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무용계 미투’ 그 이후...무용계 현실 대중 알아야
[특별기획]‘무용계 미투’ 그 이후...무용계 현실 대중 알아야
  • 이은영ㆍ김지현 기자
  • 승인 2019.12.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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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 여전히 무용계 권력으로 존재, 공공기관 등 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과거의 문제가 전혀 수정이 안 되어 고인 물로 남아있어” 문제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 “검찰 가해자 무혐의 처리 불복, 항고장 접수”
안무가 류 씨 징역 3년 구형,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공동체 책임과 역할 각성하는 계기”

최근 ‘고기 덜어준 행동은 성관계 암묵적 동의’라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무혐의를 내린 법원 판결에 비판이 일고 있다. 재판부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오해의 소지를 남긴 행동 중 식당에서 해당 남성에게 고기를 덜어준 것을 꼽으며, 성관계에 암묵적 동의를 했다고 봤다. 이번 판결 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에게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범위반과 강제추행, 강제추행교사 등으로 고소 당한 최창덕 씨가 서울서부검찰청에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리를 받았다. 검찰은 최창덕씨와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이 주고받은 내용이 피해사실에 대해 즉각적인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대화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 확인된 점, 일부 내용이 배치된다는 점을 들어 수사를 종결시켰다.

▲서울서부검찰청

‘무용계 성폭력’은 무용계 권력 구조에서 나온 것이다. 무용계 견고한 구조 속에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진심 어린 ‘사과’와 ‘자기반성’ 대신 변명을 한다. 또한 기존 질서 간의 권력 다툼으로 문제라 주장하며 본질을 흐린다. 그럴수록 ‘무용계의 성폭력’ 피해자가 소송까지 걸면서 외치고 싶었던 진실은 망각되거나, 2차ㆍ3차 피해까지 발생하는데 이른다. ‘무용계 성폭력’ 문제 정말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최창덕 씨의 검찰 불기소 결정에 관해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은 “아주 작은 가능성만이라도 있다면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준비하겠다. 결과에 절대 승복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사에 되묻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고객센터 직원이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 존경과 사랑의 의미가 담겼다고 여기는지, 더 나아가 그 말속에 호감이나 성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가 이런 말을 한데는 검찰 불기소 결정서에 ‘메시지 내용 일부가 배치된다’라는 판결에서다. 이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쩌면 나도 무용계 위계질서 속 약자고, 스승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걸지도 모르겠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무용계 구조적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무용계 성폭력 문제는 ‘도제식 수업방식’을 고수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 성폭력 가해자가 무소불위 권력을 장악한 무용계 기성세대(선배ㆍ선생)일 경우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무용계 구조 변화와 인식 개선이 없는 한 무용계에 몸담는 누구든 이 문제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무용계 카르텔들과 유착으로 무용계 생태 조정과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

연예ㆍ대중예술 등에 비해 ‘무용계’는 상대적으로 순수예술에 가깝다. 대중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폐쇄적 구조다. 무용계에서는 “무용계가 정·관계 및 무용계 카르텔들과 유착으로 무용계 생태 조정과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원 사업 선정과 공공기관 행사의 공적 영역에도 이들에 대한 배제 없이 특정 자리에 위촉되거나 콩쿨 심사위원ㆍ대회 심사 등을 맡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은 당시 2차 가해도 많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볍게는 나를 ‘꽃뱀’이라고 하며 조롱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라며 “여성 성범죄 문제와는 온도 차가 너무 컸다. 동성 피해자인 나는,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부분을 보호받지 못했다”라며 여성 성폭력 피해자와의 차별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무용계를 떠날 생각이 없고 몇 년을 쉬면서 돌아가더라도 내 일을 할 것이다. 더 열심히 갈고닦아서 불의와 부당함, 거대 권력구조의 위계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지난달 29일 경찰에 검찰 무혐의에 대한 불복 항고장 접수를 제출했다.

무용계의 이 모 춤평론가는 전통 무용계 성폭력에 관해 “‘도제식 문화’와 큰 관계가 있다. 의식 자체가 여러 문제가 반복돼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 한다”라며 “현재까지도 과거의 문제가 전혀 수정이 안 되어 고인 물로 남아있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들은 학생들의 육체적ㆍ정신적 부분에 지도력을 갖으며 그것이 ‘예술의 길’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강요 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성폭력 문제가 터짐으로서 전통 문화가 썩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전적 문제와 인격에 대한 비교육적 태도도 포함 된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도제식 교육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안에서 호흡하지 못하는 모습의 반증이자, 과거의 잔재다”라고 설명하며, 춤 비평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의견임을 강조했다.

무용계 성폭력의 해결책에 관해선 “제도적 측면에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배제 절차를 안전하게 정착시켜야, 사후 문제가 터져도 해결 방향이 잡힐 것”이라며 “성폭력 가해자에 사회적 지원과 공공기관 지원에서 배제돼야 하고, 협회 단체라도 배제 건에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성폭력 가해자를 제어할 강력한 법적 틀과 판례들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성균관대학교 ‘미투’ 폭로 교수며, 전국미투생존자연대를 이끄는 남정숙 전 교수는 이번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 사건에 관해 “성적인 부분은 ‘Yes Means Yes’다. Yes해야 Yes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타인의 신체를 허락 없이 만진 것은 성폭력이다”라며 “‘이는 특히 인권’의 문제다. 남자-남자ㆍ남자-여자 등을 떠나 젊은이와 나이 먹은 사람, 이런 문제가 아니라 상호동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권력형 성폭력 ‘미투’의 사항임에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성끼리의 추행과 강간만을 언급한 점과 무용계 권력형 성폭력에 관해 재판부에서  좁은 범위로 잡는 것은 문제다”라고 일갈했다.

“지원 사업 선정과 공공기관 행사 안무 등의 공적 영역에도 이들에 대한 배제 없이 특정 자리에 위촉되거나 콩쿨 심사위원ㆍ대회 심사 등 맡는 데서 문제 심각성 더해”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는 무용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전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고, 대수롭지 않게 경험들이 누적되는 것을 ‘하인리히의 법칙’이라 한다. 무용계 성폭력은 ‘군기 문화’의 길들여짐에서 출발 한다”라며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을 무시당하는 경험들이 쌓여 신체주권에 대한 가장 큰 침해인 성폭력에 도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폭력이나 폭언에 저항하지 못하다 보니, 성폭력으로 넘어가기 쉽고 성폭력을 당해도 고발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무용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관해선 “‘선생님’이란 단어가 너무 입에 붙어있다. 인사말로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레슨을 하는 모든 사람은 교수ㆍ대학교에 출강하는 강사ㆍ자기 연습실을 가지고 레슨을 해주는 관계이든, 다 스승과 제자로서 레슨을 받는 것”이라며 “콩쿨에 나가거나 대학 진학 등 진로와 연관이 될 때 그 관계가 좀 더 절대적이며 권력화 된다”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콩쿨 심사나 초청무대에 서는 문제에 관해선 “법적 책임과 예술계의 책임은 다른데, 예술계에선 문제가 지적된 사람들 중 문제에 책임을 져본 선례가 없다. 법적 처분 결과에 따라 예술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년 전 굉장히 안좋은 선례가 있다. 당시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판결이 난 사건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당시 교수직과 단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현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와 지원금 사업에 선정되고, 공공기관 안무도 하고 있다”라며 “법적 책임은 졌지만 예술계에선 안 좋게 남은 선례다. 20년 전에 처신을 잘못해 무용계가 지금까지 스스로 책임을 지는 문화를 만들지 못한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편 무용인들의 민간 권익단체이자 ‘서울무용제’를 주최하는 한국무용협회는 성폭력 가해자의 배제 건에 “협회로 성폭력 피해 민원이 접수된다면,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지난 7월 취재 때와 변함없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심사위원 선정’을 “배제하고 있다”라며, 출연자에 대한 배제 여부에 관해선 “신중히 검토 중이며, 추후 이사회를 통해 논의를 예정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지난달 열린 제40회 ‘서울무용제’(10월 12일~11월 29일)에서 20년 전 ‘제자 성폭력 사건’으로 실형 선고를 받은 국oo 씨가 출연자로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 ‘서울무용제’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무용인들의 잔치다. 무용 분야 축제 중, 50일간이라는 장기간에 열리는 제일 큰 규모의 무용 행사다.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문예진흥기금을 운영하는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지원금 지원에 관해 답변을 요청했으나 지난 9일 “답변 주겠다”라는 회신 이후 11일인(수)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안무가 류 씨 징역 3년 구형...무용계 연대행동, 지속적 대중 관심 필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지난달 28일 안무가 류 씨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 사건 공판을 열고, 변호인 측이 신청한 증인을 신문한 뒤 재판을 종결했다. 류 씨가 기소된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검찰은 류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으며,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 이수 명령 및 류 씨의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도 재판부에 청구했다. 검찰은 또 류 씨에게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으며, 5년의 보호관찰 명령 처분도 내렸다.

▲무용계 '미투 연대 오롯'(사진=JTBC 보도 영상 일부)

오롯 위드유는 이번 류 씨 재판에서 검찰 구형에 관해 “이번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과 역할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가 매우 중요하며 모든 연대인들이 재판부의 엄정한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편 무용계 민낯을 유튜브 채널로 폭로하던 무용인은 “무용계 성폭력 문제에 관해 내 일 아니라는 생각으로 지낸 적도 있었지만, 그 피해가 내 주변인에게 오니 생각이 바뀌었다”라며 “대한민국의 무용계 현실을 대중이 알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법

그동안 ‘무용계 성폭력’은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과거의 답습이 현재까지 이어져 무용계 문제로 반복돼 왔다, 그러나 이젠 각성이 필요하다. 피해 재발 방지 및 근본적 해결책으로 성폭력 연루자들의 심사위원 선정 및 공공사업 지원의 배제가 요구된다. 침묵으로 일관돼 온 ‘권력 카르텔’이 깨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