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숙 칼럼] ‘오단해의 탐하다’ 30대 남성 판소리 소리꾼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남정숙 칼럼] ‘오단해의 탐하다’ 30대 남성 판소리 소리꾼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0.02.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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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경자년 새해를 여는 1월 어느 날, 하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경계경보가 발동한 그 시기에  마치 지구 마지막 날처럼 스모그가 낮게 깔린 을씨년스러운 그 밤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서울돈화문국악당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30대 젊은 소리꾼 오단해 판소리 이수자(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탐하다’라는 섹시한 제목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오단해의 탐하다’이다. 호들갑 떠는 기사들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사람들이 그리 모인 건 ‘탐하다’라는 욕망미(美) 넘치는 제목에서 풍기는 음험한 기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공연을 다 보고나니 ‘오단해의 탐하다’는 식탐, 색탐, 정탐 등 집착하는 듯한 육감적인 의미의 ‘탐’이 아니라 ‘탐색하다’의 ‘탐’이나 ‘탐구하다’에 가까운 게 분명했다.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장르였다. 판소리 공연은 아니고 음악극과 퓨전국악을 융합한 듯한 음악극이었다. 주제는 오단해씨가 제작, 연출 및 주인공으로 출연한 모노드라마 음악극이라고 해야 할까?

노래도 판소리 발성이 아닌 판소리와 성악과 가요가 적절히 섞여 있어서 노래 한 곡을 부르면 판소리와 성악과 가요의 발성이 한 번에 다 들어 있어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한 곡으로 판소리와 성악과 가요의 창법을 다 낼 수 있는지 신기했다.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 모습

공연의 구조 역시 매우 독창적이다. 첫 시작부터 주인공 오단해가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다 돌아간 무대에 남아서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스탭들과 진솔한 속내를 이야기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끝이 시작인 것이다.

이렇듯 ‘공연이 끝난 후’라는 시간적 시점을 ‘오단해의 탐하다’라는 공연의 시작으로 설정한 이유는 두 가지 목적 때문일 것이다.

우선 오단해씨는 그룹 ‘재비’ 창작음악팀으로 10여 년간 활동해 오다가 홀로서기를 한 후 선보이는 첫 번째 작품이다. 독립을 하고 ‘오단해의 탐하다’라는 작품을 처음 제작하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관객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단해의 새로운 시작을 관객들에게 선포하는 자리였다.

두 번째 목적은 배우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공연을 한 후 공연이 끝나면 가면을 벗고 자연인으로 돌아온다. 오단해는 가면을 벗고 – 그러나 그것 역시 공연이므로 가면을 쓰고 – 자연인 오단해로 돌아가서 자연인 오단해가 고민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진솔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30대 오단해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 모습

오단해의 활짝 웃는 모습에 속은 것 같다

익히 젊은 국악인 오단해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만남은 처음이었다. 이를 내보이면서 활짝 웃고 있는 포스터 모습에 속았다. 시작할 때만 해도 오단해 소리꾼이 활짝 웃으면서 퓨전국악에 재담을 선 보이겠지라고 안이하게 상상했던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은 깊이가 있고, 실험적이고, 진지하다. 관객들의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요리했고, 극의 구조는 치밀했다. 이런 치밀한 사람이라니 극의 구성은 7개의 에피소드와 4단계 중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의 맨 윗 단계는 주인공 오단해가 게임방에서 A call to Arm Wow라는 게임을 하면서 친구들과 걱정없이 놀던 과거회상부분이다. 과거회상부분은 게임이 진행되는 것처럼 기-승-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게임방에서 라면을 먹거나 판소리 선생님을 게임의 절대권력자로 묘사한다. 어린시절 오단해는 용감한 게임캐릭터처럼 “운명이여 어서 와라”를 외치듯 두려움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게임의 클라이막스처럼.

그 아래 단계는 자연인이자 소리꾼인 오단해가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하면서 놀던 친구들과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대화구성단계로 어릴 때 온라인 게임을 하고 놀던 친구들은 이제는 바빠서 만나서 놀기가 어려워졌고, 다들 각자의 길을 찾아서 가고 있다. 오단해는 어릴 때 허물없이 함께 놀던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오단해의 탐하다의 극의 구성(표=남정숙 제공)

스토리구성과 심층구성은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단계는 함께 판소리를 했던 동료가 생계 때문에 판소리를 그만두고 막노동을 나가는 내용을 이야기 하는 씬과 낡았지만 명품 꽹과리를 찾아다니는 씬이 등장하는데 그 심층에는 예술가들의 생계에 대한 어려움을 그리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선생님의 부재와 선생님과의 추억 씬이다. 이 씬을 통해서 오단해는 심층적으로 선생님의 부재로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기다리는 가족(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씬이다. 심층구성은 이런 가족과 자신의 꿈을 위해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단해는 노동자를 대신해서 “마음속에서는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라는 곡을 노래하면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예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예술인들을 대변해 준다. 이후 오단해는 남들이 사지 않는 꽹과리를 사러 풍물시장으로 간다. 꽹과리는 3만 원 정도의 값싼 가격에 판매되지만 오단해는 낡은 꽹과리 중에서도 소리가 명품인 꽹과리를 찾아내서 기뻐한다.

그리나 곧 “남들이 낡았다고 하는 것, 그것을 찾아다니는 것이 맞는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이는 전통예술인들이 “내가 지금 전통예술을 하는 것이 맞을까?” 혹은 예술가들이 “내가 배고픈 예술을 하면서 사는 것이 맞을까?”와 같은 자문일 것이다. 주인공 오단해는 자신을 강아지로 불러주시던 돌아가신 선생님을 회상하면서 “선생님 앞에선 언제나 강아지”를 노래한다.

늘 길을 알려 주시던 선생님은 돌아 가셨고 이제 누구도 길을 알려 주질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30대 남성 판소리 소리꾼, 가장, 독립한 회사 대표로서 자신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오단해는 “나는 길치, 길을 잃은 길치”를 노래한다.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어쩌지? 그러나 이미 너무 멀리 와서 돌아 갈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 이 길을 계속 가야할 것인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인다.

뒷풀이 후 오단해는 선생님을 엎고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면서 엎어졌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대답을 찾아 간다. “선생님, 저 아직도 많이 엎어집니다. 그래도 알려주신 소리 꾸역꾸역하고 있어요.”라고 독백한다.

주인공 오단해는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기다리는 가족과 대리기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오면서 자신도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가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답이 필요 없었지만 오단해는 “누구나 각자 저마다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는 그 과정” 자체가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스스로에게 답을 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우리를 위하여”라는 노래로 공연은 마무리 된다.

▲상단 작곡가 최덕렬, 연주자 최힘찬

4단계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자전적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고 치밀하다. 전체적으로 치밀하게 설계된 공연이다. 기타와 플롯의 현대적인 멜로디에 오단해의 시원한 발성의 판소리는 이국적이면서 익숙하므로 공연 내내 귀를 즐겁게 한다. 작곡가인 최덕렬과 연주자 최힘찬의 공이 크다.

작은 무대지만 좁지 않게 느껴지도록 연출된 무대와 동선, 조명도 매우 정확하게 계산된 듯 떨어지고 그만큼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았을 텐데 하필 공연시기가 아쉬웠다.

갈 길을 헤매는 대한민국 30대 남성 판소리 소리꾼들

오단해 소리꾼의 공연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재주 많기로 소문난 오단해가 독립한 후 첫 작품을 얼마나 독하게 만들었는지 보고 싶기도 했거니와 오단해 소리꾼이 현재 우리나라 30대 남성 소리꾼들의 바로미터이자 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판소리계를 이끌어 갈 30대 남성 소리꾼들은 얼마만큼 멀리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첫 공연을 본 감상으로는 매우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며 세련되고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더해서 대한민국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살기로 결심한 젊은 예술가가 첫 포문을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작품을 열었으니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진다.

오단해는 첫 공연에서 “앞으로도 예술로 밥 먹고 살기 어려워도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공연은 보여 주겠다.”며 관객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비위 맞추지 않겠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예술가적 태도는 얼마나 오랜만에 만나는 것인지 반갑기가 그지없다.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 모습

내가 이처럼 과하다고 생각될 만큼 오단해의 공연에 호평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재 30대 판소리 소리꾼들의 지평이 곧 우리나라 판소리계를 좌우할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30대 판소리 소리꾼은 강태관, 백현호, 오단해, 이광복, 최호성, 박성우, 최용석, 강길원, 김정훈, 전태원, 서어진, 윤석기, 이승민, 김봉영, 이상화, 이봉근, 이제학 등이 있다. 보시다시피 몇 명 되지 않는다. 몇 명 되지 않아도 귀한 존재들이다.

그 이유는 남성 소리꾼보다 여성 소리꾼이 월등히 많은 판소리계에 더군다나 50대 이상 원로들이 주도하고 있는 판소리계에서 40대 판소리 소리꾼들의 공백을 단숨에 메꿀 실력과 미모와 재치를 겸비하고 있는 아이돌급의 판소리 소리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이 곧 판소리의 부활과 글로벌화를 동시에 책임져 줄 기대주들이다. 거기다가 대부분 엘리트들이다.

예를 들어 강태관, 백현호, 오단해, 이광복은 전주대사습놀이 장원을 해서 군 면제까지 받은 엘리트들이고, 이광복, 최호성는 동아국악콩쿠르 전체대상 출신이다. 이들 외에 다른 30대 소리꾼들도 유명한 국악계 상을 안받아 본 이가 없을 정도로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해 왔다.

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명창들에게 판소리를 사사한 영재들로서 짱짱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예종, 중앙대, 서울대 등 정규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들이다.

발레 같으면 한예종 영재아카데미 출신들로 영재아카데미를 나와서 한예종에 입학을 하거나 바로 세계 각국의 로열오페라단에 들어가도 될 정도의 기본실력과 글로벌 체격을 갖추고 있어서 판소리계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소수정예 이수자들이다.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 모습

그런데 이들은 현재 무엇을 할까? 이들은 판소리계 어른들의 기대만큼이나 성장해 있을까?

영재 중의 영재 강태관 소리꾼은 현재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기 위해서 TV 방송 트로트경연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서어진, 윤석기, 이제학은 일찌감치 연극무대로 진출했다. 이승민도 서른이 되자마자 판소리뮤지컬에 출연했다. 모르긴 몰라도 생계때문일 것이다. 김봉영, 이상화은 방송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나마 이광복, 최호성, 박성우, 최용석은 국립창극단에서 정규직이 되어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있고, 강길원은 국립남도국악원, 김정훈은 전라북도립국악원에서 근무 중이다.

결국 오단해, 백현호 소리꾼 정도가 판소리 공연계 야전사령관으로서 거친 판소리 공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30대 남성 판소리 소리꾼을 대표해서 오단해, 백현호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느냐가 우리나라 판소리계에 판도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이고, 미래 판소리계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는 부표라는 것이다.

재주꾼 백현호는 한예종을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아카펠라 공연팀 토리스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판소리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경제적인 성과도 누리고 있다.

이에 비해 10여 년 동안 ‘재비’ 공연팀에서 활동하던 오단해는 이번에 자력으로 독립해서 자신의 공연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그런 오단해가 ‘오단해의 탐하다’라는 첫 공연에서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이대로 가도 좋은가?”라는 질문과 함께 스스로 “누구나 저마다의 속도로 나만의 길을 찾아 가듯이 계속 이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오단해의 결심이 눈물겹다. 그리고 판소리계 선배들이 원망스럽다. 우리나라 판소리계를 이끌어 갈 영재였던 판소리꾼들을 선배들은 왜 이끌어 주지 못하는가? 몇 사람이나 된다고 발레영재나 음악영재는 해외콩쿨에 나가서 금전적 보상과 명예라도 얻지만 국악영재들은 그 만큼의 비용과 비슷한 노력을 들이면서도 30대가 돼서는 갈 길을 망설이게 하는 문화부의 문화정책에 진절머리가 난다.

▲‘오단해의 탐하다’ 공연 모습

문화정책이 있기는 있는 건가? 전통문화예술의 미래를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트로트을 해도 괜찮고, 뮤지컬을 해도, 연극을 해도 괜찮다. 그렇지만 판소리꾼은 판소리를 중심에 놓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배가 고파서 혹은 미래가 안보여서 전업을 생각한다면 판소리의 미래는 없다. 남상일, 최용석, 송세운, 김도현으로 대표되는 40대 판소리 소리꾼들보다 30대 판소리 소리꾼들이 많다는 것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찬란히 빛나던 판소리 영재들이 30대 가장이 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고민하는지, 생계는 걱정 없이 사는지? 하고 싶은 공연은 하고 있는지 살펴봐 줘야 선배고 선생님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다.

50대 이상 판소리 특수효과를 누렸던 명창들이 나서야 한다. 명창들이 새로운 영재들을 키워내는 만큼 30대 제자들의 생계를 위해서도 문체부에 요구해야 한다.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고 가장으로 고민 없이 판소리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 정규과정을 늘리고 미래고객을 육성해야 한다. 양질의 공연과 실험적인 공연을 마음껏 제작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국악의 글로벌화가 가능한 30대 인재들이 실컷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사업비와 지원금을 타다 주어야 한다.

북극빙산이 다 녹는 것이 빠를지, 판소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빠를지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는 자멸하는 선배들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