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오페라 '마술피리'가 꿈꾼 평화 세상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 오페라 '마술피리'가 꿈꾼 평화 세상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19.12.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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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에 개봉된 '모차르트 쿠겔'(2006, 와인슈타인 감독)은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다. 오스트리아의 우주비행사 프란츠는 '마술피리'의 악보와 달콤한 ‘모차르트 쿠겔’(동그란 모차르트 초콜렛)을 갖고 우주 공간으로 나간다. 멀리서 바라본 지구는 경이로웠다. 인간이 그어 놓은 국경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별 위에서 사람들이 국익과 이념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지구를 출발할 때 아내는 만삭이었다. 그는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듣게 된다. 사랑하는 딸이 자라날 푸르른 지구, 그 위용과 함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의 아리아 ‘이 성스런 전당에는 복수가 없다’가 펼쳐진다. 

“이 성스런 전당에는 복수라는 게 없다. 곤궁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건 인간의 의무, 우리는 친구의 손을 잡고 기꺼이 더 좋은 나라로 간다. 이 성스런 전당에선 모두 서로 사랑한다. 배신은 없고 원수는 용서받는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모험의 세계다. 마술피리를 불면 사나운 동물이 춤을 추고 악당이 착한 사람으로 변한다. 이 피리가 있으면 위험한 불 속으로 걸어가도 괜찮고 거센 물결이 몰아쳐도 끄떡없다.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나가 걸어가는 시련의 길을 마술피리가 지켜준다. 이 오페라에서 모차르트는 우리에게 얘기한다. 위험으로 가득한 인생길, 그래도 음악이 있으니 아름답다고. 함께 걷는 벗이 있으니 든든하다고.

막이 오르면, 타미노 왕자가 괴물에게 쫓기고 있다. 밤의 여왕의 세 시녀가 그를 구해 주고, 밤의 여왕이 나타나 “딸 파미나 공주가 악당 자라스트로에게 강제로 납치됐다”며 그녀를 구해 달라고 하소연한다. 파미나의 초상을 보고 사랑에 빠진 타미노 왕자는 그녀를 찾아서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자라스트로의 사원에 도착한 타미노 왕자는 “자라스트로가 사실은 악당이 아니라 빛의 세계를 관장하는 선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타미노와 파미나는 만나자마자 사랑을 확인하지만 바로 결합할 수 없다. 말을 하면 안 되는 ‘침묵의 시련’,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작별의 시련’, 그리고 불과 물을 통과하는 ‘죽음의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마술피리의 힘으로 불과 물의 지옥을 통과한 두 사람이 노래한다. “우리는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두운 밤을 기꺼이 헤쳐나가리.” 타미노와 파미나는 시련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어 빛의 왕국을 이어받는다.

'마술피리'는 빛의 사제 자라스트로와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밤의 여왕의 대립 구도가 배경이다. 자라스트로는 타미노와 파미나를 진리의 세계로 이끄는 스승이다. 그에 따르면 밤의 여왕은 ‘오만한 여자’다. 하지만 밤의 여왕 입장에서 보면 자라스트로는 딸을 강제로 납치해 간 악당이자 ‘여성 혐오자’에 다름 아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밤의 여왕의 2막 아리아 ‘지옥의 복수는 내 가슴에서 끓어오르고’다. 밤의 여왕은 딸 파미나를 몰래 찾아와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본다. 파미나가 “자라스트로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격분한 밤의 여왕은 파미나에게 칼을 주며 노래한다. “이 칼로 자라스트로를 죽여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모차르트가 분노, 증오, 복수를 표현할 때 사용한 D단조의 ‘악마적’ 조성이다.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는 내 가슴에서 끓어오르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어린 소녀인 파미나는 차마 어머니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 절망에 빠져 있는 그녀를 발견한 자라스트로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성스런 전당에는 복수가 없다’, 프란츠가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보며 평화를 염원할 때 흐른 바로 그 음악이다.

'마술피리' 중 자라스트로 아리아 ‘이 성스런 전당에는 복수가 없다’ (베이스 르네 파페)

‘성스런 전당’은 바로 우리가 사는, 푸른 지구별이다. 이 노랫말대로 이 지구에 복수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페라를 자세히 보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마술피리'의 메시지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이 참을 이길 수 없다”는 가사에 집약돼 있다.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는 끝까지 화해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도 대립된다. 밤의 여왕은 가장 높은 음역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증오와 분노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송곳처럼 날카로운 음색이다. 반대로 자라스트로는 가장 낮은 음역의 베이스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화해시키는 넉넉한 음색이다. 자라스트로는 평화를 설파하지만 한편으로는 밤의 여왕을 비난하고, 그녀를 무력으로 제압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여자는 남자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여성비하 발언은 그가 ‘위선자’ 아닌지 의심케 한다.

자라스트로는 파미나 공주를 일방적으로 납치해 갔다. 밤의 여왕 입장에서는 미칠 일이 아닐 수 없다. 밤의 여왕은 아무래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의 희생자로 보인다. 1막 아리아 ‘오 떨지 마오, 나의 아들이여’에서 타미노 왕자에게 아픔을 호소하는 밤의 여왕의 노랫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오페라는 밤의 여왕이 파멸하고 자라스트로가 빛의 왕국을 예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밤의 여왕을 폄하하고 그녀의 억울함을 무시한 채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자라스트로에게 세뇌된 타미노 왕자마저 여성 혐오로 의심되는 대사를 하는데, 21세기에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대본의 한계다.

모차르트는 결코 여성 혐오자가 아니었다. ‘후궁에서 구출하기’,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등 여러 사례에서 보듯 그는 가장 숭고한 아리아를 여성이 부르게 했다. 자라스트로가 당시 프리메이슨 지도자인 이그나츠 보른(1742~1791)을 모델로 했고, 그 사람의 생각을 대본에 반영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분은 1791년 7월에 세상을 떠났고, '마술피리'가 초연된 것은 그 직후인 9월 30일이었다. 초연 당시 관객들은 이 오페라를 보며 자연스레 이 분이 살아 있을 때의 언행을 기억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잘못이라기보다, 그 시대와 상황의 한계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에는 밤의 여왕이 되살아나서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연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996년 쾰른 오페라는 현대적 감각으로 대본을 손질한 새로운 연출을 선보였다. 피날레에서 밤의 여왕도 파미나와 타미노의 결합을 축하하며 함께 즐거워하며, 타미노와 파미나는 ‘보호자입네’ 하는 자라스트로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둘만의 자유로운 앞날을 향해 달려간다.

이 오페라는 수많은 영화로 재탄생했는데,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 감독의 '마술피리'(2006)는 1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증오 가득한 이 세상에 마술피리가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날레는 위기에 빠진 밤의 여왕을 자라스트로가 구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연출했다. 모차르트가 다시 태어나서 이러한 개작을 본다면 화를 낼까, 고마워 할까. 내 생각으론 모차르트도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다.  

▲<마술피리>는 초연 당시 낡은 체제의 어두움과 새로운 세상의 빛을 대비시킨 것으로 해석(사진=이채훈 제공)

됐다. 자라스트로는 계몽의 지도자를, 밤의 여왕은 구체제를 대표하는 황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의 대립은 타협과 화해의 여지가 없었던 걸까? '마술피리'를 작곡할 때 잠깐 틈을 내서 쓴 프리메이슨 칸타타 K.619는 당시 모차르트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들려준다.

모차르트 프리메이슨 칸타타 K.619 (테너 크리스토프 프레가디앙)

1790년, 프랑크푸르트 장터에서 프랑스 혁명 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때가 왔다, 자유를 쟁취하자”, “압제에 신음해 온 민중이여, 노예의 멍에를 던지고 일어나라”는 구호가 넘쳐흘렀다. ‘천부인권’이 새겨진 손수건, ‘자유냐 죽음이냐’ 외치는 유인물이 난무했다. 모차르트는 이 장터에서 당대의 계몽사상가 치겐하겐을 만났다. 그는 철저한 평등주의자로, 노예 착취와 여성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치겐하겐의 사상에 공감한 모차르트는 1791년 7월 그의 시에 곡조를 붙였다. 모차르트는 이 노래에서 “쇳덩이를 녹여 쟁기를 만들자”고 힘주어 호소했다. 전쟁을 반대하고 사랑과 평화를 역설했다. 피아노 반주의 독창곡으로, 주로 테너가 부른다. “기만의 굴레을 끊어라, 편견의 베일을 찢어라. 사람들을 패거리 짓는 헛된 옷을 벗어라. 인간들의 피를 쏟게 한 쇳덩이를 녹여서 쟁기를 만들자! 형제들의 가슴에 치명적인 납덩이를 퍼부었던 그 검은 화약으로 압제의 바위를 깨뜨리자!”

'마술피리'가 초연된 1791년 9월 30일, 오스트리아는 공안정국의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파리 시민들에게 억류돼 있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직후였다. 프랑스 혁명 세력이 왕과 왕비를 처형할 경우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비밀경찰은 혁명에 동조하는 빈 시민들을 색출하기 위해 감시의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된 '마술피리'에 시민들은 열광했고, 당국은 휘발성 높은 이 작품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라는 가사는 지배세력에게 위험하게 받아들여졌다. 모차르트는 '마술피리'가 한창 공연 중이던 11월 18일 프리메이슨 집회에 참석한 뒤 갑자기 앓아누웠고 약 보름 뒤인 12월 5일, 35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는 갑자기 노래를 멈춰야 했지만, 인류 평화를 향한 그의 꿈은 오페라 '마술피리'로 남았다. 다시 자라스트로의 아리아 ‘이 성스런 전당에는 복수가 없다’를 듣는다.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목격한 우주비행사들은 한결같이 평화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1971년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에드가 미첼은 지구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와, 저게 나의 별이구나, 내 몸이 저 별과 이어져 있구나,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지구로 돌아오는 내내 창밖을 내다보며 대단한 황홀경을 경험했지요.” 하지만 그는 이 아름다운 별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떠올리고 마음이 아파졌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감’ 사이에서 요동쳤다. “전쟁은 정말 싫습니다. 국경 분쟁 때문에, 자기 신이 더 훌륭하다며 인간이 서로 죽인다는 사실이 너무 혐오스럽습니다. 그건 문명인의 행동이 아니지요. 원시적인 ‘약육강식’의 태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건데, 우리 인간은 그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주비행사 에드가 미첼은 세계 평화를 위해 아주 좋은 제안을 했다. “만일 정치 지도자들이 우주 공간에서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지구 위의 삶이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지구의 큰 그림을 한번 보고 나면 다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을 테니까요.” 모차르트 '마술피리'를 들으며, 세계의 시민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평화주의자로 거듭나는 마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