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모차르트, 상처를 어루만지는 음표 다섯 개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모차르트, 상처를 어루만지는 음표 다섯 개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19.12.16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나와 함께 숨 쉬었고 내 존재의 일부였던 그 사람이 세상에 없다니, 그런데도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니…. 믿을 수 없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극한의 슬픔 속, 모든 언어가 멈췄을 때 음악 한 줄기가 남아 있다. 미국 가수 멜라니 사프카는 <가장 슬픈 것>(The Saddest Thing)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태양 아래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죠. 내가 알았던 모든 것은 내 삶이 됐고, 결국 나 자신이 됐죠.” 

멜라니 사프카 <가장 슬픈 것>
https://youtu.be/EAIBGE_cQ_Y

1785년 11월,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 동료 프란츠 에스터하치 백작과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공작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존경하는 두 친구를 보내는 장례식에서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장례음악 C단조를 지휘했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쓰라린 순간이 눈앞에 선연히 펼쳐진다. 오보에, 호른, 콘트라파곳이 슬픔에 찬 화음을 펼칠 때 모두 고개를 떨군다. 덧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어쩔 수 없다(1:22). 고귀했던 벗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1:55). 꽃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2:35). 하늘은 왜 이리 푸른 걸까? 바람은 왜 이리 맑은 것일까? 사랑하는 벗의 죽음에 어쩔 수 없이 오열한다(3:28).

프리메이슨 장례음악 C단조 K.477 (이스트반 케르테츠 지휘 런던 심포니)
https://youtu.be/--sDBQuz6DY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 먼저 떠난 이는 추억 속에 살아 있고, 때로 ‘천개의 바람’이 되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풍의 마지막 음표는 이제 눈물을 거두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민감한 모차르트는 늘 죽음을 생각했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 그는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에서 6번 가족의 죽음을 겪었다. 22살 때 어머니, 3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 중 4명이 어려서 죽었다. 당연한 귀결로 그는 살아있는 날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잘 알고 있었고,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나누는 게 유한한 인간들의 가장 큰 축복이라는 점을 체득하고 있었다. “삶의 비극적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이 진정 즐거운 사람”이라는 말은 모차르트에게 완벽히 적용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1787년 4월 4일, 이렇게 쓴다. “죽음이란 것은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이고, 저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좋은, 참된 벗인 죽음과 이미 친숙해졌기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이 두렵기는커녕 반대로 위안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는 아직 젊지만 잘 때마다 ‘오늘밤에 잠들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 때문에 제가 침울해 보인다거나 슬퍼 보인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버지의 병이 나아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 모든 바램에도 아버지의 병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더 편찮아지신다면, 부디, 부디 제게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아버지를 안을 수 있게….” - 1787년 4월 4일 아버지에게   

모차르트는 1784년 12월 자유, 평등, 우애를 모토로 한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 귀족, 지식인, 예술가 등 당대의 계몽사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으로 요젭 하이든, 로렌초 다폰테, 엠마누엘 시카네더 등 수많은 음악 동료들은 물론, 아버지 레오폴트도 동참했다. 모차르트를 아꼈던 계몽군주 요젭 2세는 프리메이슨을 합법화했다.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 의례를 위한 칸타타를 여러 곡 썼고, 프랑스 혁명으로 모임이 불법화된 뒤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앞뒤 계산을 하기보다 우직한 마음으로 헌신한 것이다. 이 장례음악은 모차르트가 프리메이슨을 위해 쓴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다. 

프리메이슨은 프랑스 혁명 이후 불법화됐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더욱 열심히 이 모임을 주도했다. 영리한 사람들이 몸조심을 하던 1791년 가을,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상징으로 가득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발표하고 칸타타 <우리의 기쁨을 큰 소리로 알리세>를 지휘한 뒤 병석에 쓰러져서 두 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황제의 비밀경찰에 의해 타살됐다는 의혹이 아직도 존재한다. 모차르트의 정확한 사인은 증명할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는 영구 미제로 남았다. 모차르트는 사망 직후 빈 근교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매장됐지만 시신을 찾을 수 없다. 빈 중앙공원에 있는 모차르트의 묘는 시신이 없는 ‘헛묘’일 뿐이다. 빈을 찾을 때마다 텅 빈 모차르트의 영전 앞에 이 프리메이슨 장례음악이 흐르고 있다고 상상하곤 했다. 

아픔이 아픔을 어루만진다. 사람들은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간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 오직 그것만이 희망의 영원한 샘이 아닐까? 모차르트는 죽은 벗을 애도하는 음악도 썼지만, 대부분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음악이다. 그의 오페라 중에서 아픔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동작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있다. 먼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피날레 첫 부분, 절망한 파미나 공주를 세 소년이 위로하는 장면이다. 지혜의 정령인 세 소년은 곧 어둠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올 거라고 노래한다. “(세 소년) 곧 아침이 밝아 오리라 / 태양이 떠올라 황금빛 길을 비추면 / 미신은 사라지고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리라 / 달콤한 평화여, 우리에게 내려와 / 사람들의 가슴 속에 돌아와 다오.”

이 때 여주인공 파미나가 미친 듯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칼을 들고 무대에 나타난다. 그녀는 어머니 밤의 여왕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사랑하는 타미노 왕자는 침묵의 시련을 겪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파미나는 그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한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파미나, 칼을 들고) 그대가 나의 신랑이 되겠군요. 그대의 도움으로 내 비탄을 끝내리라. (세 소년) 이 무슨 끔찍한 말인가! 이 불쌍한 소녀는 거의 미쳤구나. (파미나) 저는 죽을 거에요. 제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 분이 진정한 사랑을 이렇게 저버리다니! 어머니가 주신 칼이에요. 사랑의 고통으로 시들어 가느니 이 날카로운 칼로 죽는 게 낫지. 어머니, 저는 당신 때문에 고통 받습니다. 당신의 저주가 저를 따라다녀요. 아, 내 슬픔의 잔은 가득 찼네. 무심한 왕자님, 안녕! 파미나는 당신 때문에 죽습니다!” 

세 소년은 파미나가 칼로 자살하는 것을 저지한 뒤 타미노 왕자가 오직 파미나 공주만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 소식에 파미나는 금새 희색을 되찾는다. 절망에 빠진 파미나를 세 소년이 위로할 때 “파미레도시~” 이렇게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 소리가 들린다(링크 3:32). 이 다섯 음표는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동작과 일치하는데, 무려 6번이나 나온다. 파미나의 상처에 정성껏 공감하는 세 소년의 마음 그 자체다. “(파미나) 뭐라고? 그 분이 나만을 사랑한다고? 그러면서 감정을 숨기고 나를 외면하신 거라고? 그 분은 왜 내게 아무 얘기도 안 하신거지? (세 소년) 그건 밝힐 수 없어요. 하지만 그 분을 보여드릴 수는 있어요. 그가 온 마음을 당신께 바치고 있다는 걸 알면 놀라실 거에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과 직면하고 계시죠.”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곧 아침이 밝아오리니’ (소프라노 케슬린 배틀)
https://youtu.be/zJ5zjtQy8pI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타미노 왕자가 변심했다고 생각한 파미나 공주는 자살을 결심한다. 세 소년이 파미나를 위로할 때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가 들려온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동작과 일치하는 음악이다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타미노 왕자가 변심했다고 생각한 파미나 공주는 자살을 결심한다. 세 소년이 파미나를 위로할 때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가 들려온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동작과 일치하는 음악이다

이와 비슷한 다섯 음표는 오페라 <돈조반니>에도 나온다. 막강한 귀족이자 천하의 바람둥이 돈조반니는 결혼식을 앞둔 새신부 체를리나를 유혹한다. 약혼자 마제토가 볼 때 돈조반니는 파렴치한 유혹자일 뿐 아니라 귀족 신분을 이용하여 서민을 짓밟은 악당이다. 그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돈조반니를 추적하지만, 오히려 돈조반니에게 흠씬 두드려 맞는다. 몸도 상처투성이지만 마음은 더 아프다. 이때 체를리나가 나타나 그를 위로해 준다. 그녀는 마제토를 가슴에 안고 심장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체를리나의 아리아 <내 사랑, 당신은 알게 되실 거에요>(Vedrai Carino)다. “(체를리나) 내 사랑, 당신이 착하게 군다면 멋진 보답을 해 드릴께요. 자연 치료법이랍니다. 보이진 않아요, 약국에 가도 없어요. 제가 갖고 다니는 특별한 연고에요. 이걸 한번 바르시면 다른 약은 필요 없을 거에요. 제가 그걸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요? 제 심장이 뛰는 걸 느껴보세요.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를 만져보세요.” 

모차르트 <돈조반니> 중 체를리나 아리아 <내 사랑, 당신은 알게 되실 거에요>(Vedrai Carino, 메트로폴리탄 공연, 소프라노 홍혜경)
https://youtu.be/5K-qpROdBsw

<돈조반니>에 나오는 노래답게 매혹적이고 관능이 넘친다. 체를리나의 가슴에 고동치는 사랑의 맥박이 마제토의 상처를 감쪽같이 치유한다. 반주 부분에서 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가 들리는데, 이 또한 상처를 쓰다듬어 주는 손동작과 일치한다(링크 2:04부터). 순식간에 기운을 회복한 마제토는 체를리나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퇴장한다. 

오늘도 세상은 분노와 상처가 가득하다. 한낱 음악으로 이 거대한 아픔을 달래는 건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차르트의 다섯 음표는 사랑이 있기에 희망도 있다고 말해 준다.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당장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자.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박한 기쁨을 동료와 나누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한다면 희망은 바로 그 곳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