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2020년은 대한민국 뮤지컬 70주년!
[윤중강의 뮤지컬레터]2020년은 대한민국 뮤지컬 70주년!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9.12.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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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입니다. 한반도는 미소냉전체제의 희생지(犧牲地)가 되어 버렸지요. 전쟁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같고, 살아남은 사람도 비극적인 삶을 살게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예술가도 많습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했으며, 자신의 분야가 좋아서 그저 열정을 받쳐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분단의 희생양(犧牲羊)이 되었습니다.

김해송, 현경섭, 이복본, 김형래... 여러 이름이 떠오릅니다. 해방 전엔 오케그랜드쇼(조선악극단)로 활약했고, 해방 후엔 KPK악단을 조직해서 버라이어티쇼를 정착시킨 분입니다. 이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뮤지컬의 초석(礎石)을 놓은 분들입니다.

KPK악단의 레퍼토리는 민요에서 재즈까지, 승무에서 탭댄스까지, 매우 다양했습니다. 음악시(音樂詩)라는 이름으로 노래와 연주를 현명하게 엮어냈고, 이후에는 무용시(舞踊詩)라는 형태의 공연도 했습니다.

KPK악단의 작품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오페레타’라는 형태의 공연이었습니다. 외국의 유명스토리를 가져와서 당시 한국과 KPK 실정에 맞게 번안(飜案)을 해서 크게 사랑을 받았지요, ‘플란더스의 개’는 ‘풍차 도는 고향’이란 작품으로 공연을 했고, ‘카르멘’은 ‘카르멘환상곡’이 되었지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은 그대로 살리되, 노래와 재담을 최대한 살리면서 진행되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손일평 - 지일연 부부가 출연을 했고,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복혜숙 배우가 유모로 출연을 해서, 극의 감초역할을 톡톡히 했다지요.

‘카르멘’에선 투우장면을 코믹하게 엮었고, 당시 탭댄스로 유명한 전해남이 출연을 해서 무대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답니다. KPK이 간판스타는 이난영와 장세정이었지요. 특히 이난영은 돈호세와 로미오 등 남성배역을 맡아서, 또 다른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KPK악단은 1945년말에 조직이 되어서, 1946년초부터 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까지 매우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펼쳤지만, 그 공연들이 모두 흥행에서 성공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같으 ‘카르멘’을 공연을 해도, 오페라단의 ‘카르멘’과 KPK악단의 ‘카르멘’의 반응은 매우 달랐답니다. 오페라단이 공연할 때는 객석이 썰렁한데, KRK가 공연을 하면, 극장 유리문이 깨진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KPK공연에선 오페라의 아리아나 하이라이트는 그대로 가져와서 공연을 하지만, 이 작품을 KPK악단의 형편과 대중들의 취향에 맞게 개편을 해서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KPK악단을 이끌었던 김해송의 천재적 재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해송은 가히 음악극에 필요한 모든 장르를 두루 능통한 인물입니다. 노래와 연주, 대본과 연출에 능했던 김해송은 때론 춘범(春帆)이란 필명으로 공연할 원안(原案)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이사랑전’과 ‘어머니의 노래’처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서 작품을 올렸습니다. 이 작품은 비극적 음악극으로 추정됩니다. KPK의 작품은 당시 표현에 따르면 ‘호화명랑(豪華明朗)한 뮤지컬 코메디형태와 대조되는 작품입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김해송은 6월초 ‘자매와 수병’이란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일 년 전에 영화관에서 상영했던 미국의 음악영화에서 스토리와 주요 뮤지컬 넘버를 살리면서, 극장공연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당시 악보로 없었을 텐데, 음원만으로 편곡해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십여일전까지도 공연을 했던 김해송은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남아서 차기작 ‘크레오파트라’를 준비하던 김해송은, 북한 측에 의해서 잡혀서 형무소에 수용되었지요. 이것이 가족과의 이별이고, 이후에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후의 스토리는 많은 분이 더 잘 아실 겁니다. 혼자가 된 이난영은 KPK란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고 ‘이난영악단’을 병행하면서 공연을 만들어내지만, 과거 김해송이 이끌던 KPK의 인기는 따를 수 없었지요. 이난영은 딸들을 교육시켜서 미군부대 공연에 진출을 시키게 되는데, ‘김시스터즈’는 이렇게 출발한 것이지요.

김해송의 KPK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뮤지컬은 출발했습니다. 나 혼자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이미 김해송과 동세대를 살았던 평론가 황문평(1920~2004)은 ‘인물로 본 연예사 - 삶의 발자국’에서 ‘뮤지컬의 선구자 김해송’이라 하고 있습니다.

해방이후, 김해송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뮤지컬이 시작되었습니다. 뮤지컬이란 것이 ‘노래과 춤을 매개로 해서, 연출 음악 무대가 삼위일체가 된 장르’를 말한다면, 이미 이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김해송이 특히 앞을 내다볼 줄 알았던 것은, KPK란 단체 안에는 동양과 서양의 노래와 무용을 모두 할 줄 아는 실력자의 진용을 갖춘 것이죠. 한영숙이란 한국무용가가 있었고, 전만경이란 서양무용가가 공존했습니다. 서양클래식을 전공한 테너 강준희, 오케레코드가수로서 트로트를 잘 부르는 최병호, 재즈에 관심을 둔 여성 보컬 노명애가 모두 적역(適役)을 맡아서 공연을 했습니다. 코메디언과 배우를 적절하게 활용을 하고, 악단의 멤버들도 음악극에 참여한 걸 보면, 그 시절에 ‘액터 뮤지션 뮤지컬’이 이미 선보였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게 됩니다.

김해송은 일찍이 대한민국의 뮤지컬을 출발시켰습니다. 김해송은 1930년대 후반, ‘저고리시스터’와 함게 유명한 ‘아리랑보이스’의 멤버였죠. 오케그랜드쇼의 프로젝트그룹은  김해송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합니다. 김해송은 1938년 한 해 동안, 오케레코드를 떠나서 콜럼비아레코드로 이적을 해서 만요(漫謠)를 많이 만들고 불렀는데, 이런 작업도 그가 이미 그 때 스토리텔링이 있는 ‘음악극’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들어줍니다. 김해송은 단지 ‘뮤지컬’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그린악단의 ‘살짜기 옵서예’(1966. 10. 26. 시민회관)을 ‘대한민국의 뮤지컬 1호라고 합니다. 초연에는 패티김, 김성원, 나영수, 곽규석(후라이보이) 등이 출연을 했습니다. ’살짜기 옵서예‘의 이런 형태의  배역 조합을 보면, 어찌보면 “KPK에서 시도된 배역의 벤치마킹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내가 여기서의 말하는 핵심은 ’1950년에 이미 대한민국에는 뮤지컬형태의 공연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1950년 1월 1일부터 9일까지 공연한 ‘칼멘 환상곡’이 대한민국 뮤지컬의 시작이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지난 4년간 뮤지컬적인 무대를 시도했던 KPK는 이 공연에서 ‘회전무대’를 사용했습니다. 이 공연은 화제가 되어서, 이후에 동양극장(현, 농업박물관 부근)에서도 계속 공연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의 시작은 KPK악단의 ‘칼멘 환상곡’입니다. 해방 후 4년간 역량을 쌓아온 KPK는 명실상부하게 뮤지컬이라고 할 ‘칼멘 환상곡’을 무대에 올립니다. 1950년 1월 1일부터 9일까지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당시 신문에서 ‘혁신적인 악극 - 칼멘환상곡을 보고’란 평(고경민)을 실렸는데, 지금의 뮤지컬평과 같은 시각에서 쓴 글입니다. 무대, 음악, 연출, 배우 등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단은 전쟁이 일어나기 6개월 동안, 신작공연과 과거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정말 이것이 한 개의 뮤지컬 단체에서 가능할 정도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김해송은 극장이나 흥행사를 스폰서로 하고 있고, 다른 연극이나 무용단체와의 협업을 통해서 많은 작품을 개발했습니다.  

KPK악단의 초기광고는 이렇습니다. ★시대(時代)와 같이 발전(發展)하며 시대(時代)에 선구(先驅)하는 젊은 show man들  ★명우(名優) 명기(名技)를 옹(擁)한 사계(斯界)의 NO.1 ! 

김해송은 1945년 미군정시기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까지, KPK악단을 중심으로 정말 많은 공연을 만들어냈고, 그가 ‘음악시’, ‘무용시’, ‘오페레타’, ‘버라이어티쇼’라고 이름 붙힌 공연들은 모두 이 땅의 뮤지컬형태의 공연의 초석을 깔아놓은 공연이었습니다. 김해송은 이리 대단한데, 남과 북에서도 모두 김해송이란 이름을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인해서 행방불명된 인물이었기에 그러했습니다.

2020년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은 이 땅에서 명실상부하게 뮤지컬공연이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해입니다. 2020년이 대한민국 뮤지컬 70주년임을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해방후 여러 형태의 악극공연의 성장과 거기서 큰 성과를 낸 KPK를 깊게 파고들면,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 뮤지컬공연의 보석과 같은 성과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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