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붉은 선비’, 더 이상 실망스러울 순 없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붉은 선비’, 더 이상 실망스러울 순 없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11.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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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신화와 만난 ‘국악판타지’를 표방한 ‘붉은 선비’가 너무도 실망스럽습니다. 국립국악원에 맞는 작품일까요? ‘붉은 선비’를 국립국악원의 ‘대표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붉은 선비’는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일반관객의 관심을 끌 소지가 있습니다. 대본과 연출을 포함한 작품의 취약함을 영상이 보강해주고 있으니까요. 국립국악원에서는 이 작품이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붉은 선비’가 국립국악원에서의 ‘새로운 시도’라고 내세운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공연을 접해본 일반관객이라면, 국립국악원의 예술적 특징과 매력이 매우 간과를 넘어서 손상까지 주고 있는 공연스타일에 대해서, 매우 참담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붉은 선비’를 보는 내내 부끄럽고 답답했습니다. ‘한국적인 본성’을 음악적으로도, 신화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깊게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의미는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의 재미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대본과 연출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기존의 스토리와 스타일에 익숙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병맛’으로 접근할 성질의 작품도 못 됩니다. ‘붉은 선비’는 정교하지도 못하고 치밀하지도 못한 매우 ‘어수선한’ 공연이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트라이아웃’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뮤지컬작품이나 퍼포먼스가 이럴 때는 그냥 그렇다고 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이게 ‘국립국악원’의 예악당서 펼쳐진 공연이란 점입니다. 

‘붉은 선비’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점은, 국립국악원의 예술가들이 한없이 작아보였습니다. 그간의 음악극이 수작은 아닐지라도, 국립국악원에 소속된 예술가의 ‘존재감’과 전통음악의 활용 면에서, 정말 이렇게 암울한 기분이 들 정도가 있었나 싶습니다.

붉은 선비의 ‘국악’은 ‘감상음악’이 아니었습니다. ‘배경음악’에 불과하고, ‘음향효과’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국립국악원에서 전통음악을 이렇게 다뤄도 될까요? 외부인은 분통이 터지는데, 국악원 내부에선 그게 아무렇지 않은가요?

예술의 전당을 떠올립니다. 콘서트홀이나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객이 숨죽이며 음악을 경청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오케스트라 중간에 대사가 들어오고, 음악적인 전개를 고려하지 않은 움직임이 펼쳐진다고 칩시다. 클래식애호가는 과연 그걸 용납할 수 없을까요? ‘국립국악원의 ’붉은 선비’에서의 전통음악은 거의 모두 이랬습니다.

‘화초타령’을 부르는 장면을 한 예로 들까요? 화초타령을 어느 정도 부르다가, 연출은 더 이상 그 노래가 필요 없는지 작게 부르게 하고, 끝내는 부르는 척을 합니다. 좋습니다. 그게 작품의 맥락에서 의미가 있으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러다가 무대 중앙에서 연기가 진행이 되더니, 갑자기 창자에게 조명이 강해지면서, ‘암행어사 출두요’하고 외치고 퇴장해 버립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연출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대본과 연출은 뭐라 답할까요? “그냥 잠자코 보기만 해. 넌 과거의 국악에만 젖어있어서 그런 거야.” 이렇게 말씀하고 싶은가요?

이 작품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취약하고, 관객에게 친절하지 않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큰 불이 났고 지홍(붉은선비)와 사슴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둘은 한참을 함께 다닙니다. 그러다가 사슴이 갑자기 말을 합니다. 그랬더니 지홍이 ‘너 말할 줄 알았어?’라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사슴 왈, “뭘 그렇게 놀래요.”

국악판타지를 표방한 ‘붉은 선비’는 진지하게 접근하기엔 ‘철학적인 진정성’이 부족하고, 재미있게 즐기기엔 ‘미학적인 일관성’을 찾기 어렵습니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과 음향, 배우의 등퇴장을 통해서 많은 ‘자극’을 전해줍니다. 좋습니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했던 것을, 뭔가 하나의 주제와 메시지로 응집시켜 가는 능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적인 음악이 있었지만, 그것의 배치와 활용이 매우 일차적이었습니다. 전통적인 몸짓은 도저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한국의 전통춤을 오래도록 정진했던 분의 역량이 도저히 발휘될 수 없는 작품형태였습니다. 한 예로 ‘꽃과 나비’의 부분은 전형적으로 스포츠행사의 커다란 그라운드에 어울리는 형태였습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이런 걸 보고 싶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농악(풍물)의 활용부분은 글을 쓰기조차 부끄러워서 생략해야겠습니다.

연출은 ‘연출의 글’을 통해서 ‘국립국악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노래와 춤, 한국적인 서사가 ‘우리 삶속으로 다가가길 희망’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이전에 작가와 연출은 먼저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와 활용’에 대해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노래, 한국의 춤, 한국의 신화가 있지만, 그것을 ‘오롯하게’ 몰입할 수가 없는 작품입니다. 천둥과 번개의 음향효과는 과하고, 비주얼은 매우 자극적입니다. 그게 국립국악원의 음악과 작품의 스토리와 얼마나 부합됐는지는 제작진들이 스스로 점검해봐야 할 겁니다.

‘붉은 선비’에서 음악감독은 과연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국립국악원의 정악단, 민속악단, 창작악단의 예술감독은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아연 실색한 것은 ‘국악판타지’를 표방한 ‘붉은 선비’에서 노래가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나는 ‘붉은 선비’를 보면서, ‘B급 뮤지컬'을 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B급‘ 뮤지컬넘버입니다. A급뮤지컬과 B급뮤지컬‘의 차이가 뭔 줄 아십니까? 개별적인 뮤지컬넘버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A급뮤지컬의 넘버들은 작품의 앞뒤 맥락에서 만들어진 곡이고, B급뮤지컬은 그저 그 가사와 상황에만 충실한 곡조이지요. ’붉은 선비‘에서의 노래가 딱 그렇습니다. 참으로 ’느닷없이‘ 선율이 튀어나옵니다. 앞뒤 맥락과는 무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래를 부르는 출연자들이 내겐 너무도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국립국악원의 단원들은 잠재적 역량이 충분하다는 걸,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이 작품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짐작합니다. 진지하게 할 수도 없고, 재미있게 할 수도 없는 ’어중간함‘ 속에서도, 이 작품이 갖는 취약함과 무모함을 이겨내고자 하는 말 못한 고통이 객석에 전해집니다.

국립국악원은 매년 음악극(극형태의 국악공연)을 제작해 왔습니다. 그러나 호평을 받은 작품이 드물고, 거의 모두 그해만 공연하고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국립국악원은 매년 음악극을 계속 제작해야하는가?” 올해 ‘붉은 선비’를 보면서, 더욱 그런 참담한 심정이 되어 버립니다. 국립국악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국립국악원의 음악극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붉은 선비’를 예로 들면서 너무도 할 말이 많습니다. 애쓴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음악극’의 향방을 잡지 못하고 늘 우와좌왕하는 인상이 강한 국립국악원에게는 이런 ‘쓴소리’가 매우 필요할 때입니다. 국립국악원은 음악극을 만들기를 중단하거나, 아니면 ‘국립국악원’의 음악극의 바람직한 향방을 위한 토론회(공청회)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때, ‘붉은 선비’의 작가와 연출가의 얘기도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서 여기서 하지 못했던 또 다른 얘기들도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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