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배재학당역사박물관과 ‘무대디자인’展
[성기숙의 문화읽기] 배재학당역사박물관과 ‘무대디자인’展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19.12.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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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숙 한예종 교수/무용평론가<br>
▲ 성기숙 한예종 교수/무용평론가

짙은 구름 탓일까. 낮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은 토요일 한낮의 분위기를 한껏 어둡게 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제일교회를 뒤로하고 서소문길로 방향을 잡는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배재공원을 지나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을 마주하니 새삼 반갑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현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는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무대디자인’展이 열리고 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품고 있는 공간의 역사성은 이번 ‘무대디자인’展의 의의를 한층 배가시켰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관람은 물론 ‘무대디자인’展을 통해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의 무대디자인 흐름을 조망하는 일석이조의 문화적 소양을 쌓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알다시피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으로 명성이 높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1858~1902)가 설립한 근대 신교육의 발상지요, 신문화의 요람이다.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교명은 고종황제가 하사한 이름에서 기원한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을 담겨 있다.

예사롭지 않은 교명 작명은 기념비적 증거를 남겼다. 125여년의 세월이 집적된 배재학당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빛나는 걸출한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 학교 설립자 아펜젤러와 배재학당, 그리고 배재학당 출신 근대 지식인과 문화엘리트들의 족적이 박물관을 가득 메우고 있다.

1층 상설전시실에는 고종이 하사했다는 ‘배재학당’ 현판을 비롯 국한문혼용체로 씌여진 유길준의 「서유견문」, 아펜젤러의 친필일기 등이 전시돼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 주시경 선생, 소설가 나도향과 시인 김소월의 초상이 있고, 특히 ‘진달래꽃’ 시집 초판본 표지가 시선을 끈다.

아펜젤러와 그의 가족의 일상이 담긴 유물은 2층에 전시되어 있다. 피아노를 비롯 책상, 타자기, 거주허가증, 일상용품 등 다양하다. 낯선 땅에서 선교와 교육을 위해 일평생 헌신한 아펜젤러의 거룩하고 숭고한 삶의 파편을 엿본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소장 「텬로력뎡」 목판은 눈여겨볼 기념비적 유물에 속한다. 존 버연이 집필한 「천로역정」(1678)이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895년으로 기록된다. 개화기 선교사로 한국에 정착한 제임스 게일이 한글로 번역했다. 서양의 종교소설이 배재학당이 운영하던 삼문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텬로력뎡」 목판에는 한글소설과 함께 김준근이 그린 42장의 삽화가 새겨져 있어 주목된다. 알다시피 기산(箕山) 김준근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김준근은 「텬로력뎡」에서 한국 최초로 서양식 원근법을 구현한 화가로 알려진다. 구한말에 활약한 그에겐 ‘최초의 한국인 국제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독일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 이력도 이채롭다. 그는 그림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풍속을 세계만방에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세계적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최승희·조택원과 견줄만한 선구적 인물로 손색이 없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한 켠을 채우고 있는 ‘무대디자인’展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과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공동주최로 열린 ‘무대디자인’展 타이틀은 ‘무대 위의 새로운 공간의 창조’다.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가 창조한 공연산물 중 무대미술 관련 사료를 다루고 있다.

‘무대디자인’展은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공간배치가 눈에 뛴다. 국립극장에 둥지를 튼 국립창극단, 국립관현악단, 국립무용단에서 생산된 무대미술 자료들이 각 섹션별로 소개되어 있다. 나아가 이관단체인 국립극단,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의 무대미술 자료도 별도의 섹션으로 꾸며놓는 등 세심함이 돋보였다.

무용을 비롯 연극, 음악 등 대부분의 공연예술은 장르의 특성상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작품 자체가 증발해 버린다는 속성을 지닌다. 대신 대본, 의상, 무대장치 등은 그대로 남는다. ‘무대디자인’展은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와 협업한 여러 무대미술가들의 고뇌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무대미술가의 스케치와 평면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예술품’으로 손색이 없다. 단지 조력자로서가 아니라 명작의 탄생을 위해 치열한 작가정신을 발현한 무대디자이너의 예술적 상상력을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전시로 기억된다. 이번 전시는 국립극장 전속예술단체가 성취한 무대디자인 변천사의 속살을 조망할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박물관의 지난 10년의 궤적을 더듬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알다시피 국립극장은 한국 공연예술의 정신적 본산이다. 국립극장 내 공연예술박물관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지난 10년간 공연예술 전문박물관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자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기록문화의 결핍을 채워줬다.

무릇 박물관이란 역사·기억의 저장고로서 인류에게 정신적 토양이 돼준다. 또 예술가들에겐 창작의 영감을 제공한다. 1930년대 후반 신무용가 조택원은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거의 매일 박물관에 갔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뮤제 기메’와 인연이 닿아 그곳에서 무용공연을 갖는 등 뜻밖의 행운을 누렸다고 전한다.

박물관은 한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문화의 씨앗이 자라나는 소중한 토양인 것이다.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공연예술의 숙명을 넘어 ‘순간과 영원’의 공존을 꿈꾸는, ‘문화의 힘’이 분출하는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의 미래를 그려본다. 이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의 공연예술박물관으로 거듭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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