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미스터 트롯’과 임영웅
[윤중강의 뮤지컬레터]‘미스터 트롯’과 임영웅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0.03.13 10:44
  • 댓글 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트롯열풍이다. ‘트롯뮤지컬’이 제작되고 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늦춰 질지 모르나, 트롯뮤지컬이 장르로 자기잡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트롯 세계로 이끈 건, ‘미스트롯’이란 방송프로그램이다. 이후 트롯과 관련한 또 다른 프로그램이 런칭되었고, 지금은 ‘미스터트롯’이 정점을 찍고 있다. 미스터트롯의 ‘진’은 누굴까? 결승이 있기 전, 이 글을 쓴다. 임영웅이 왕관을 쓰길 바란다. 왜 그런가? 그는 맛을 내려하지 않고, 멋을 부리지 않는다. 임영웅의 트롯은 다르다.

트롯은 ‘꺽기의 기술’인가? 이게 ‘트롯의 맛’인가? 트롯의 대부 남진은 말한다. “역시 맛을 낼 줄 아네.” ‘미스트롯’ 레전드 미션에 참여한 홍자를 보고했던 말이다. 홍자는 스스로 ‘곰탕처럼 잘 우려낸 목소리’라고 자평하며 어필했다. ‘미스트롯은 ‘트로트 맛집’이라며, 진행자 김성주는 말한다.
.
대한민국은 언제부턴가 ‘맛’ 공화국이 됐다. 지난 10년이 특히 그렇다. 2010년대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맛’이다. 단군 이래 쉐프(요리사)가 이토록 부각된 시기가 있었나? 맛집은 넘쳐났고, 심지어 ‘아내의 맛’이란 제목의 프로도 있다. ‘맛’은 음식을 넘어서, 장르를 넘어서, 사람까지 적용되었다.

과잉된 ‘맛’의 시대를 살면서, 적절한 ‘멋’의 품격이 참 그립다. 나만 그런가? 조상들은 예술에서 맛과 멋은 엄밀히 구별했다. ‘멋’은 ‘감정이입해서 대상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고, ‘맛’대상을 ‘우리 내면에 관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서적인 내용’이라고 구별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멋은 동적(動的)이고, 맛은 정적(靜的)이다.

나는, 맛과 멋을 아주 쉽게 구별하려 한다. 맛은 양성이고, 멋은 음성이다. 글자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맛은 몸으로 느끼고, 멋은 마음으로 느낀다. ‘맛 낸다’고 하고, ‘멋 부린다’고 한다. 전자는 긍정적 뉘앙스지만, 후자는 부정적인 뉘앙스다. 멋을 부릴수록 ‘멋’과는 거리가 있다. ‘참멋’이 아니다.

‘미스터 트롯’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멋’과는 거리가 있다. ‘맛’을 내는데 치중한다. 대부분의 다중이 ‘트롯의 맛’을 기대하기에 그렇기도 하다. 요즘따라 더욱 사람과 노래를 모두 ‘맛’에 견준다. 이찬원은 ‘청국장 보이스’라고 하고, ‘막걸리 한잔’이란 곡으로 영탁은 데스 매치 진이 되었다. 영탁의 보이스는 탁주(濁酒), 곧 막걸리 같아서 좋단다. 미스터 트롯의 결승에 각각 2위와 3위로 진출한 이찬원과 영탁은 모두 ‘맛’과 연관된다.
 
임영웅은 다르다. 그가 지금 ‘맛’의 영역에 있던 트롯을 ‘멋’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맛’은 대상과 자신의 직접적인 만남이다. ‘맛’을 본다는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멋’은 다르다. 대상에 자신을 이입해야 한다. 맛이 직접적이라면, 멋은 간접적이다. 10회를 방송한 ‘미스터트롯’에서 임영웅이 스스로 선택한 솔로곡을 살피자. 자신의 어머니께 헌정하듯 부른 ‘바램’을 시작으로, ‘일편단심 민들레야’,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 ‘보라빛엽서’가 영웅이 택한 노래고, 우리가 감동한 노래다. 그의 노래에는 이렇게 ‘대상’이 있다. 대상에 대한 ‘존중’이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상에 대한 관조가 아닌, 대상에 대한 이입이다. ‘이입’은 맛과 멋을 구별 짓는 잣대이자 능력이다. 맛이 정적이요, 멋이 동적이란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대부분의 트롯은 자신의 감정을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래서 트롯이 끌리고, 그래서 트롯과 거리감이 생겼다. 상대에 대한 원망(청승)과 상황에 대한 비탄(넋두리)가 트롯트의 대단한 특권이었다면 과장된 말일까? 트롯은 대개 이렇게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었다. 원망과 비탄의 순기능을 간과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과 주체는 모두 임영웅으로 향한다. 임영웅이 대단한 건, 넋두리와 청승과는 ‘음악적 거리두기’를 확실히 하고, ‘미스터 트롯’이라는 경기장에 등장한 점이다. 임영웅은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를 궁금해 하거나, ‘갈 테면 가라지.’ 하면서 체념하지 않는다. ‘보랏빛엽서’가 그렇듯, 그는 대상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끝까지 대상에 ‘이입’하는 자세를 취한다. 임영웅의 노래에는 이입하려는 대상이 있고, 이는 ‘멋’이란 용어로 풀어내야하는 미학의 영역이다.

임영웅의 트롯은 과거의 트롯과 다른 새로운 출발점이다. 비교컨대 나훈아의 트롯을 테너색소폰에 비유한다면, 임영웅의 트롯은 소프라노색소폰! 임영웅은 절절하지 않고, 담담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듣는 사람이 점차 절절해지면서 힐링하게 된다. 레전드미션에서 가수 주현미는 임영웅의 노래를 화려(華麗)하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임영웅의 노래는 화려하다기보다 미려(美麗)하다. 가사의 반복적인 음미(吟味)의 결과에서 나오는, 드러내지는 않는 ‘밀고 당김’이 존재한다.

임영웅이란 트롯트 신예를 통해서, 이 지면에서 내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말은 이렇다. “대한민국 트롯이여! ‘과도한 꺽기’를 지양하고, ‘농밀한 완급’을 지향하라!‘ ’맛의 영역에서, 멋의 영역으로 이동하라‘ 이건 또한 대한민국 트롯에 에둘러서, 대한민국 판소리분야에 꼭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