는 그것들을 기억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몇 십년이 흐른 어느날 사람들은 ''::--:::---::::-::--::::----:::''과 같은 문장들을 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른바 몸의 기억이 완전히 부재한 공산품 존재들의 등장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언어가 자연의 언어를 대체할 시점에는 말 뿐만이 아니라 몸도 인공살로 뒤덮힌 사이보그들이 도시를 활보하게 될 것이고, 프로그램된 삶의 경로를 좇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말과 몸의 기억과 사물의 근원으로서의 고향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연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이러한 문제에 관해 성찰한 사람은 올더스 헉슬리 였다. 그의 유명한 소설 <훌륭한 신세계>는 이 소설이 씌여진 시점에서 볼 때, 분명 미래에 닥칠 일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십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날이 그의 상상력이 현실화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복제양 둘리의 츨현이 이미 이십 년에 전에 일어난 사건이며,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장면들과 유사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현실 아닌 현실이 주변에서 실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보들리야르의 진단처럼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가짜들은 현실에서 진짜를 몰아낸다. 가짜 그림이 진짜 그림을 몰아내고, 가짜 인간이 진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이 발명해낸 정교한 복제술은 이미 복제의 단계를 넘어(hyper real) 그 자체 하나의 현실이 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눈으로 실물의 확인이 안 돼도 현실적으로 거래가 된다. 일찍이 이데아론을 통해 모방설을 펼친 플라톤의 경고가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인류는 아내나 남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성적 교접을 하며, 가짜 대통령에게 국가기밀을 보고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직면할 지도 모를 일이다. 가짜가 휭행할수록 그 만큼 진리인 이데아로부터 멀어진다. 인류를 결핍과 불편으로부터 구원한 테크놀러지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 현실이 문제다. 인공지능(A.I)은 알파고 사태에서 보듯이, 인간 두뇌의 한계를 초월해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상상력이다.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권리이자 권능인 인간의 상상력 마저 허물어진다면 인류는 끝장이다. 그러나 매우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상상력의 토대인 영감이 어디서 오는 지 알 지 못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 가닥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컴퓨터에게는 아직 상상할 수 있는 능력과 영감의 권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창조 활동의 요람인 예술은 바로 이 상상력과 영감에 의존해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지시를 받지 않는 한 컴퓨터를 비롯한 테크놀러지 자체는 예술적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약간은 안심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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