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나’를 찾아 떠난 유학길에서 ‘우리’를 찾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나’를 찾아 떠난 유학길에서 ‘우리’를 찾다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조두림 기자
  • 승인 2020.02.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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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극(韓劇)’으로 우리 문화 독자성 갖는 공연예술 패러다임 구축
공연예술계, 정확첨신(正確添新) 정신으로 나가야 승산 있어

“어떻게 독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경복궁에서 무당굿을 올리고 있어?” 

독일 유학을 떠나 릴케 시를 전공한 독문학자가 갑자기 샤머니즘과 굿, 무당 연구에 몰두한다면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혹자는 순수한 궁금함을 또 다른 혹자는 우려를 표할 법도 하다. 이런 일을 벌인 주인공은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이다. 양 이사장은 일찍이 1969년에 당대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피터 한트케(Peter Handke)의 <관객모독>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학이 흔치 않던 1960년대에 여성으로서, 더구나 혼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나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그가 대면한 물음은 ‘우리 것’에 대한 성찰이었고, 한국의 독자적인 공연예술 패러다임 구축의 필요성이었다.

양 이사장은 지난 1월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살리는 공연예술 패러다임을 찾기 위한 학문적 연구와 공연기법 체계화, 출판 등의 활동으로 국내 공연예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을 수상했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한 양혜숙 이사장(가운데)과 수상자선정위원장 일랑 이종상 화백(좌)과 이은영 발행인(우)(사진=정영신 기자)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 철학부에서 독문학, 미술사,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귀국 후 이화여대 독어독문과에서 30년간 독문학자로 가르치고 연구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카프카학회 회장, 브레히트학회 부회장, 세계공연예술협회(Internaional Theater Institut =ITI) 한국6대회장, 아.태 지역협회 ITI 창립회장, BESETO 2대위원장, NIB(Nepal,India, Bangladesh) 창립위원장, UNESCO한국본부 이사/감사,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부회장, 여성연극인회 회장, 세계비교문학회 고문 등을 지냈다.

한극(韓劇)이란 용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양 이사장이 1991년 한국공연예술학회, 1996년 (사)한국공연예술원 창립 후 초대 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20년 넘게 사재를 들여 매달 우리 문화의 근원을 탐구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공연예술문화계에 헌신한 과정에서 맺은 열매다.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을 만났다

특히 양 이사장이 설립한 한국공연예술원은 우리나라의 독창적 공연예술인 ‘한극(韓劇)’을 계승, 발전시킴과 동시에 국제적 교류를 통해 세계 속에 한국 예술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공연예술원은 산하에 극단 KOPAC씨어터, 샤마니카 연구회, 한극회, 레파토리 위원회가 있으며 공연예술의 진흥을 위한 출판, 홍보, 기록, 심포지엄 등을 제작 및 운영 중이다. 또한 매월 진행하는 세미나의 결과물로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를 발간해 공연예술 창작 융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관객모독> 이외에도 다수의 한트케 작품을 번역했으며, 서구 연극계를 추종하던 한국 연극 풍토에 ‘언어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소개해 서구문화 의식세계 변화를 한국에 전하기도 했다.

한편 양 이사장은 <표현주의 희곡에 나타난 현대성>, <연극의 이해>, <15인의 거장들> 등의 저서도 출간했으며, 한극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해왔다.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을 선도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 예술평론 실천상, 문화예술대상, 문화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고, 후대는 선조들이 쌓아놓은 유산에 이어 다음 업적들을 쌓아간다. 공연예술 자체가 생소했던 먼 옛날의 시간을 지나 그다음 세대는 서양의 방식을 모방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후 후배 세대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갖춘 독자적인 공연예술 패러다임 구축이었다. 양혜숙 이사장은 이 시대적 요구에 반응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분명 다사다난했을 것이다. 그 말은 즉, 들을 얘기도 많다는 것. 아직은 시상식의 여운이 감돌던 2월 초. 현재진행형으로 진화 중인 한극과 우리 공연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양혜숙 이사장을 서울시청 옆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만났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 지난 1월 시상식에서 많은 공연예술계 후배들이 찾아와 축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감사하다. 나는 기대도 안 했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상이라는 건 일하는 도중에 조명을 받는다는 얘기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심사위원회에서 그걸 봐줬다는 자체도 고마웠다. 
사실 공연예술의 범위는 엄청 넓다. 그런데 나는 그 드넓은 숲에서 ‘한극(韓劇)’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세대에서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바탕은 깔아놔야겠다고 생각하고 25년 시간을 달려왔다. 지금껏 반응을 알 수 없어 공연예술계 후배들이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시상식 날 연락도 안 한 후배들이 축하해주러 온 것을 보면서 직접 참여를 하지는 않아도 멀리서 다 지켜보고 있구나 싶었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는 양혜숙 이사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성숙해가고 있다고 느꼈다. 1991년에 한국공연예술학회를 창립할 때만 해도 민속학 하는 사람들은 민속학만 하고, 연극학 한 사람들은 서양 것만 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가 않더라. 한국공연예술원을 만들어 배우부터 만드는 게 첩경이겠다 싶어 1996년 (사)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했었다. 

우선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독일 유학 스토리일 것 같다. 1960년대에 여성 혼자서 타국으로 떠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유학을 떠난 이유가 있다면

시상식에서도 밝혔듯이 ‘나’를 찾으러 떠났다.(웃음) 대학 졸업 후 장학금을 받고 독일로 유학 갔다. 학사는 릴케의 시로, 석사는 릴케의 시대관으로 학위를 받았다. 박사도 릴케의 시대관으로 진행하던 중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내가 관심 있는 표현주의 연극으로 주제를 바꿨다. 표현주의 연극이 나온 시대가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굉장히 변화와 모험의 시대다. 표현주의 속에 가지고 있는 서사극 이론이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는 건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제목도 직접 제안해 낙점됐다.

그런데 나를 찾아 떠난 유학길에서 ‘우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한국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올 때, 내 나라임에도 잘 설명하고 대답할 길이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서양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을 수상한 양혜숙 이사장(가운데)과 수상자선정위원장 일랑 이종상 화백(좌)(사진=정영신 기자)

그 생각은 자연히 ‘우리 것’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1996년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한 후 우리 것을 어떻게 찾고 표현할까, 세계 속에 어떻게 담을까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물이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갖는 공연예술 패러다임인 ‘한극(韓劇)’이다. 간혹 사람들이 릴케를 연구하던 독문학자가 무당굿을 경복궁에 올리고, 표현주의 연극을 하냐고 의아해하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었다.(웃음)

샤머니카 페스티벌 등 ‘우리 것’을 찾는 작업에 천착하셨다. 특히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 종교적인 뿌리이자 문화이기도 하면서 하나의 신앙으로 이어져왔다. 샤먼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신앙적,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한 건 아니다. 나는 무속의 형식적 측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인류문화의 뿌리가 제례 등 그 속에 있고, 공연예술의 뿌리는 의전에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갔다.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의전이 결국 신에게 제사 드리는 순서에서부터 나온다.

1961년에 내가 독일을 갔을 때 매 10년마다 한 번씩 예수님의 수난극을 하는 도시에 방문했었다. 시민들은 그 행사를 위해서 예수님처럼 수염을 기르기도 하는데, 그때 종교라는 게 어떤 것의 시초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 밖에도 인상 깊게 신을 위한 제전이 종교의 모습을 띄게 되는 곳은 인도다. 인도의 무희나 노래하는 사람들이 다 거기서 나온다. 인도의 민속춤이라는 게 발전했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인도 춤이란 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민속춤이 아니다. 스페인 춤도 마찬가지다.

▲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자 양혜숙 이사장 활동모습

또한 나는 샤먼문화를 종교제의 형식으로서 본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최초에 관극(觀劇)을 한 형태가 결국은 무엇인가 하는 데서 출발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이더라. 일찍이 선조들은 공연의 양식과 구색을 갖춘 예술을 볼 기회가 없었다. 우리 관객, 소위 군중이라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서 본 게 굿이었다.

오랜 세월 많은 핍박이 있었음에도 굿은 안 없어졌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밀려나고, 지위가 많이 떨어져도 사람들은 왜 굿이라는 거를 놓지 못하고, 무당은 왜 안 없어졌을까. 그리 내몰았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우리나라 군중심리에 뭔가 아직 뿌리 남아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그럼 굿을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굿을 보러 다녔다. 굿의 구조는 뭐고, 굿을 하면 사람들이 함께 느끼는 감정을 무엇이며, 또 굿을 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어떤 것일까.

굿의 구조를 그대로 따오면 굉장히 연극하는데 인공적으로 느끼지 않으면서 군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군중심리라는 게 결국은 그 속에 다 담겨 있는데 우리는 그거를 전혀 무시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종교제의로서 굿이 어떻게 변천했나라는 것을 살펴보면서 관객에도 초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관객의 정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또 지금은 어느 주소에 와있는지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서 이전에는 우리가 우리나라 굿만 봤다면, 다른 나라는 어떤 굿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 게 샤머니카 페스티벌이다. 우리가 가장 몽골하고 가까운 문화권이니까 1997년 몽골문화부터 시작했다.

샤머니카 페스티벌을 심포지엄과 같이 개최했는데

샤머니카 페스티벌을 심포지엄하고 같이 한 이유는 그때만 해도 사실 우리 사회는 외눈박이 사회였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나 중국 등 공산권 국가는 90년대 초반까지도 접할 수가 없었다. 독일 유학 당시 매 2년마다 심포지엄과 함께 열리는 ITI(International Theater Institute) 페스티벌이 있었다. 그것이 나한테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했었다. 1967년 귀국했을 때 우리나라 문이 딱 닫혀 있었다. 1970년대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공연예술이라는 분야의 세계는 너무 빨리 변하고 있는데 한국에 들어오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세상을 내 분야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그 창문을 뚫는 그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 ITI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ITI는 유네스코에 소속된 기관이다. 1983년인가 처음 동독의 파리인 도시 라이프찌히에서 세계도서관학회와 연극학회가 같이 ITI 심포지엄을 했었다. 나에게는 동독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난 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피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을 일찍이 1969년에 번역해 소개했다

독일 유학 후 1967년 한국에 귀국했고, 1969년에 번역본을 냈다. 피터 한트케가 1966년 <관객모독>을 발표했을 때 서양에서도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언어연극’은 삼면이 가려지고 관객은 앞면만 보는 요지경 무대, 그 뒤에서 뭐가 일어나는지 하나도 모르는 걸 거부한다. 언어 속에 다 들어가 있는데 무대장치나 삼면 벽이 왜 필요한가. 언어라는 그릇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데 왜 굳이 삼면을 가리고 관객을 속일 필요가 있느냐. 관객을 감동시키고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게 연극인데, 관객을 바꾸려면 가장 빨리 바꿀 수 있는 방법이 관객을 자극하는 거고, 자극하는 방법으로는 모욕하는 거다. 그래서 관객모독이다. 관객모독을 한다는 거는 상대방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거다. 그런데 이제는 가르치는 연극이 아니라 모독을 줘서 각성시키는 연극해야지 왜 그런 연극을 하느냐며 언어연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당시 피터 한트케를 통해서 서양 무대를 휘저을 때였다.

▲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자 양혜숙 이사장 활동모습

그런데 그거를 소개할 사람이 국내에 없었다. 인간은 사실 언어의 포로다. 우리 현실이 언어 속에 담겨 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그 속에 포로가 돼 있으면서 언어에 대한 각성 없이 산다면 사회가 안 바뀔 것 같았다. 그거를 각성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참 필요한데 당시 그것을 거의 도외시한 사실주의 연극만 하고 있었다. 연극 형식도 굳이 쓸데없는 무대장치를 하면서 할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해 소개했다. 관객모독은 연극에 문외한인 분들도 안다. 누가 번역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웃음)

한극이란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한극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고 우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사람의 격이 없어진다.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공연예술인들이다. TV와 인터넷을 텔레비전을 타고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대통령과 정치인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예술인들이 나온다.

내가 목표로 한 것은 앞으로 공연예술인들이 사회를 끌어갈 텐데 그 예술인들의 품격이 세상을 좌우할 것 아닌가. 또 그 사람들의 품격과 질 향상이 되지 않으면 사회가 가라앉을 거 아닌가. 그래서 소위 품격과 질 향상을 위해서 한극이라는 거를 하지 않으면 우리 문화가 세상을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공연예술원의 배우교육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우리 연극계 바탕에 우리의 패러다임이 없는 들쭉날쭉한 연기가 아닌, 우리나라 호흡법과 발성법, 박자감 등을 토대로 배우들을 훈련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살리는 패러다임 구축, 앞으로의 방향성과 계획은

사실 패러다임 구축은 나라가 할 일이다. 내가 한극을 하겠다고 한 거는 지금껏 본 게 많기 때문에 감히 덤벼들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려 내가 해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고민도 됐었다.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하고 25년 동안 적지 않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공연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궁무진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 발전의 바탕을 만들기 위해 패러다임을 찾아서 가장 기본을 배우들에게 가르치는 등 전방위로 애를 써왔다.

▲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자 양혜숙 이사장 활동모습

또한 한국공연예술원은 공연예술의 핵심 찾기 하는 불교의례, 궁중의례까지 하고 난 다음에 사회의 흐름을 알기 위한 다채로운 강연을 2년 좀 넘게 해왔다. 앞으로는 다시 제작하는 쪽으로 심포지엄을 몰아서 오는 5월부터 시작한다. 관객교육 역시 진행한다. 관객의 관극 수준이 높아지면 연극하는 사람들이 아무렇게 만들 수는 없게 된다.

정리하자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패러다임이라는 중심축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 기본은 한극으로 그대로 유지를 하고, 대신 AI 등 세상이 얼마나 빨리, 많이 바뀌는가. 세부적인 부분들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가늠하는 세미나, 심포지엄 등으로 유연하게 방향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첨신(正確添新)’의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너무나 잊어버리고 사는 게 지금은 첨단과학의 시대다. 앞으로 생활이 정확첨신으로 가야 이 세계에서 살아남고,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연예술에도 정확첨신 사상을 접목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제11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공연예술, 학술) 수상자 양혜숙 이사장 활동모습

공연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계산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정확하고 앞서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분야다. 이를테면 한국과 일본 공연예술계를 지금 휩쓸고 있는 게 뮤지컬이다. 뮤지컬에서 서양 사람들 특히 미국 사람들이 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얼핏 보면 그저 잘 만든 웰메이드 플레이로 보이지만, 그들은 관객의 심리 변화와 상태까지 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작품을 만든다. 거기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같은 걸출한 작곡가들이 새롭게 첨가돼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작품을 만들 때 첨신 사상을 갖지 않으면 앞으로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한극의 전당’ 짓기가 실현됐으면 한다. 건축 자체는 굉장히 큰 그릇이다. ‘한극의 전당’이 세워진다면 공간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우리 것을 담고, 세계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가시적인 계획으로는 한국공연예술원은 앞으로 한극 만들기 운동을 통해 한극을 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