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왕용범이 오우삼이다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왕용범이 오우삼이다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1.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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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16:9. 영화와 뮤지컬을 동시에 보는 듯 흡족했습니다. LED가 만들어내는 높은 해상도의 영상은, 확 펼쳐진 스크린이었습니다. 영화 ‘영웅본색’을 추억케 해주었고, 뮤지컬 특유의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주었습니다. 

뮤지컬 공연에선, 대개 무대 위의 조명을 보게 되죠, 그게 이상한 게 아닙니다. ‘영웅본색’을 달랐습니다. 16:9의 비율로 느껴지는 무대에는, 오직 영상과 배우, 세트가 등장하고 사라졌습니다. 조명은 어디서부터 비추는 것인지 알길 없었지만, 때론 홍콩의 뒷골목처럼 음산하고, 홍콩의 유흥가처럼 현란했습니다. 

영화가 가장 드러내기 쉬운 게 하늘이라면, 뮤지컬에 가장 드러내기 어려운 게 하늘이지요. 영화에선 카메라를 위로 올리기만 하면 하늘이 보이지만, 극장공연에선 그렇지 않죠, 뮤지컬에서의 하늘은 무대 중앙의 저 뒤편에 존재합니다. ‘영웅본색’에선 무대의 중앙의 천정이 하늘과 같았습니다. 영화로 친다면, 카메라는 배우보다 좀 낮은 위치에서 위를 향해 찍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데, 홍콩의 오래된 아파트가 보이고, 그 위에 하늘이 보입니다. 내가 아는 한, 무대와 영상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한 건, 왕용범 연출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영화 ‘영웅본색’의 팬들은 다소 걱정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마크의 쌍권총씬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비롯해서, 영화 속의 명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죠. 뮤지컬의 LED를 강렬한 붉은 빛으로 채운 쌍권총 장면은, 영화와 또 다르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영웅본색’은 실루엣을 잘 살린 뮤지컬입니다. 우리는 영화(映畵)라고 하지만, 중국어권에서 양화를 전영(電影)이라고 하지요. 영화는 ‘빛과 그림자’의 상관에서 출발합니다. 전영(電影)에서 출발한 뮤지컬 ‘영웅본색’에선 그림자[影]를 잘 활용합니다. 영화에선 배우의 클로즈업으로 살릴 장면을, 뮤지컬에선 출연자들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내는 실루엣이 살아있죠. 만약 무대에서 움직이고 있는 ‘앙상블’들이, 객석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왕용범 연출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영웅본색’을 안 봤다면, 뮤지컬 영웅본색의 이해가 어렵다고 얘기합니다. 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은, 영화 영웅본색의 1편과 2편을 잘 조합해서 진행하는데,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왕용범이 이번 작품에서 만든 ‘플래시백’과 같은 효과라거나, 시점을 달리한 장면을 연속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인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특히 문(엘리베이터 등)이 열리고 닫히는 장면을 통해서, 연출은 스피디한 진행과 상황의 변화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뮤지컬 영웅본색이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얘기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두 편의 영화를 잘 압축하고, 새로운 장면을 넣어서, 사람간의 이해(利害), 사건의 본말(本末)을 흥미로운 퍼즐처럼 잘 연결합니다. 

무엇보다도, 영화 ‘영웅본색’과는 다르게, 자걸(한지상, 박영수, 이장우)과 페기(제이민,송주희,정유지)의 러브라인입니다. 처음엔 자걸이 페기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지만,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영화 ‘영웅본색’처럼, 자걸은 애인이 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날에 세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공중전화 씬은 그래도 존재하지만, 뮤지컬에선 좀 다르지요. 

왕용범은 ‘사랑’을 중시하는 ‘사랑꾼’인 듯 합니다. 그가 무대에서 그려내는 사랑은 ‘연애의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지킴! 뮤지컬 영웅본색에선, 영화에서 그려낸 것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지킨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왕용범이 생각하는 남성성(男性性)이란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뮤지컬에선 ‘사랑하는 상대’, 곧 아들을 위하여, 동생을 위하여, 친구를 위하여, 애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잘 그려집니다. 

왕용범이 오우삼이다! 왕용범이 매우 뛰어난 연출가라는 생각은 늘 들었지만, 그를 이렇게 연결할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웅본색’을 보면서, 그가 만들어내는 ‘르와르 뮤지컬’을 계속 봤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믿음과 배신을 바탕으로 해서 폭력의 미학을 잘 살린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에는, 배우를 참 잘 죽입니다. 특히 ‘아성’(김대종, 박인배)이 죽는 장면이 참 좋습니다. 아주 통쾌합니다. 제겐 영화이상입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커다란 불상을 보면서, 저는 왠지 ‘무간도’가 떠올랐습니다. 왕용범 연출이 오우삼의 ‘영웅본색’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간도’를 뮤지컬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오히려 거슬러 올라가서 왕유의 ‘외팔이’ 시리즈도 봤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많이 만들어져서, 대한민국 뮤지컬에서도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관객의 성비(性比)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제가 지금 젠더감수성에 위배되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뮤지컬애호가 중 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없으신지요? 남성관객에게 해당됩니다. 뮤지컬공연의 인터미션 시간에 남자화장실이 여자화장실로 둔갑(!)해서 당황하진 않으셨는지요? 물론 대한민국 극장에서 여성화장실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것을 적극 환영합니다. 하지만, 남성관객이 적다고 해서, 정말 인터미션 시간에 남성관객을 매우 당혹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왕용범 연출의 ‘영웅본색’과 같은 ‘르와르뮤지컬’이 대한민국에 정착을 하게 되면, 뮤지컬의 남성관객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뮤지컬 ‘영웅본색’의 미덕은 참 많지만, 음악이 참 좋다는 거죠. 중국가요, 곧 중음(中音) 팬에게 적극 권합니다. 영웅본색과 함께 기억되는 노래는 물론이요, 생전 장국영이 불렀던 노래를 뮤지컬 넘버로 만납니다. 그 시대 장국영 노래의 편곡보다, 이성준 음악감독의 편곡이 훨씬 더 감미롭고, 애절합니다. 내겐 그 시절이 홍콩의 장국영이 번안해서 부른 Counting On You (원곡 Rod stewart의 Sailing), 장난기 많고 귀엽기만 했던 장국영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Stand up을 즐거운 노래와 춤으로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 보너스같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영웅본색’, 강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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