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올해 겨울, DDP의 변신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올해 겨울, DDP의 변신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9.11.2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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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지금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에는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다. 학창시절 고교야구 리그를 그 곳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운동장은 잠실 종합운동장이 생기기전까지 서울의 유일의 종합운동장으로 우리나라 근대 스포츠경기의 메카였을 뿐 아니라 국가 행사나 어린이날, 국군의 날 행사, 심지어 미스코리아대회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 곳이었다. 2007년 시설의 노후로 철거가 되기까지 운동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다음에도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공간이었다.

그 자리에 들어선 DDP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건축가 자하하디드는 한때 설계는 있으나 지어진 건물이 없는 ‘페이퍼 건축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녀의 작품 대부분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주 건축언어, 비정형의 유기적인 곡선이 과연 지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DDP 역시 설계안 발표 후, 놀랍지도 않게, 그 기이한 생김새와 늘어나는 공사금액 때문에 여러 비판을 들어야 했고 이미 건축유산이, 삶터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처절한 반대가 있었기에 건축업계에서는 설계안대로 실현될 수 없을 거라는 예측들을 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건축가가 주목한 부분은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그 지역의 역동성이며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지붕이 벽이 되고, 벽이 지붕이 되는 식으로 열린 공간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이어져 동선을 따라 상생하는 '환유의 풍경'을 담고자 했다고 한다. 

공사 도중 문화재가 나오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DDP는 자하하디드가 갑작스럽게 타계하면서 생전에 지어진 마지막 작품으로서 그 상징성을 부여받고 시대의 아이콘,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어 이전과는 다른 종류이나 같은 에너지의 북적임이 존재하는 곳이 되었다. 

실제로 DDP 주변은 낮만큼이나 밤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일명 새벽시장이라고 불리우는 패션 도매상가들이 즐비하여 해진 뒤 우리나라 전국에서 온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이 곳에 모여든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빛을 입은 건축물들이 밤이 되어도 잠들면 안된다는 듯한 메시지라도 보내는 듯한데 마주하고 있는 DDP는 그 현란한 빛을 외부면에 머금을 뿐 오히려 어둡고 정적인 이미지를 보인다. 

개인적으로 DDP의 조명디자인에 대하여는 매우 세련된 그리고 장소에 아주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하하디드는 가구 샤와야&모로니의 Z-의자를 디자인하면서 곡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짝이는 금속의 재질을 사용했고 바쿠의 아제르바이젠 문화센터에서 볼 수 있듯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면을 외부에서 비추어 그 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였다.

반면, 그녀는 DDP에 장소의 역동성을 담았지만 시각적인 노이즈는 반사도가 낮은 마감재로 흡수하였고, 비정형의 벽면은 외부에서 비추는 방법과 더불어 내부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빛으로 형태의 아름다움과 거대매스의 볼륨을 표현함으로서 장소에 맞는 DDP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건너편의 에너지와는 다른, 물성과 밝기로 안한 시각적 대비를 이루고 이는 묘한 긴장감을 주어 그 이질적인 특성이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도록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말하자면 패션도매상가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고품격 친구가 옆에 있어 내 가치는 올라갈지 몰라도 정작 내게 이로운 에너지를 잃는 형태이고 DDP 입장에서는 어울려야 하나, 어울릴 수 없는 친구를 옆에 두는 형국이랄까..

올해 초 한 매체에서 DDP 운영주체인 서울문화재단의 대표가 인터뷰에서 DDP 개관 5주년, 재단 설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DDP를 24시간 불 밝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는 밤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DDP 주변’을 이야기하며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해 ‘일단 불을 켜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DDP를 미디어 파사드의 옥외 전시장으로 만들면 관광에도 기여하고 오가는 시민들도 즐길 수 있으니 동대문 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DDP라는 문화공간이 지속적인 창의력의 원천이 되어 24시간 깨어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화, 예술이 경제 활성화와 손을 잡는 시늉을 하는 것은 새롭지 않으나 이런 전략- 특히 ‘빛’을 이용하여 밤을 밝히겠다는 -을 내놓은 그 분에게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마주보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루는 방법으로 주변의 동대문이나 청계천등과 연계하여 패션도매상가가 은은한, 그래서 걸맞지 않은 빛을 입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DDP가 미디어 아트라는 옷을 입는다면 당연히 문화 예술적 명소화와 더불어 상권의 활성화로 인한 경제적 이익 창출이 가능하리라고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공공예술이며 그 필요를 정량할 수는없으나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의 순기능이 아닐까

올해 12월 드디어 DDP와 미디어 아트가 만난다고 한다. DDP 외벽에 미디어 영상을 투사하고 여기에 사운드까지 어우러진다고 한다. 처음 시도되는 이 행사에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 돌(34·Refik Anadol)이 메인 작가로 참여하는데 ‘서울 해몽’이라는 주제로 DDP의 과거, 현재, 미래를 표현한다고 한다. 

물론 우려되는 바는 있다. 아티스트의 말대로 DDP는 최고의 캔버스가 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건너편의 친구가 DDP의 변신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그리고 DDP의 변신이 건너편의 친구에게 또 좋은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