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난기류에 빠진 미술계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난기류에 빠진 미술계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19.12.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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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트인컬처 신간이 도착해 있다. 순간,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이하여 아트가 기획한 테마 특집이 기억나 얼른 펼쳐보니 내가 기고한 글이 실려 있다. 'Movies×Curators 7'이란 제하에 '한국영화 100년, '가상전시'로 다시 보다'라는 부제가 선명하다. 첫장을 넘기니 검정색 바탕에 왕치의 '씨네마 천국'이란 제목이 뚜렷한데, 그 아래로 글이 있고 옆 장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은 도판들이 알맞게 배열돼 있다.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은 미술보다도 원초적이고 연조가 깊다. 이번 아트의 특집에는 영화와 관련된 나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들이 실려 있다. 이태리의 전설적인 명화 '씨네마 천국'에 나오는 주인공 토토처럼 나의 마음 속에는 지금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고 있으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

영화는 문학이나 음악 등 다른 장르에 비해 미술과 더욱 가까운 관계에 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시각성이다.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는 특히 칼라의 경우 화면의 구도와 함께 시각적 요소가 중요시 된다는 점에서 미술과 높은 친연성을 지닌다. 국내의 유명한 영화감독들 중에 유독 미술전공자가  많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시각적인 감각의 유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영화에서 시각적 효과는 큰 비중을 차지하며, 감독으로서의 자질 또한 미술적 재능에 크게 힘입고 있다.

비단 영화뿐 만이 아니라 연극이나 티브이 드라마 또는 오페라에서도 미술감독의 비중 또한 무시 못 한다. 이들 예술의 장르 역시 사람의 감각 중에서 비중이 70퍼센트나 되는 시각적 효과에 크게 의존하다보니 미술적 요소가 살아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흥행이 좌우될 정도다.

건축을 비롯해서 광고, 의상, 영화, 연극, 티브이 드라마, 오페라, 인테리어, 잡지, 신문 등 미술을 필요 로 하지 않는 예술 분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 수년 간에 걸쳐 전국의 대학 중 순수미술과 관련된 학과는 침체의 길을 걸어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화과는 멀게는 십 여년 전부터 중부 이남지역에서 폐과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나마 숫적으로 열세인 한국화 전공자들이 최근 들어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등 약진하는 모습은 한국화과의 위기설을 잠재울 수 있는 요인이긴 하나 아직도 갈 길은 험난하다.

순수미술은 과학에 빗대면 기초과학에 해당한다. 아무리 응용과학이 잘 발달돼 있다 하더라도 기초과학의 토대가 탄탄하지 못하면 전망이 불투명하듯이, 미술 역시 순수미술이 부실하면 응용미술의 미래 역시 밝지 못하다.

요즈음 유행하는 협업(collaboration)은 순수미술의 발전을 염두에 둘 때 시너지 효과는 더욱 증폭된다. 가령 스마트폰 케이스나 여행용 가방  혹은 의상 디자인이 순수한 화가와의 협업에 의해 이루어질 때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미술 지향의 예술가들은 생존의 벽 앞에 부대끼고 있다. 정부는 아티스트 피(artist fee) 등 전업미술인들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한 정책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나 그 효과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게다가 업친 데 덮친 격으로 미술시장의 전망 또한 좋은 편이 못 되니 시각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각별한 지원과 관심이 절박한 시점이다. 

아트페어를 비롯한 화랑의 초대전은 전업작가들이 공들여 제작한 작품을 판매하는 미술시장의 대표격이다. 그런데 양도소득세를 비롯하여 최근에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제도는 미술시장의 부양책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형평주의는 타당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작가와 화랑이 다 고사한 다음에야 무슨 거두어야 할 세금이 있겠는가? 너무도 비현실적인 처사에 안타까워 몆 자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