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친일’ 논란, ‘표준영정’ 공론장에 나와야 할 때
[단독]‘친일’ 논란, ‘표준영정’ 공론장에 나와야 할 때
  • 이은영ㆍ김지현 기자
  • 승인 2019.12.16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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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영정 과학적 기법 기반 한 실재적 역사고증 필요”
“표준영정 그린 화가의 친일 행적 논란...교체 위해 합의해야”

표준영정(影幀)이 오랜 기간 뜨거운 감자다. 영정은 업적과 인품이 뛰어나 존경받을 선현을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영정은 각 개인별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社堂)에 걸린 것이 많다. 선현의 영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교훈을 만나기도 하지만 격동의 근대기를 겪으며 민감한 사안 중 하나로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어떤 부분이 정부가 규정에 의거해, 심의를 통해 지정한 ‘표준 영정’의 문제로 지적되는 걸까?

‘표준영정 제도’이전 그린 표준영정, 고증 연구로 기준 재정립 필요

표준영정 제도의 시작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4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맞아 ‘전국 각지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통일하고 충무공 이순신 동상 건립을 규제하는 방안을 전문가와 협의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73.4.28) 및 국무총리지시(73.5.8)가 있었다.

▲1973년 표준영정심의회의결과보고 일부 (캡쳐=국가기록원 공개내용 캡쳐)

선현 영정 및 동상 실태조사가 ‘선현 동상(영정)의 난립과 조잡하고 저질 동상(영정)을 사전에 예방하라’는 목적으로 사전에 진행됐고('73.6.30), 조사 위원회는 실태조사에 따라 영정과 동상을 AㆍBㆍC급으로 구분했다.(73.9.4) A급은 종전대로 조치ㆍB급은 감독관의 판단에 따라 종전대로 조치 혹은 폐기ㆍC급은 폐기로 나눴다. ‘표준’의 미명 아래 ‘A 급 표준’이외의 표준영정과 동상이 생겨난 것이다.

우선 표준영정은 ‘실상 사진이 있는 선현과 믿을만한 영정이 있는 선현의 영정’을 기준으로 지정됐다. 표준영정 심의 제도 신설 당시 명확한 기준으로 그린 영정이 아닌, 기존의 영정을 ‘표준’으로 정한 것이다. 실제로 1973년 11월 2일 관보-공고(이충무공표준영정지정(문화공보부공고제191호)와 세종대왕표준영정지정(문화공보부공고제192호)에 따르면, 표준영정 지정번호 1호인 ‘충무공 이순신’은 월전 장우성의 1953년에 그린 영정이고, 2호인 ‘세종대왕’은 운보 김기창이 당해 5월 그린 영정으로 확인됐다.

▲1973년 11월 2일 관보-공고(캡쳐=국가기록원 공개내용 캡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5천 원 권과 5만 원 권 지폐에 있는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 초상을 그렸으며, 화폐 영정 작가로서 유일한 생존 작가인 일랑 이종상 화백은 “5천원 권과 오만원 권이 나오기 전에는 이당 선생이 그린 율곡과 어머니 신사임당 영정이 있었는데, 그것이 오죽헌에 걸려 있었다” 라면서 “이는 70년대 이전의 작품들로, 당시는 표준영정 제도가 없을 때였다. 영정 제작 주문이(문중에서) 작가에게 들어오면 사진이 남아있지 않고선, 작가에게 다 일임하는 방식 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진이 없는 선현이면 화가의 안목과 상상에 의존한 것이며, 그런 방식의 초상들이 심의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엔 많았다. 또 그 초상들이 표준영정이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강릉 오죽헌에서 문화공보부에 표준영정지정을 요청하는 문서(캡쳐=국가기록원 공개내용 캡쳐)

이 화백이 예로 든 율곡 이이 초상의 경우 강릉 오죽헌에서 낸 ‘표준영정지정 신청’ 내용에서 1965년 10월 13일 이당 김은호가 그린 초상을 표준영정으로 지정해 달라는 내용을 확인했다.

이 화백은 “5만 원 권 화폐에 신사임당 도안을 그릴 땐, 한국은행에선 법적 의무인 표준영정을 기준으로 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정부 표준동상영정심의위원이었고 이당 선생의 표준영정이 고증 없이 그려진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은행에 신사임당 영정의 새로운 고증을 허락받았다. 머리 모양이나 복식은 전문가들과 고증을 거쳤고 화폐용 도안에 맞춰 얼굴도 측면으로 각도를 틀어서 그렸다”라고 설명했다.

▲강릉 오죽헌에 소장중인 신사임당의 표준영정(지정년도:1986, 제작작가:이당 김은호,영정크기:세로140cm X 가로85cm, 소장지:강릉 오죽헌)(사진=전통문화포털 -선현의 표준영정)

그러면서 “5만 원 권 발표 당시 한창 신사임당이 기녀 같다는 등의 별별 의견들이 난무했지만, 철저한 고증을 거쳤기에 흔들리지 않았다”라며 당시의 일화를 전했다. “문중에선 이당이 그린 사임당의 ‘표준영정’을 오래 봐와서 익숙해졌기에 내가 그린 영정이 달라졌다고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영정을 다시 그리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차이가 큰 표준영정의 경우 반드시 고증이 필요하다. 표준영정은 교과서에 실리는 만큼 교육적 측면에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평면화인 표준영정을 기초로 입체적으로 만든 동상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정면을 그린 표준영정을 기준하면 앞ㆍ옆ㆍ뒷모습은 다 상상이 되는 것이며, 각도에 따라 인물의 인상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랑 이종상 화백이 도안한 5만원 권 지폐(도판=한국은행)

현재의 ‘표준 영정’ 심의는 기존에 그려진 영정을 표준영정으로 지정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전심의로 운영된다. 사전심의는 ‘영정’을 그려 표준영정으로 지정받고자 하는 "각급 기관"은 영정 완성 전 실물크기 초안을 영정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신청하는 방식이다.

40여 년 전 만들어진 ‘표준 영정’제도와 달리 현대는 새롭게 발굴된 복식사 자료와 유물 등으로 진전된 연구 성과가 축적돼, 과학적 방법에 기반 한 좀 더 실재적인 역사고증이 가능해졌다.

표준영정을 그린 화백의 친일 행적 논란

‘표준영정’ 제도가 탄생한 이래, 친일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 논란은 거듭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3인의 화백이 그린 영정이 논란의 핵심이다.

특히 ‘표준영정’ 1호이자 월전 장우성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의 경우 비영리민간단체 및 언론에서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장 화백이 그린 ‘충무공 이순신’을 표준영정 지정 해제해야 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문화재청 현충사 관리소는 지난 2010ㆍ2017년 각각 1차와 2차로 작가 친일 논란과 의복 고증 문제를 이유로 문체부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부 표준영정 지정해제를 신청했다.

문체부는 문화재청의 표준영정 지정 해제 신청 2년여 만인 지난 6월 영정ㆍ동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부 표준영정 지정해제 신청을 반려했다. 이에 지난 8월에는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충무공 15대손이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재제작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했다.

▲이순신 표준영정(지정년도:1973, 제작작가:월전 장우성, 영정크기:세로193cm X 가로113cm,소 장 지:아산 현충사)(도판=전통문화포털 -선현의 표준영정)

지난 10월 국감에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영정 동상 심의 규정 개정안 제도 정비를 서두르겠다”라며 “현충사 관리사무소에서 신청하는 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의 타당성을 심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도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은 작가의 친일 논란과 영정의 복식 고증 오류 등으로 지속적으로 교체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라며 "문체부와 협의해 합리적인 해제 및 교체 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답했다.

명지대 이태호 미술사학과 교수는 친일 화가가 그린 표준영정 관해 "일제시대에 친일한 화가의 굴절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시대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훗날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미담이 되었을 것"이라며 "현재 표준영정을 그린 친일 화가 대부분이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의 민족정신을 기리는 3.1문화상 등과 같은 영예를 거부하지 않고 받은 것이 문제이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초상을 그리는 화가의 정신세계 자체가 친일 정신을 가졌었는데, 초상화 인물의 정신세계와 동일할 순 없더라도 정 반대인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재제작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8월달에 있었다(사진=청와대 청원)

일각에선 표준영정을 그린 친일 화가의 표준영정에 관해 “근대화 과정 모색의 한 과정으로, 생활문화와 정치문화의 구별의 필요하다"라며 “‘친미파’여서 다 양복을 입는 것이 아니듯, 당시는 일본 문화가 동양의 국제문화였다”라고 주장한다.

표준영정을 그린 화가의 친일 행적 논란에 영정 교체가 국민정서상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다면 영정은 교체되어야 한다. 다만 문제의 영정은 화폐ㆍ인쇄물 등에 오랜 기간 사용됐고, 폐기 비용 및 교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다. 또한 국민 머릿속에 이미 각인된 영정을 교체한다면 ‘사회적 혼란’도 예상된다.

따라서 교체의 방법으로 기존 영정을 구 표준영정으로 두고, 새롭게 그려진 영정을 신 표준영정으로 지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해지에 따른 비용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문체부 표준영정 담당자는 “영정동상심의규정(훈령 제401호)이 지난 2일 자로 개정 완료되었다”라고 전했으며, 문화재청 표준영정 담당자는 “문체부의 개정된 심의규정을 토대로 ‘이순신 장군의 용모 문제’를 반영한 3차 표준영정 지정해제 신청 계획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20년 이전의 역사적 내용은 어디서...심의위원회 부담감도 커

‘표준영정’에 관한 취재를 하며 현재까지, 표준영정의 자료 수집은 쉽지 않았다. 선현의 표준영정의 자료를 살필 수 있는 '전통문화포털 홈페이지(선현의 표준영정)'를 수차례 검색했지만  2007년 78번으로 새롭게 지정된 유관순열사의 표준영정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고, 영정 지정목록과 지정의의는 2006년 2월을 끝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는 안 돼 있었다.

표준영정을 관장하는 문체부 관계자에게 “표준영정이 시작된 73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자료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표준영정에 대한 기록물(역사) 등은 국가기록원 기록물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라고 답변했다. 유관순 영정이 왜 지정해지가 된 것인지. 작가의 몇 년도 작품이 표준영정 인지. 표준영정 봉안 위치의 변경까지. ‘표준영정’의 정보를 찾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표준영정의 정보를 보여주는 '전통문화포털 홈페이지' 업로드가 지난 2006년 이후 관리가 되지않고 있다(사진=전통문화포털)

영정동상심의규정 제4조제5항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정부표준영정의 활용이 확대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관련 정보 서비스를 강화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으나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표준영정’의 명확한 사실 확인과 역사 확인하기 위해, 영정 동상 심의위원회장인 조용진 서울교대 교수에게 자문할 때마다 본인이 심의위원회에 속했을 20년 전 기억을 바탕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표준영정을 지정하는 심의위원회는 관련 학계 인사로 구성된 영정ㆍ동상 심의위원회가 회의 결과에 따라 심의를 하면 심의 결론을 토대로 문체부가 표준영정 제작 신청기관에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이다. 현재 심위위원회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심의위원장인 조용진 교수는 “심의위원회는 고증적ㆍ오류나 친일 화가가 표준영정을 그린 문제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곳이 아니다. 일종의 기술 위원회다”라며 “지자체에서 심의 요청이 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화가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해주고, 그걸 참고해 자문 회의를 연다. 의결기구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표준영정의 정보를 보여주는 '전통문화포털 홈페이지'에선 새롭게 지정된 유관순열사의 표준영정을 찾을 수 없다 (사진=전통문화포털)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고, ‘표준영정 제도’가 생긴 지 반 백 년을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9조 1항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에 기초해 ‘표준영정 제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할 때다. 공론의 장으로 드러내 치열한 토론을 거쳐, 표준영정과 동상의 합당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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