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고양문화재단, 시민의 삶과 문화 잇는 든든한 다리 될 것”
[Special Interview]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고양문화재단, 시민의 삶과 문화 잇는 든든한 다리 될 것”
  • 인터뷰·정리/이은영 발행인·조두림 기자
  • 승인 2020.03.0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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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넘어 세계로 발신하는 고양發 ‘아트시그널’
지역문화 및 생활예술팀 신설‧확대…고양식 ‘문화복지’ 이룰 것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말과 글은 분명 힘이 있지만, 실현되지 않을 때 사장(死藏) 된다. 비전과 목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요직(要職)에는 모름지기 ‘노련한, 숙련된, 경험 많은’ 등의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 적임자다. 각종 시행착오를 통해 오랜 세월 벼린 안목과 노하우로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현실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다.

하얀 도화지에 누가 어떤 컬러와 구성, 소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작품의 가능성은 달라진다. 여기서 방점은 ‘누가’에 찍힌다. 세상에서 간간이 들리는 ‘일만 시간의 법칙’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도 결국 ‘전문가’라는 단어로 수렴된다. 전문가는 절대적인 시간과 경험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물질적 대가 등으로 쉽게 대체될 수 없고,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

척박한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서 근 30년 시간 동안 민간과 공공영역을 두루 거치며 문화예술 면면을 버라이어티하게 경험한 예술경영 전문가 정재왈 박사가 지난해 9월 고양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했다. 정 대표가 온 후 약 반년 동안 재단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글쟁이답게 5년 만에 기관지 <누리>를 복간했고, 재단 기획프로그램의 새로운 브랜드 ‘아트시그널’을 발표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시민들의 보편적 문화복지를 위해 지역문화 및 생활예술팀을 신설‧확대했으며, 지역문화재단 주최 공연으로는 파격적으로 19금 공연도 라인업에 올라 센세이션을 예고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양만의 예술 정체성을 찾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실현된 일이다. 재단의 시간은 지금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정재왈 대표는 고려대 졸업과 함께 한국일보 계열 일간스포츠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문화예술과 삶을 일치하려는 열정은 1995년 중앙일보로 옮겨 활짝 피었다. 중앙일보의 리버럴한 분위기에서 문화예술의 거의 전 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기사를 썼다고 했다. 2003년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현장 활동가로 변신했다. 극장경영에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인 2006년, 당시 최연소 기관장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이란 중책을 맡으면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무용인들의 복지를 돕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과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를 맡아 예술가와 예술경영 활동 지원, 문화예술 국제교류 등에 힘썼다. 안양문화예술재단과 서울 금천문화재단을 거쳐 현재 고양문화재단 대표로 지역문화행정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성균관대 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초빙교수와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주임교수, 아주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연세대 객원교수로 있다. 모교 고려대에서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19년 발간한 <예술경영이야기>를 비롯해 총 6권의 책을 집필했다.

언뜻 보기에는 일견 문화예술계에서 꽃길만 걸어온 것 같지만, 풍파도 적잖았다며 외려 많은 좌절과 상처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는 정재왈 대표를 고양아람누리에서 만났다.(*인터뷰는 정부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으로 상향되기 전 2월 20일 이뤄졌음을 밝혀 둡니다.)

지난해 9월 취임 후 숨 가쁘게 달려온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공연・전시프로그램의 새 브랜드 ‘아트시그널 고!양’부터 고양문화재단의 여러 변화들이 눈에 띈다. 특히 5년 만에 계간지 <누리>를 복간했다. ‘글쟁이 정재왈 답다’라는 인상을 받았다(웃음)

맞다. 지난해 하반기 재단에 와서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다. 고맙게도 직원들이 잘 따라와 줬다. 지난해 12월 겨울호를 발행했고, 이제 곧 봄호가 나온다. <누리>는 우리 재단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와 자세로 되살린(復刊)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이다. 모든 정보가 초스피드의 디지털 미디어로 수렴되는 오늘날,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인 잡지를, 그것도 5년 전 죽은 것을 되살리는 일이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생활의 쉼표와 같은 문화와 예술을 매개하는 재단으로서는 창조적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전통을 잇는 일이다. 종이와 활자 말이다. 계간지 형태로 〈누리〉를 되살린 이유다. 앞으로 〈누리〉를 통해 고양문화재단과 이웃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와 정보를 정성껏 담아 전달하려 한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가 올해 라인업과 고양의 새로운 브랜드인 '아트시그널'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가 올해 라인업과 고양문화재단의 새로운 브랜드인 '아트시그널'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아람누리 신년음악회 <선우예권 피아노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아트시그널 고!양’을 통해 장르별 국내 정상급 프로그램들을 선보여 재도약 포부를 밝혔다. ‘아트시그널’은 어떤 의미인지

‘아트시그널 고!양’은 고양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를 운영하는 고양문화재단 기획프로그램의 새로운 브랜드다. 고양문화재단은 국내 최정상급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아주 초창기에는 굉장히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도 좀 멀어지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게 관건이었다.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을 독려해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작품 선정에 주력했다. 그렇게 확보한 콘텐츠들을 어떤 일관성 있는 하나의 브랜드로 보여주는 것도 굉장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랜드화 하는 작업 과정에서 직원들이 계속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중에 ‘아트시그널’ 제안을 들었을 때 ‘바로 저거다’ 싶었다.

재단에 오자마자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부분이 우리가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들이 고양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지역까지 발신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 중심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그널은 어떤 발신의 이미지다. 그래서 여러 아이디어 중에 예술의 좋은 기운을 고양에서 밖으로 발신하고 확장을 하자는 의미를 가진 ‘아트시그널’이 확정됐고, 와이파이를 형상화한 BI를 채택했다.

기획대관은 ‘아트시그널 링크’라고 해서 일종의 서브 브랜드를 만들었다. 브랜드라는 게 마케팅에 좋은 방법이 되지 않나. 그런 식으로 해서 체계도 잡히고, 확실히 재단 인지도도 높아졌다. 외국 공연장 관계자들도 세련되게 나왔다고 호평하는 등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한편, 아직은 우리만의 확실한 컬러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본다. 올해 이 과정을 충실하게 거쳐 내년에는 재단만의 방향성을 가진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완벽한 시즌제는 아닐지라도 빠르게 작품을 확정해서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게 서비스하려고 한다.    

2020년 ‘아트시그널’ 라인업은 클래식부터 연극, 무용, 국악, 재즈 등 오고 싶고, 보고 싶은 공연과 전시가 많다.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우선 음악적으로는 클래식 공연의 경우 한국 아티스트로서 세계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고양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지난 1월에는 주로 오케스트라가 대세를 이루는 신년음악회로서는 이례적으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리사이틀을 선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오는 3월에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베토벤 3대 소나타를 연주하는 리사이틀 무대를 갖는다.(코로나19로 연기 추진 중) 비슷한 시기에 빈 방송교향악다 ORF 내한공연도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다. 대신 11월 모스크바 필하모닉 공연 일정이 잡혔고, 앙상블 디토로 활동하고 있는 촉망 받는 첼리스트 문태국이 협연자로 온다. 9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듀오 리사이틀 공연이 이어진다. 마티네 공연도 부활시켰다. 고양시가 클래식 공연에 니즈가 확실히 있더라. 방송인 오상진 씨가 해설을 맡은 마티네 콘서트는 4차례 공연한다.

한편 자랑거리로 앞으로 계속 또 강조하고 강화하고 싶은 부분은 고양아람누리의 소극장 새라새극장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들이다. 새라새극장은 가변형 실험극장으로 극장 형태로 보면 굉장히 앞선 공연장이다. 300석 쯤되는 객석이 여러 블록으로 나뉘어 있고 이 블록들을 다양하게 움직이면 기본 셋팅 된 프로시니엄 무대 외에 원형무대, 일반적으로 패션쇼 무대라고 하는 T자형 무대 등으로 다양한 형태 변형이 가능하다. 또, 특정한 형태를 넘어서 이 블록들을 연출자가 원하는 만큼 무대 혹은 객석으로 다양하게 변형해서 사용가능하다. 이렇다보니 여기서 다양한 장르들을 재밌게 소화할 수 있겠다 싶었고 어쩌면 큰 공연장보다도 우리의 철학, 방향성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라고 봤다. 그래서 올해 기존 연극 중심의 새라새극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장르로 확대한 ‘새라새ON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하고 프로그램의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수준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연극 같은 경우 지난해 화제가 된 고선웅 연출의 <낙타상자>를 비롯해 고양아람누리 상주단체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템플>, 스웨덴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무대에 오른다. 또한 무용공연으로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LDP무용단이 오는 5월과 7월 각각 공연하며, 국악무대는 판소리 인간문화재 신영희 명창이 만정제<춘향가>를, 재즈무대는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송영주 with Friends>를 선보인다.

올해 전시 프로그램 중 현재 오픈 한 브루클린 미술관의 근대미술 인상파 전시가 흥미롭다. 통상 해외 미술관의 작품을 들여 올 때 기획사를 통해서 하는데 이번 전시는 직접 진행한 걸로 들었다. 전시 내용과 의미를 짚어달라

어제(21일) 개막을 시작으로, 오는 6월 14일까지 열리는 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전이다. 유럽 컬렉션 중 59점(회화ㆍ조각)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모네ㆍ르누아르ㆍ세잔ㆍ드가ㆍ마티스ㆍ밀레ㆍ샤갈 등 45명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잘 알겠지만 브루클린 미술관은 미국에서 인상파 그림을 제일 먼저 확보해 소개한 곳이다. ‘브루클린 미술전’은 근대 미술사조의 짧게는 100년에서 거의 200년 이상의,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작품들을 조감할 수 있는 굉장한 블록버스터 전시다. 그간 블록버스터 전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전시기획사의 대관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입장료도 굉장히 비쌌다. 그것을 우리가 저렴하게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이 전시 외에 또 하나 기대되는 전시가 있다. 요사이 한국의 단색화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중 대표 작가인 하종현 선생 전시가 7월부터 시작된다. 고양에는 유명한 화가분들이 많다. 그 분들을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고, 그 첫 주자가 하종현 선생이다. 그분의 작품이 최근 미국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소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하 선생은 우리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로서 이 또한 큰 의미가 있는 전시다. 그 외에도 우리는 다양한 공간이 있어 지역작가와 주민들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LG아트센터와 공동 주최하는 무용공연 램버트댄스컴퍼니×로이드 뉴슨 <엔터 아킬레스 Enter Achilles>는 만취, 폭력, 흡연, 마약, 누드 등의 장면이 포함된 19금 공연이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선보이는 공연으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인데

LG아트센터는 운영국장으로 재직했던 고향이기도 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협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MOU도 맺었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같이 할까 논의하던 중, 예술이 얼마만큼 앞서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용이다. 무용은 언어가 없으니 굳이 설명을 않더라도 시각적 효과를 가지니 괜찮겠다 싶었다.
 <엔터 아킬레스>는 1995년 초연 후 전 세계 18개국을 투어하는 한편, TV 영화로도 만들어져 ‘에미상’과 ‘프리 이탈리아’ 상을 비롯한 많은 수상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양시에 오랫동안 거주하시는 현대무용가가 계시는데, 이런 작품을 내가 사는 곳에서 볼 수 있을지 몰랐다며 기대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런 시도 자체가 실험과정인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경험으로서 재단에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라인업의 공연 정보를 보면, 연극 티켓 가격이 최소 3~4만 원으로 지역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공연으로서는 비싼 감이 없지 않다

꼭 그렇게 만은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같은 공연이라도 서울에서 볼 때 보다 20~30%가 저렴하다. 재단은 양질의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가격경쟁력 있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연은 주로 대중적으로도 검증된 동시대 이슈작들을 고르다보니 예산 상황을 고려하면 더 이상 낮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대신 재단 홈페이지의 무료 회원 가입을 하게 되면 기획공연의 경우 10%는 할인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시리즈별 패키지 할인 등 관람객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할인 혜택을 개발하고 있다. 간혹 시민을 위한 특별한 할인 혜택도 제공하고 있는데 오는 614일까지 아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브루클린미술관 명작초대전 <프렌치모던: 모네에서 마티스 까지,1850-1950> 의 경우 고양시민들은 50%까지 할인받을 수 있기도 하다. 공공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재단이기에 티켓 가격 역시 가능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티켓 가격은 말씀하신대로 좀 더 고민해볼 문제다.

 ‘문화복지’를 표방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화복지를 실현할 계획인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쓰는 거창한 개념의 문화복지를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 동안 재단이 취약했던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발전시킨다는 뜻으로 썼다.
그 동안 재단은 고양어울림누리와 아람누리라는 대형 아트센터를 운영하는데 자원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만이 재단 역할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동시대 정책적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지역 문화사업과 생활예술의 활성화 등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었다. 소규모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일정한 체계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직원들한테도 이런 쪽은 재단이 취약했던 부분이고 올해는 이걸 강화하는 원년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에 조직개편을 하면서 지역문화와 생활예술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별도의 팀을 각각 신설했다. 이미 다른 많은 지역에서 시행 중인 생활예술동아리 활동을 격려하고, 장소 제공 및 발표 자리를 마련하는 등 단순 참여뿐만 아니라 외부활동 기회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문화복지의 한 방법이자, 체험과 참여를 독려하고, 시민으로서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활동이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하나의 좋은 복지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정책 사업으로는 ‘고양문화다리사업’이라고 해서 고양에 있는 전문예술단체나 생활예술단체를 위한 창작 또는 유통지사업을 올해 신설했다. ‘유통’이라는 건 우리 공간에서 발표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하고, 일련의 과정을 체계화시켜 진행하고 있다.

문화전문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했고, 일찍이 예술경영 쪽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문화예술기관 경영자로서 전문영역을 개척했다. 민간과 공공영역을 두루 거치며 문화예술계 다양한 범주와 요소요소를 버라이어티하게 경험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고 오게 된 동력이 있다면

운명이 아닐까(웃음). 그 운명은 언론사에서부터 시작했다. 우연하게 문화부를 갔고, 좋은 사수를 만났다. 지난해 12월 작고하신 원로 연극평론가 구히서(본명 구희서) 선생이 내 사수였다. 그분이 하던 일들을 내가 그대로 온전히 이어받으면서 정신도 이어받았다. 젊은 시절, 그때 문화예술에 대해 그건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탁견이라면 탁견인데 문화예술이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네 번째가 아니라 어느 순간은 첫 번째나 두 번째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몰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일찍이 했고, 그거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왜냐하면 언론사는 보통 제너럴리스트를 만들어내는데 문화에 집중해 버텨낸 것도 사실은 기적적인 일이고, 신문사까지 옮겨서 두각을 나타냈으니 결국은 운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웃음).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

운명이라지만 근 30년 시간 동안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전환점이나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거쳐 온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늘 평화의 시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취임할 때 조직 자체가 격동의 시기에 놓여있어 문제를 수습하거나 어떤 기회들을 통해 정상상태로 돌려놓는 역할이 대부분이었고, 운명이었던 것 같다.
그중 나 자신을 돌아보고 문화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재정립하게 됐던 시기는 10여년 전 서울예술단을 마친 후 공백기였다. 여러 가지 정치적 환경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개인적 존재로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문화예술계에 어떤 역할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이 사회와 세계에서 굳건해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또, 예술과 예술가를 단편적으로 생각해 왔었다면 그 시기를 거치며 복합적으로 생각하고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서울예술단 경영에서 있었던 일종의 시행착오들도 도움이 됐다. 그런 과정을 거치니까 확실히 단단해진 면이 좀 있더라. 오늘날의 나를 단련시켜줬던 그 시기가 나한테는 가장 의미 있었다.

정 대표의 철학과 가치들을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것들과 어떻게 매치시키고, 또 녹여넣을까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동안 축적된 경영 노하우로 재단을 어떻게 변모시켜나갈지 기대된다

지역문화재단의 기능과 역할은 도시 규모 및 커뮤니티의 위상 또는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인구 106만의 고양시는 광역시에 버금갈 정도의 규모와 여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수준과 욕구가 굉장히 강렬하다. 재단도 그 니즈에 맞춰서 우리만이 갖고 있는 역할과 기능들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콘텐츠 및 사업 관련 운영 철학이라면 문화재단은 공익 기관이기 때문에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한 자원 배분을 강조하고 있다. 취임식 때 강조했던 말이 공공에 봉사하는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였다. 재단 직원들은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익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일을 함에 있어 정직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또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조직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우리 조직이 건강해지고 또 우리 기획자들이 제작 능력까지 갖추게 되면 고양문화재단이 세계를 향해 ‘아트시그널’을 보내는 문화예술의 발신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지역이 곧바로 세계 다른 어느 곳과도 다 연결될 수 있지 않은가. 문화예술도 글로벌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세계를 향한 콘텐츠 생산기지로서 가능성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재단이 주민들의 '다리'역할을 하겠다 했는데, 끝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당부하는 한 말씀 해 달라.

앞서 말씀드렸듯이 올해는 본격적으로 저변에 있는 우리 시민들과 만나는 활동들을 사업적으로 설계하고 시작하는 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을 듣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재단에서는 사업별로도 그런 부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거버넌스가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할 계획이다.
재단이 잘못하면 지역사회에서 섬이 된다. 고양문화재단은 앞으로 소통이 끊긴 섬이 아니라 충분한 기회 마련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화적 휴양지로 도약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