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의 밤, 천천히 걸어보세요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의 밤, 천천히 걸어보세요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0.03.1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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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벌써 몇 달째 격리 아닌 격리 중.. 병원이나 시설에 강제 격리되었는지, 집에서 자가 격리 하던지, 심리적으로 격리 되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린 몇 달째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주변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격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가장 확실한 예방법인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만남을 줄이고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은 피하는 생활로 낮 시간 뿐 아니라 저녁모임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 상황에 내게 생긴 새로운 취미는 밤 외출. 처음엔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걷기 시작했는데, 그도 지겨워져 차를 타고 여기저기 누빈다. 평소에 혼잡하기로 이름나 있어 피해 다녔던 곳들을 가보며 이 사태로 달라진 도시의 모습이 매우 생소했다.

먼저 발견한 신기한 경험은 한강변을 걷다보면 보이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몇몇 교량의 조명에서 시작되었다. 만들어진지 오래되어 후에 조명이 덧붙여진 교량들 -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 동호대교 등- 은 밤늦은 시간까지도 교통량이 많다. 또 이들의 조명은 교량설계 처음부터 조명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교량 하단부 구조체에 수평방향으로 설치된다. 교량 위를 오가는 차량의 불빛을 제거하고 이들 다리의 조명을 볼 기회가 없었는지 최근 이들 다리의 조명이 달라 보였다. 교량의 형태적 특성과 어우러지지 않는 디자인, 효율이 떨어져 보수가 필요한지 희미하게 보이는 빛의 질, 또 광원이 그 수명을 다해 제각각 색을 내고 있는 것 등.

그동안 교량 위의 꼬리를 문 차량의 조명 때문에 눈에 뜨이지 않다가 차량의 불빛이 뜸해지면서 눈에 들어 온 건지, 도시가 전체적으로 어두워지면서 드러나게 된 건지 아니면 우연히 지금 이 때, 조명기구 혹은 광원이 그 수명을 다 한 건지 알 수는 없다.

차를 타고 나서면 몇몇 대기업이 재택근무를 실시한다 해도 대중교통 보다는 개인자가용을 이용하게 되는 상황이라 출, 퇴근 시간 교통량이 크게 줄어든 것은 모르겠지만 출, 퇴근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급격히 도로가 한산해지고 주위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평소 꽤 밝다고 생각했던 도로가 차와 건물로부터 나오는 불빛으로 이렇게까지 밝았었나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다. 혹시 가로등이 스마트 시스템에 의해 광량을 자동적으로 줄어든 건 아닐까 하는 전문가 적인 의심도 해본다. 동시에 어쩌면 도시조명 전문가들이 생각했던 도시의 이상적인 야간 경관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건축 내부에서 나오는 불빛과 가로등은 좋은 조화를 이룬다. 휘도가 높고 움직임까지 현란한 자량의 불빛이 제거되고 나니 꽤 차분하고 은은한 질의 조명이 도시를 비추고 있다. 건물에 설치된 TV급 전광판이 자동차 불빛 없는 어두운 도로와 대비되어 눈이 부시다.

도로 조명 개선사업으로 효율 좋은 엘이디 가로등이 설치된 도로는 텅 빈 도로가 더욱 넓게 느껴지고 대로변답게 줄지어 선 고층 건물들이 영화의 세트장처럼 서 있어 - 로비에도 사람이 없다 - 순간적으로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같은 느낌마저 든다.

모퉁이를 돌아 이면도로로 들어서 삼삼오오 걸어가는 행인을 만나면 화들짝 놀란다. “이 사람들 여기 숨어 뭐하지?”

예전 뉴욕의 치안이 좋지 않았던 시절, 처음으로 외국의 밤을 경험한 그 때의 두려움과 유사하다. 낮에는 그렇게 번화했던 거리가 밤이 되면서 사람도 차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혼자 남겨진 느낌.

도시의 조명계획은 효율 우선 기술적인 분야이며 수치로 정한 기준이 절대적일 수는 없어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거기에서 거대도시 서울은 빛공해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도시 경관을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 그리고 스마트 라이팅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최첨단의 조명기술 적용 단계를 지나 도시의 구조나 역사, 문화적인 수준, 거주민 간 친밀도에 따라 수치적 기준에 의한 조명계획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인문사회학적 연구 사례를 바탕으로 이제는 ‘사회적 조명’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대국 미국이나 문화 선진국 이태리, 프랑스, 독일 등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예외 없이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경험하며 여기에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화된 도시는 모든 도시 기능에 있어서 안정되어 있다’라고 전제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적인 시간과 공간이 부정적으로 다른 의미와 모습을 갖게 되는 상황이 지속될 때 도시의 야간경관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잇을 것이며 그 역할은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런지.. 

갑자기 의료병동 조명계획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위로, 정서적 치료를 통한 물리적인 치유 등의 개념들을 도시 조명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 상황이 하루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만약 조금 더 오래간다면 저녁 산책을 하면서 - 마스크 착용은 잊지 마시고- 달라진 내 주변 감상하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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