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헛스윙밴드 : 오세혁이 써내려간 ‘웃음의 얄팍함’
[윤중강의 뮤지컬레터]헛스윙밴드 : 오세혁이 써내려간 ‘웃음의 얄팍함’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12.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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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재기(才氣)와 재기(才氣)가 만났습니다. 오세혁의 재기와 우상욱의 재기가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헛스윙밴드’라는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재밌습니다. 유쾌합니다. “그거면 된 거 아냐?” 그럴 사람도 많겠죠. 개콘 관객이 보고서 ‘개콘보다 재밌네’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마치 ‘재기 경쟁’에 ‘재미 베틀’을 하는 듯 보입니다. 오세혁의 대본이 이미 재미가 있는데, 우상욱은 마치 “이걸 내가 더 재밌게 살리지롱!‘하면서, 더 업그레드된 재미의 한수를 보여줍니다. 배우들은 이미 우상욱의 사전 작품 ’쿵짝‘과 ’얼쑤‘를 통해서 만났고, 연출의 의도를 우상욱 이상으로 파악하면서, 무대 위에서 ‘관객이 즐기면 성공’이란 미션 아래 각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합니다.

“Idea는 존재, Ideal은 부재” 뮤지컬 ‘헛스윙밴드’에 대한 내 한줄 평입니다. 개그콘서트라 생각하면 볼만 하지만, 뮤지컬로 보기엔 어렵습니다. 음악을 매개로 한 극으로 보기에도 좀 그렇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작품처럼 ‘희극적 페이소스’를 바란다면, 작가와 연출은 내게 뭐라 응수할까요? 요즘 웃음의 트렌드를 모른다고 지청구를 날리시겠습니까? ‘부평’이라는 지역과 ‘70년대’라는 시대와 ‘재즈’라는 장르가 만난 작품이라면, 작가와 연출이 ‘재미밖엔 난 몰라’하실 순 없을 것 같네요.

‘헛스윙밴드’는 재미에서 한 발짝 성큼 띠지 못했습니다. 재미를 재료 삼아서, 의미라는 음식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헛스윙밴드’는 시종일관 유쾌한 게 흘러갔다지만, 작품이 진행하면서 쌓아져야 할 ‘통쾌한 희열’과 보고나서 간직하게 되는 ‘상쾌한 여운’이 아쉽습니다. 순간순간 그저 휘발(揮發)되는 웃음이 있을 뿐입니다. 상대가 노(怒 No)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죠. 웃음이 매우 얄팍합니다. 시대를 떠올리고, 상황에 공감하는 웃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헛스윙밴드’는 ‘부평'과 ’재즈‘를 연결합니다. 부평이란 도시에 에스캄(ASCOM, 미군수지원사령부)이 있었고, 이 곳에서 미국음악이 소통되었던 것 사실입니다. 그런데 살짝 걱정되는 건 이 작품처럼  ‘부평 = 재즈’ 혹은  ‘ASCOM, = jazz'라는 다소 무리한 발상일 수 있습니다. 에스캄을 통해서 컨트리, 스윙 등의 음악이 소통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에스캄 안에서. 또 에스캄을 통해서, 한국이 영향을 받은 음악은 이른바 ’스텐다드 팝‘이란 미국의 대중가요가 가장 크다는 건 힘주어 밝힐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군부독재의 억압된 정권 아래서, ‘전국의 숨통을 획일로 막아버린 시대에 부평의 숨통은 아마도 재즈로 인해 시원했을 것’이라는 작가의 발상에는 동조하며, 그렇다면 ‘트라이아웃’ 형태의 이 작품은 앞으로 명실상부하게 ‘재즈’적 시각에서 봐서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이 작품은 전편에 걸쳐서 ‘재즈 = 프리’라는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애국가를 재즈버전으로 부른 것을 시작으로 해서, 동요부터 민중가요까지 재즈라는 장르 안에서 살려내려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직은 초보단계로 미흡합니다. 연주는 그래도 들을 만 해도, 편곡과 노래는 아쉽습니다.

“애국가를 재즈 버전으로 부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 또는 일탈’과 어떻게 연결되며, 그 다음으로 관객에게 얼마만큼 설득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 작가와 연출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세혁 작가는 ‘우리가 겪어왔던 시대의 재구성’에 강합니다. 이 작품에선 특히 ‘한국사회의 확일화에 대해서 고발’하는 있는데, 이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좀 식상합니다. ’시대의 보편성 속에서 인물의 특수성‘을 부각시켰으면 좋겠지만, 이번 작품에 한정한다면 스테레오 타입과 클리세(Cliché)의 종합선물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실존인물을, 보편적 캐릭터라는 이름 아래 단순화 시키고 희화화 시킨 것은 아닌지, 작품의 제작진들은 고민할 필요도 있습니다.

제 말이 좀 ‘꼰대’ 같나요? 하지만 오해는 마십시오. 진지하거나 엄숙해지자는 얘기로만 듣지 마세요. “진정(眞正) 해지고 엄정(嚴整) 해지자”는 부탁입니다. 진지와 진정은 좀 다르고, 엄숙과 엄정은 꽤 다르지요. 이 작품이 진지해질 필요는 없어도, 진정성은 더욱더 드러내야 합니다. 시작은 ‘개콘’일지라도, 끝날 때는 ‘개콘’일 순 업겠지요? 노래의 가치와 음악적 완성이 오히려 ‘재즈 = 프리’라는 구호를 공감하게 해줄 겁니다. 재즈는 프리이기도 하지만, ‘재즈 = 스킬’입니다. 음악적 자유에 도달 위해선, 오래동안의 노력을 동반해서 얻어지는 ‘스킬’없이는 불가능한데, 대본과 연출과 배우는 ‘걸음마’를 마스터하고 일어선 정도입니다. ‘스킬’은 구글과 유튜브에 범람하는 자료와 정보로는 알 수 없고, 몇 차례의 미팅과 합숙을 통해서 얻어지는 아이디어와 심적(心的) 공감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스킬’은 ’참[眞]을 향한 심신(心身)의 받침’이라 하겠는데, 무릇 ‘재즈’라는 장르에선 이것이 더욱더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함에도 ‘헛스윙밴드’는 이게 참 많이 부족합니다.

이 작품을 제작한 부평구문화재단에선 그간 부평과 음악을 소재로 해서 음악극을 제작해 왔고, 나는 그 작품들이 저마다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성냥공장아가씨’(2014)와 뮤지컬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2016~2018)의 첫해 공연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대본이 일단 큰 역할을 했고, 연출이 거기에 힘을 보탰습니다. 인천과 부평이라는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노래가 그저 노래일 순 없는’ 현대사적 맥락을 ‘곧고,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뮤지컬 ’헛스윙밴드‘는 ’넓고, 재밌게‘라고 인정은 할 순 있어도, ’곧고, 깊게‘ 파고드는 능역은 대본에서나, 연출에서나, 노래에서나, 모두 다 안타깝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과 ‘헛스윙밴드’에는 모두 ‘환상 속 아버지’가 등장을 하고, 둘 다 ‘오디션’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을 아주 냉정하게 살핀다면, ‘헛스윙밴드’는 어떻게 자기식대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영리한 작가와 명석한 연출은 앞으로 그들만의 방식을 찾아낼 겁니다.

어떤 인터뷰에선 오세혁 작가가 이리 말했더군요. “의미가 있어야 한다. 거창하거나 폭넓은 의미가 아니라 이 시대에 왜 이걸 써야 할까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있다.” 부평구문화재단이 제작한 ‘헛스윙밴드’는 앞으로 계속 공연이 된다고 하는데, 작가와 연출은 ‘헛스윙밴드’를 이제 진정하고 엄정하게 0상태로 놓고, 다시 냉혹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내년에는 좀 덜 웃겨 주세요. 대신 뭉클하게 해주세요. 웃으면서도 눈물나게 해주세요. ‘헛스윙밴드’가 아이디어로 출발한 작품이 아니라, 아이디얼을 향하는 작품으로 인식하게 되길 바랍니다. 부평구문화재단의 ‘헛스윙밴드’ 작품 제작에 관계한 모두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