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한영숙 류 이철진의 승무와 이매방 류 채상묵의 승무
[이근수의 무용평론] 한영숙 류 이철진의 승무와 이매방 류 채상묵의 승무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1.13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전통춤 공연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춤이 ‘승무’다. 문화재 지정 전부터 한성준, 최승희를 비롯한 수많은 유•무명 무용가들과 승려들에 의해 추어졌고 국가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된 1969년 이후에는 보유자, 이수자, 전수자들이 생겨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대표적인 전통춤이 승무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탄생한 한성준(1874~1941)의 승무는 김천흥(1909~2007)에게 전수되지만 그 적통은 손녀인 한영숙(1920~1989)으로 이어진다. 전통 춤의 대모(代母)로 알려진 한영숙은 승무의 최초 예능보유자로 선정된 후 ‘국가무형문화재전수소’를 개설(1971)하고 제자들을 양성했다. 전수소 1기생으로 배출(1976)된 이애주와 정재만이 1996년과 2000년, 각각 예능보유자로 선정되고 2기생으로 배출(1980)된 박재희는 승무이수자를 거쳐 태평무 예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2019). 호남 출신인 이매방(1927~2015)은 한성준, 한영숙과는 다른 계보를 갖는다. 그는 승무(1987년)와 살풀이(1990년)의 2중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문하생인 채상묵은 승무 이수자를 거쳐 올해 승무예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이철진의 춤, 승무’(11,26, 풍류사랑방)와 ‘채상묵 60년의 춤•향’에서의 ‘승무’(12,7~8, 국립국악원 예악당), 그리고 ‘박재희의 춤, 명불허전’에서의 승무(9,19. 예악당)를 모두 보았다. 이철진은 승무예능보유자인 이애주의 제자다. 세 공연엔 공통점과 다른 점이 혼재한다. 이철진과 박재희가 한영숙 류 전통춤 중 승무, 살풀이, 태평무를 모두 보여준 반면, 채상묵은 이매방 류의 승무와 살풀이를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이철진이 완판 승무를 자신의 독무로 보여준 반면 채상묵과 박재희는 각각 20명과 16명이 출연하는 군무로서 그들 자신의 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철진의 승무는 삼현육각 해금보유자인 김무경이 연주하는 아쟁공연에 뒤이어 등장한다. 해금과 대금, 피리와 북, 장고들로 구성된 악단이 무대 옆에 앉아 생음악을 연주한다. 승무에 앞서 살풀이와 태평무를 솔로로 추면서 다소 긴장한 듯 했던 그의 진면목은 승무(27분)에서 온전히 들어난다. 흰색 저고리와 바지, 흰색 장삼에 붉은 색 가사를 두른 전통적인 승무복장이다. 한영숙 류 승무의 특징은 그 남성적인 호방함에 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한 건장한 비구승이 세상의 고뇌를 떨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며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수행 과정을 춤으로 드러낸 듯한 느낌을 준다. 충청도출신인 한성준의 활달함과 남성적 힘이 한영숙으로 이어지면서 빠른 춤사위를 더했다. 발짝을 높이 들고 묵직하게 움직이다가 해탈을 상징하는 북 앞에 다가서서는 몸을 뒤집으며 북채를 위로 올려친다. 북의 갓 보다는 중심을 주로 때리는 것도 한영숙 류 승무의 특징이다. 이와 대조적인 춤이 이매방 류 승무다. 버선발이 가려질 정도로 치마 단이 길며 여린 춤 선과 섬세한 춤사위가 아름다운 것이 비구승보다는 비구니스님이 추는 것이 잘 어울린다, 고적한 절간에서 득도를 위해 외길을 걷는 수행자로서보다는 세상의 한을 등지고 입산하여 속세를 잊고자하는 비구니스님의 고뇌와 애련이 함께 하는 느낌이다. “얇은 사 하이야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우고...”로 시작되는 조지훈의 시는 한영숙류 승무보다는 이매방 류에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전통 춤 보유자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예술계의 격렬한 반응을 이번 공연과 연결시켜볼 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예능보유자지정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채상묵과 박재희의 공연이 관객들을 만났다. 예능보유자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승무예능보유자 후보인 채상묵과 태평무 예능보유자 후보인 박재희는 당연히 독무로 승무와 태평무를 춤춤으로써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잠재워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외면하고 제자들이 출연하는 군무를 선택함으로써 세간의 우려를 비켜간 찜찜함이 남는다. 명륜동에 성균소극장을 개설한 이래 100일 승무, 50일 승무이야기 등을 매년 공연하면서 전통 춤 승무 보급에 진력하고 있는 이철진의 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