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박정자와 양희경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박정자와 양희경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2.1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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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여배우를 연이어 만났습니다. 여자만세2 (2019. 12. 24 ~2020. 2. 2) 그리고 노래처럼 말해줘 (2020. 2. 6 ~ 16). 두 여배우를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에는 연일 많은 관객이 모여들었죠.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을 삼가는 사람이 많다지만, 두 여배우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 큰 것 같습니다. 두 여배우가 중심이 된 극을 보면서, 관객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다른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때완 분위기가 사뭇 달랐죠.

박정자(1942년생)와 양희경 (1954년생). 두 여배우는 모두 말띠. 띠동갑입니다. 여기서 잠시 ‘말띠신부’(1966년, 김기덕감독)란 한국영화를 얘기 좀 할까요.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로 모두 12개의 띠가 있는데, 왜 유독 ‘말띠신부’란 영화가 있을까요? 이 영화는 1966년에 개봉했고, 병오년은 백말띠의 햅니다.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세다’ 이런 얘길 들어보셨나요? 요즘 그런 얘길 했다가는 봉변도 당하고, 다양한 사람의 인생을 출생년도로 획일화한다고 해서 매우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할 겁니다. 그런데 그 땐 그랬죠. 더욱 의아한 건, 이런 얘기를 한 분이 대부분 여성이었다는 겁니다. 제 어머니가 말띠(1930년생)입니다. 말띠해에 딸을 낳은 외할머니도 바로 가끔씩 이런 얘기를 했지요.

영화 ‘말띠신부’는 말띠해에 태어난 세 명의 여성을 통해서, 그녀들이 얼마나 강인하고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현명한지를 알려주는 영화였습니다. 이것도 좀 조심스럽지만, 사실이니까 말할게요. 제가 아는 한, 제 인생의 말띠 여성 3인, 곧 모친, 박정자배우, 양희경배우가 모두 딱 그렇습니다.

두 배우의 이미지얘기를 좀 해볼까요? 다소 획일적인 시각이라는 걸 전제합니다. “세상의 여성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애정본능’의 여성이고, 또 하나는 ‘모성본능’의 여성이다.” 나의 모친이 종종했던 말입니다. 본인은 애초에 ‘애정본능’은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나요. 세 자식을 홀로 키운 내 어머니는 ‘모성본능’이 충만한 여성임은 틀림없습니다.

박정자와 양희경, 두 배우는 많은 역할을 맡았지만, 앞의 두 가지 틀 속에서 얘기해도 좋을까요? 양희경 배우에게선 ‘엄마의 온기’를, 박정자 배우에게선 ‘여인의 향기’를 느낍니다. 참 재밌죠? 박정자 배우가 양희경 배우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요즘말로 ‘여자여자하다’라는 말은 박정자 배우에겐 참 어울리는 말입니다.

‘노래처럼 말해줘’의 부제는 ‘박정자의 배우론’.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다시 불러내서 이야기하고 노래를 하는 구성입니다. 박정자가 많은 작품에 출연을 했고, 거기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죠.

박정자 배우의 대표작은 많지만, ‘해롤드와 모드’를 빼놓을 수 없지요. ‘노래처럼 말해줘’에서도 이 작품을 얘기할 때, 배우는 더 신나게 얘기하고 노래하더군요. 아시다시피 19세 소년과 80세 할어니의 얘깁니다. 6명이라고 했던가요? 박정자 배우는 모드 역할을 독식(?)하면서, 상대역인 젊은 남자인 해롤드 역할은 매번 갈아치웠습니다.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박정자 선생님! ‘해롤드와 모드’가 꼭 공연되길 바랍니다. 이제 또 어떤 ‘남자’를 선택할지 궁금해지고, 선생님(모드)께서 그 젊은 배우(해롤드)를 향해서 가슴 설레는 ‘여자’가 되어서, 해롤드를 ‘애인’처럼 대하는 모습을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여배우 양희경의 인생연극은 ‘자기 앞의 생’!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그랬습니다. “모모야, 밥먹자”, 연극의 첫 대사 기억하시죠? 로자아줌마가 모모소년에게 하는 말입니다. 참 재밌는 사실은, 양희경 배우하면 이렇게 ‘밥’ 또는 ‘밥상’이 연결된다는 겁니다.

연극 ‘여자만세 2’에서도 그랬습니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왔던 이 여자(양희경).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는 어쩔 수없이 떨어져 지내야 했던 딸 최서희(윤유선)를 찾습니다. 하숙생이 되어서 3개월간의 동거가 시작되지요.

딸의 생일에, 이 여자는 최서희를 위해 생일상을 차려놓고, 이른 아침 홀연히 떠납니다. 밥상을 들고 나오는 양희경, 그 밥상의 미역을 먹으면서 눈물 짖는 윤유선.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박정자의 ‘노래처럼 말해줘’에는, 무대 한쪽에 화장대가 놓여있습니다. 배우에게 분장은 필수라고 하지만, 박정자 배우와 연관해선 말한다면, 거기는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서 ‘여인의 향기’를 만드는 공간이겠지요?

세월이 십수년쯤 지나서, 양희경 배우가 비슷한 맥락의 작품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화장대가 놓였던 그 자리는, 싱크대가 놓여 있을지 모르겠네요. 양희경 배우는 주먹밥이라도 만들어서 관객에게 넌지시 건내면서, ‘양희경의 배우론’을 펼칠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양희경배우를 통해서 또한 ‘엄마의 온기’를 느끼게 되겠지요.

연극 ‘여자만세 2’에서도 이 여자(양희경)가 부르는 노래가 있지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담담해서 절절합니다.

‘여자만세 2’와 ‘노래처럼 말해줘’에서 두 배우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나의 최애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생각났습니다. 작곡가 조영수 마스터가 뭐라 코멘트할지 궁금해졌습니다. 박정자 배우에게는 아마 이러지 않을까요? “노래의 가사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 노래를 잘 하시지만, 음정과 박자는 너무 마음대로 부르시군요.” 양희경 배우에게는 아마 이러지 않을까요? “음정이 정확합니다. 목소리가 담백해서 참 좋습니다. 그런데 너무 1970년대의 포크처럼 부르시고, 감정을 좀 더 집어넣었으면 좋겠어요.” 실제 조영수 마스터가 이런 말을 하진 않겠죠. 그저 지금 나 스스로의 재밌자고 하는 상상입니다. 그러니 조영수 마스터에게 혹여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배우는 정작 뭐랄까요? “연극에서의 노래는 그냥 노래와는 다릅니다.” “노래도 한편의 드라마가 되어야 해요” 박 배우는 그렇게 힘줘서 말할지 모릅니다. 양배우는 어떨까요? 어쩌면 아무런 대구조차 안 할 것 같네요. 그러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겠죠. “모르시는 말씀. 배우가 담담해야, 관객이 절절해지는 거야. 무대에서 자기감정에 빠져서 울고 짜는 게 얼마나 초보인 줄 알아?” 이 또한 내 상상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여배우가 있기에, 그들이 우리에게 좋은 작품을 선물해줬기에, 이렇게 나와 같은 사람이 자기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요? 연기는 물론이지만, 노래도 수준급인 두 배우가 있다는 게, 참 좋다는 게 이글의 취지입니다. 언젠가 두 여배우가 함께 출연한 ‘노래가 있는 연극’이 보고 싶네요. 불같이 타오르는 배우, 물처럼 스며드는 배우. 두 배우의 만남은 생각만 해도 가습 설렙니다. 두 배우는 만나서 대립과 화해, 연민과 갈등을 전해주면서, 결국은 두 배우의 삶과 연관해서 ‘인생의 메시지’가 ‘노래처럼’ 파고들 겁니다.

박정자의 ‘노래처럼 말해줘’는 박정자 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든을 앞둔 그녀의 인생과 연극이 노래와 함께,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여배우를 잘 알고, 뮤지컬을 잘 아는 이유리 연출이기에 품격있는 작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분이 동의할 겁니다.

여배우의, 여배우에 의한, 여배우를 위한 ‘여배우론’! 이번 박정자 배우를 시작으로 쭈욱 계속되길 바랍니다. 양희경 배우를 비롯해서, 다른 여배우의 이런 무대도 꼭 보고 싶습니다. 배우가 참 좋은 직업이지만, 참 외로운 직업이겠죠? 많은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지만, 결국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긴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 배우에게 이런 무대는, ‘자신이 자신에게 선물하는 값진 선물’이 될 겁니다.

‘진적굿’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평생 ‘남을 위해서’ 굿판을 벌린 무당이, 단 한번 ‘자신을 위해’ 벌리는 굿을 말합니다. 무당이 ‘진적굿’을 한다고 알리면, 다른 무당들과 무당의 단골손님들이 모두 모여서 축제의 장을 펼치지요.

이런 훌륭한 풍습이 연극에도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자 배우론’처럼 ‘양희경 배우론’ 공연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에쁜 노래’ 2곡은 꼭 불러주세요. 김민기 작의 ‘아빠 얼굴 예쁘네요’와 ‘식구를 찾아서’ (오미영 연출)의 ‘넌 아직 예빠’는 꼭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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