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으로 돌아온 국새ㆍ어보, 고궁박물관 전시
고국으로 돌아온 국새ㆍ어보, 고궁박물관 전시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2.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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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자주국가 의지 드러낸 '대군주보, 효종어보 3점 중 2점 보관돼

문화재청은 조선의 자주국가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1882년(고종 19년)에 제작한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0년(영조 16년)에 제작한 ‘효종어보(孝宗御寶)’를 지난해 12월 재미교포 이대수 씨로부터 기증받아 국내로 무사히 인도했다.

대군주보는 은색 거북이 모양 손잡이와 인판으로 구성돼 있다.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에 외교관련 업무를 위해 고종의 명에 따라 1882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종의 명이 있기 전까지 조선은 명과 청에서 ‘조선국왕지인’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으나, 고종이 ‘대(大)조선국’의 ‘대군주(大君主)’라는 글씨를 새긴 ‘대군주보’를 새롭게 만들라 명하며, 사용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고종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의 당시 조선의 정세 변화에 맞춰,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의 전환을 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새 대군주보(왼쪽), 효종어보(오른쪽)(사진=문화재청)

대군주보의 공식적인 사용 시기는 1882년 제작 이후 1897년까지로 파악되었으며,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을 임명하는 문서 날인과 갑오개혁 이후에 새롭게 제정된 공문서 제도를 바탕으로 대군주의 명의로 반포되는 법률ㆍ칙령 등에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효종어보는 거북이 모양 손잡이에 금색을 띤다. 영조 16년(1740년)에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됐다. 효종 승하 직후인 1659년에 시호를 올렸고, 1740년과 1900년에 존호를 올렸으며 이때마다 어보가 제작됐다.

▲국새 대군주보 단면(왼쪽), 효종어보 단면(오른쪽)(사진=문화재청)

현재까지 효종어보 3점 중 1900년에 제작한 어보만 전해왔으나, 1740년 제작 어보 환수로 1659년에 제작된 어보를 제외하고는 효종과 관련된 어보 2점은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한다.

문화재청은 이번 기증을 기점으로 도난된 국새·어보에 대한 안내문과 홍보 영상물을 제작·배포해 행방불명 상태인 문화재들에 대한 관심을 높여 나갈 예정이다.

한편 돌아온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오는 20일부터 내달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