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문학적 상상력이 21세기 경제의 기초다” (1)
임헌영,“문학적 상상력이 21세기 경제의 기초다” (1)
  • 임미성 재즈보컬리스트
  • 승인 2009.11.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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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와 재즈보컬...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역사의 만남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지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이 8년이나 걸렸고, 친일 인사 4,370명에, 유족들의 이의신청, 법적 소송 4건,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부통령,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씨 등등의 화려한 이름들이 사전에 올랐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 장지연 선생 유족들이 소송까지 냈고, 패했다(참고로, 이 대담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뤄졌다). 무수한 설전이 오가고 있는 중심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있다. 40여 년 문학평론가로도 활약해온 임 소장을,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한 내공 깊은 실력에 우리 시조나 판소리를 접합시킨 재즈보컬 임미성 씨가 만나, 문학과 역사와 재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뵙는 것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저희집도 이산가족이라 그런 것 같아요. 어린시절 가족과의 이별이 선생님의 민족주의 역사바로잡기 평생의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친일 인사 4,370명, 유족들의 이의신청, 법적 소송 4건,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부통령,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씨, 이런 분들이 가장 논란이 되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 장지연 선생 유족들은 이번에 소송까지 냈습니다.

그간 숱한 어려움에 대해서는 보도를 통해 대강은 알고 있는데,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세계 역사에서 자기민족의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모든 나라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입니다. 유럽이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국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역사 앞에서 정당한 심판을 통해 미래의 역사를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역사만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나라도 앞으로 잘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마침 오늘 오전 박정희와 장지연 배포금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기각됐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연구자들이 연구하는 것이 개인의 명예와 관계없다라는 판단과 역사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야 하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심판자가 아닙니다. 우리조상들이 숨기려고 했던 부끄러운 일을 우리 함께 반성해야한다는 것이 친일인명사전의 목적입니다. 우리 캐치프레이즈는 연구자들이 내 조상의 행적을 쓴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해원굿과도 같은 것이죠.

제 경우 프랑스에서 6년간 공부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전후 1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법정 앞에서 냉정한 심판을 받았고, 이를 반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사람이 코코샤넬인데요 유명 디자이너로서 그는 프랑스에 많은 이익을 준 것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립운동을 도운 것이 참작됐다고 합니다. 코코사넬은 상징적 의미였죠. 자유분방한듯 하지만 내적으로 질서를 잘 이루고 있는 프랑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나치경력이 있으면 지금도 공직에서 해직됩니다. 공소시효가 없죠. 유럽 전체가 그렇습니다. 가수 중 에디뜨 피아프도 2차대전 후 철저하게 조사받았는데 독일군이 마련한 공연에 두 번 갔다 온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후에 그녀가 포로들을 탈출시키기도 하고,그녀의 아파트가 유대인의 탈출아지트로 쓰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풀려났습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온지 7개월 정도 됐는데 이제야 겨우 적응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독립적인 삶보다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때로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며칠 전 선생님의 책에서 읽었는데요. ‘나의 문학관은 인간의 삶 자체이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국에서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주류와 비주류에 속하지 않으며 제도권과 비제도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와 질서라는 문제의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60여 년이나 흘렀고,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현실에서 화합을 해도 모자란데 분열을 꾀하는 소행이다” 라며 일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민족의 주체성을 찾자는 것이 분열일까요? 오히려 찾지 말자는 것이 분열입니다. 국민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되고 앞서가고 있습니다. 유럽 FTA를 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유럽적인 가치관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겠죠. 즉 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유럽적인 가치관은 유럽적인 과거사청산을 통해 시작됐습니다.

두 번째는 이데올레기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종교전쟁이 없는 세계의 몇 안되는 나라입니다. 같이 살아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서울대 합격시켜준다면 굿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지

금 일어나고 있는 지구상의 전쟁은 대부분 종교전쟁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에 관한한 종교처럼 관대하지 못합니다. 온 세계는 종교문제를 극복하지 못해서 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우리는 대단히 행복한 민족입니다.

이제 서둘러 이데올로기에 대한 갈등을 완화시켜야 합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해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우파는 자본주의를 신봉하며 이데올로기에 관대합니다. 진정한 우파는 이데올로기를 가리지 않는 자유주의 정신과 함께 민족과 국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그동안 신변에 위협 같은 건 없으셨는지 문화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렵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비판이라면 즐겁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서로 배우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우리가 발전해 나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의 패턴, 흐름, 유행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대간의 갈등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죠.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2030년이면 평균수명은 120세 라는데 노인문화라고 하지만 60세가 넘으면 안타깝게도 문화가 없다시피 합니다. 정년은 짦아지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거죠. 21세기에서 가장 큰 과제는 대중들이 원하는 문화예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프랑스에서 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고민 가운데  지금껏 공기처럼 생각해 왔던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수 있었고, 우리 언어와 문학에 대한 갈증이 새롭게 생겨나게 됐죠. 그래서 한국고전문학작품들도 다시 읽고 작곡가와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임미성씨의 앨범은 전위적이며 동시에 전통적인 요소가 잘 어울려진 작품이라 들었습니다. 가사는 어떤 작품을 소재로 했는 지 궁금하군요. 또 주변의 평가는 어떤가요?

파리에서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영어로 혹은 불어로 재즈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끔은 마치 잘 만들어진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후 파리에 있을 때 우연히 한국적인 분위기의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됐고, 이것을 계기로 한국의 고전문학작품과 재즈의 만남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작곡가인 허성우 씨의 힘이 컸습니다.

흔히 재즈는 비주류권이라 하는데 사실 이 말도 어폐가 있습니다. 백인들의 문화만 보편적이라 하고 칸소네, 오페라 등 서구 클래식 음악만이 주류 음악인 것처럼 말함과 동시에 그들의 시나 소설만이 예술문학인 것처럼 인식해 왔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중남미 라틴재즈에 세계인이 열광하게 됐고 이는 곧 백인 중심주의 가치관이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문화정책은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적인 보편성과 우리의 것을 잘 결합시켜야 할 때입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우리농악을 현대화 시킨 것이 사물놀이인데 재즈를 지금껏 우리전통적인 문화와 접목시킨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임미성씨의 작품이 앞으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게 될 거라 기대해 봅니다.

안동사범학교를 나와 고향에서 교사생활을 잠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생활을 왜 그만두셨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에 있으면서 3, 4학년 담임을 했는데 그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만 묻혀 있다보니  너무 답답하더군요.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오전수업만 하면서 교사들에게 선거운동하라는 명령을 받다보니 회의가 들더군요. 또한 4.19혁명이 일어나는 등 세상은 급변하는데 혼자 아무렇지 않게 시골에 있다는 자체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 해에 교사생활을 접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특별히 국문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시다면?

주변에서는 경제학과를 가라고들 하셨는데 막상 원서를 쓸 때 무슨 계시처럼 국문과를 선택하게 됐죠. 담임선생도 말리셨지만 제 선택을 바꿀 순 없었어요.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신 이래 40여 년 문학평론가로서 작품활동을 해오셨는데,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시절 민족문학, 민족역사 사회문제 등과 관련된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저는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봅니다. 신학이나 노래든 그림이든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함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공동체적 존재입니다. 문학이 민족역사는 물론 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학교 때부터 굳히고 있었죠.

민족문학이라는 길을 걸어 오셨는데 한국에 민족문학자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많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역사문제와 민족문제가 문학에 깊이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은 모두 민족문학이라 보셔도 됩니다.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박용하, 윤동주, 이상화 등 위대한 시인들이 다 민족문학자였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문학이었어요.  [2편에 계속]

인터뷰 임미성 재즈보컬리스트

정리/사진 이은영 편집국장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