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공정한 심사와 공평한 심사제도- 2020 무용계의 화두
[이근수의 무용평론] 공정한 심사와 공평한 심사제도- 2020 무용계의 화두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2.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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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경영학박사

살아가면서 세금을 피해갈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우리나라 근로자 중 절반가량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도 살아간다. 정작 피할 수 없는 것은 심사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취업과 승진은 물론이고 의료보험부터 아파트당첨, 지원금심사와 공연장 대관심사 등등...유비키토스(Ubiquitous)라 할까, 심사는 어디나 존재하고 이를 피해갈 길은 없다. 연말연시 관례로 굳어진 관련단체의 시상식에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겠지만 각종 경연대회와 지원금심사 등에서는 공정성과 공평성이 반드시 확보되어야할 것이다.무용작품경연과 관련된 두 개의 중요한 심사가 지난 연말에 있었다. 서울무용제 경연과 대한민국무용대상의 최종결선이었다. 두 대회 모두 심사위원을 공개하고 각 위원들의 채점결과를  공표함으로써 투명성에 관한 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먼저 서울무용제를 보기로 하자. 출연작품 8개는 한국무용 3, 현대무용 3, 발레 2개였다. 7명 심사위원의 구성은 전•현직 무용과 교수가 6명이고 평론가 1명이다. 성별로는 여성 6명, 남성 1명이고 분야별로는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가 각각 2명씩, 무 전공이 1명이다. 위원 구성 면에서는 안배의 노력이 엿보였으나 심사결과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분야별 편파성이다. 예컨대 현대무용 3작품에 최고점을 포함한 1~3등의 점수를 주고 한국무용 3작품에는 동점을 주어 공동 4위를, 발레 2작품에도 동점을 주어 공동 7위로 만든 심사위원이 있었다. 한 심사위원은 1~8 위까지의 점수 차가 5점에 불과했다. 점수가 들쭉날쭉해서 작품 간의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심사위원도 눈에 뜨였다. 연말에 펼쳐진 대한민국무용대상 심사결과도 분석해보았다. 12개 작품이 경쟁을 펼친 예선을 1,2위로 통과해서 최종결선에 오른 두 작품 간의 맞대결이다. 주최 측은 전문심사위원 7명과 시민심사위원 10명의 심사결과를 합산하여 대상을 결정한다고 했다. 편의상 두 작품을 A, B라고 칭한다. 예선에선 전문심사위원과 시민심사위원 양쪽 모두 A가 1위, B가 2위였다. 본선에선 시민심사위원은 여전히 A가 1위, B가 2위였던 반면에 전문심사위원은 A가 2위, B가 1위로 바뀌었다. 합산결과는 미세한 차이로 B가 1위, A가 2위로 예선순위가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전문심사위원과 시민심사위원의 점수합계가 80%:20%로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 비중을 5:5로 하거나 예선심사결과를 일부라도 반영했다면 수상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공정한 심사는 제도의 합리성과 심사위원 개인의 자질 모두에 관련된다. 서울무용제의 문제는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자질과 관련되고 무용대상의 경우는 심사제도의 문제라고 구분해볼 수 있다. 작년 한 해 우리사회전체를 뒤흔든 중심이슈는 공정성이었다. 해가 갈수록 공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요구는 더욱 심각하게 부각될 것이다.

무용계를 포함한 예술계가 예외일 수는 없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심사위원명단과 위원별 평가내용 공개를 계속해가면서 심사기준 역시 명확히 공표해야한다. 심사의 정의 자체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순위나 등락을 결정하는 것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심사기준을 공연의 중요요소별로 정량화하길 바란다. 둘째로 적격성을 갖춘 30~50명의 심사위원단 풀을 1~2년 임기로 구성하고 각 심사마다 무작위로 심사위원을 추출하여 심사를 위촉하길 바란다. 무용이 종합예술인 만치 심사위원단은 무용가 위주가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의상, 평론 등 각 분야 전문가를 골고루 포함시킬 것을 권고한다. 이해충돌의 위험이 있는 경우는 배제하고 분야별 안배가 필요한 경우에는 계층화를 적용하면 된다.

셋째로 중요 공연마다 20명 정도의 관객심사위원을 무작위로 선정하고 이들의 참여비중을 높여 전문심사위원단과의 비율을 5:5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 공연은 관객을 위한 것이고 관객은 글을 쓰지 않는 비평가란 말도 있다. 전문성을 갖춘 관객들은 의외로 많을 뿐 아니라 이들이 로비에 노출될 위험성은 전문심사위원보다 낮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중요한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은 명예가 아닌 멍에고 특권이 아닌 의무다.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없다면 자리를 사양하는 것이 정도다. 예술단체들이 2020년을 공정한 심사와 공평한 제도가 정착되는 해로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