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SIDance 와 SPAF에서 본 해외초청작품 2편
[이근수의 무용평론] SIDance 와 SPAF에서 본 해외초청작품 2편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9.11.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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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로베르토 카스텔로’의 춤>

올해 22회를 맞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초청된 해외작품 중 이탈리아 ALDES무용단의 작품과 캐나다의 마리 슈이나르 무용단의 두 작품(쇼팽 24개의 전주곡, 앙리 미쇼의 무브먼트)을 보았다. 1993년 ALDES 무용단을 창단한 이탈리아 안무가인 로베르토 카스텔로(Roberto Castello)가 무용을 보는 시각은 독특하다. 

벽이 흘러내린다. 위치와 크기를 바꿔가며 느리지만 쉬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린다. 무상한 시간의 흐름을 뜻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자연의 섭리, 혹은 개인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세태의 조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 영상 앞에 창백한 조명을 받으며 검정색 옷으로 통일한 네 명의 남녀무용수가 서 있다. 제자리에 서서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고 양팔을 크게 벌려 좌우로 흔들며 쫓기듯이 숨을 몰아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가엾은 존재 혹은 세상 안에서 무한한 경쟁을 운명처럼 부여받은 인간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일정한 두 박자 음향이 하나둘, 하나둘 혹은 영차, 영차의 구령을 반복하는 듯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필름이 끊기듯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가 화면은 다시 이어지고 그 때마다 흐르는 벽의 위치와 크기가 변한다. 무용수의 움직임도 그때마다 바뀐다. 걷다가 뛰다가 분리되었다가 다시 모아지고 둘씩 한 덩어리가 되듯 하더니 또다시 흩어진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빠른 맥박이고 거친 호흡이다.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거대 프로그램에 따라 속절없이 운동되어지는 이들은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기보다는 복종하도록 입력된 기계에 가깝다. 때로는 항거하듯 주먹을 불끈 들어 올리지만 이 역시 계획된 반동이다. 현대문명의 거스를 수 없는 조류 속에서 허덕이며 끌려가도록 운명 지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한 공감이 관객석을 가득 채운다. 

카스텔로의 작품(10,5, CJ토월극장)엔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서 소멸한다(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란 긴 제목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이 제목은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문장이 된다. 앞뒤로 무한히 반복되는 이 문장처럼 인간은 죽을 때까지 동일한 노동을 되풀이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다. 산꼭대기까지 바윗돌을 굴러 올리면 돌은 다시 굴러 내리고 굴러 내린 돌을 다시 올려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SISYPHUS)처럼 인간은 현대문명이란 형별을 받은 존재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조명과 단조로운 음향, 60분간 지치지 않고 달리는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인상적으로 각인된 작품이었다.

<‘인발 핀토’의 춤, ‘FUGUE’>

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올 해로서 19회를 맞는다. SPAF가  초청한 6개 해외작품 중 인발 핀토 무용단(Inbal Pinto Dance Company, 이스라엘)의 ‘푸가(FUGUE)'와 수잔나 라이노넨 무용단(핀란드)의 ’NASTY‘(여성, 억압과 해방)를 보았다,  ‘푸가’(10,12~13, 아르코대극장)는 첼리스트며 가수이고 여류작곡가인 마야 벨시츠먼(Maya Belsitzman)과 인발 핀토 무용단의 협업으로 완성된 2018년 작품이다. 차이코프스키(The Seasons), 쇼팽(Nocturne), 라인하르트(Minor Swing) 등의 음악을 폭넓게 사용한다. 

무대 앞에 녹색 커튼이 쳐져 있다. 커튼에 그려진 유럽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정경이 흘러간 시간과 전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노년의 무용수가 커튼을 좌우로 열어젖히면 그 안에 무대가 펼쳐진다. 한 가운데 낡은 피아노가 놓였고 그 뒤에서 빨간 원피스의 여인들이 하나 둘씩 차례로 등장한다. 무대 양 옆엔 허름한 차림의 남자 셋이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여인들의 춤이 시작된다.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진지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춤 속엔 시간을 넘나들며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있다. 커튼은 수시로 닫혔다가 다시 열리고 그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시작된다. 

피아노가 연주되고 피아노의 옆과 뒤, 그 위에 네 여인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앉아 있다. 빨간색 옷으로 갈아입은 남자들도 가세하면서 플라멩코의 화려한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은 활기를 더해간다. 옷이 바뀐다. 빨간색을 벗어버리고 내의 차림이 된 무용수들은 매미가 허물을 벗듯 옷을 바꿔 입으며 춤추며 노래한다. 푸가음악이 7개 악기로 구성된 것처럼 7명의 무용수는 각각이 다른 악기를 표현할 것이다. 커튼을 여닫던 노년의 무용수가 여기에 가세하면 무대는 8명이 된다. 번뜩이는 조명과 충격적인 소음에 놀란 몸들이 반응하고 새소리는 향수를 자극한다. 경쾌한 음악이 다양한 춤사위를 만나 시각화된 음악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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