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토벤 교향곡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베토벤 교향곡
  • 이채훈 클래식 해설가/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0.03.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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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클래식 해설가·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1절) 내게 이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내게 두 줄기 빛을 주었죠, 두 눈을 떠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게 해 주고 저 높은 하늘의 빛나는 별들 속에서, 이 땅위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게 해 주었죠.

(2절) 내게 이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내게 청각을 주었죠, 두 귀를 활짝 열고 밤낮으로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망치와 기계, 벽돌과 폭풍, 그리고 내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죠.

(4절) 내게 이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이 지친 다리로 많은 곳을 걷게 해 주었죠. 도시와 진흙길, 계곡과 사막, 산과 들판을 가로질러 다녔죠. 이 다리로 당신의 집, 당신의 거리, 당신의 정원을 걸었죠.

아르헨티나의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1935~2009)가 부른 <삶에 감사>(Gracias a la Vida) 노랫말이다. 그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로 불렸다.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에 노래로 맞서던 그는 1979년 라플라타 공연 때 청중들과 함께 체포되어 해외로 추방당한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이 무너질 무렵 유랑 생활을 접고 조국에 돌아 온 그녀는 사랑하는 팬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잔혹한 군부독재 아래서 고초를 겪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살아남아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며 “삶에 감사”를 목청껏 불렀다.

종교는 “범사에 감사하는 게 행복의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신약의 테살로니카 전서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나온다. 구약의 욥처럼 아무 죄 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사람도 절대자에게 감사하는 순간 행복을 찾는다. 불교도 똑같은 지혜를 설파한다. 건강할 때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던 사람도 몸이 아프면 “몸 건강할 때 내가 엄청난 부자였구나” 깨닫게 된다. 법륜 스님은 “눈이 안 보이게 되면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고 다리 아파 못 걷게 되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며, 이 깨달음을 주니 병 걸리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설파했다.

로맹 롤랑은 “베토벤의 일생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라고 했다. 하필이면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인 베토벤에게 청각상실의 비극이 찾아오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빈에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26살 무렵부터 귓병을 앓았고, 30살을 넘길 무렵, 이 귓병이 나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윙윙거리는 이명현상이 점점 심해졌고, 높은 소리에는 몸서리가 쳐졌고, 낮은 소리는 웅웅거리며 뭉개지곤 했다. 절망에 빠진 베토벤은 32살 되던 1802년 10월 6일,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두 동생 카를과 요한 앞으로 유서를 쓴다.

 “나는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 주세요, 저는 귀가 먹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 없었어. 아!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감각, 과거에 내가 누구보다도 완벽한 상태로, 지금까지 극소수의 음악가들만이 알았던 완벽한 상태로 소유했던 그 감각이 약화됐다는 걸 어떻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아! 나는 그럴 수 없어.”

베토벤은 인간을 사랑하는 다정한 감성의 소유자였지만 청력을 잃으면서 사람들을 피했고, 어느덧 괴팍한 사람으로 오해까지 받게 됐다. “너희들과 기꺼이 어울려야 할 때 내가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것을 용서해다오. 나의 이 불행은 내겐 이중으로 괴롭단다. 왜냐하면 이 불행 때문에 나는 오해받고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인간 사회에서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상호간의 심정 토로도 할 수 없어. 나는 거의, 완전히, 혼자일 뿐이야.”  

베토벤은 침통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면서도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바로 그것뿐이었다”고 덧붙인다. “아! 내 속에서 느껴지는 움트는 모든 것을 내놓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베토벤은 결국 음악가로서 저주라 할 수 있는 청각 상실을 딛고 불멸의 걸작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 음악들은 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슬픈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이 후세에 남을 거라는 점을 자각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이어지는 유서의 한 구절은 자기 음악을 듣게 될 후세의 인류에게 보내는 베토벤의 절절한 호소였다.

“불행한 사람들이여! 한낱 그대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에 값닿는 사람이 되고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베토벤은 교향곡 5번 C단조에서 운명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승리를 선언했다. 운명과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삶을 긍정하는 그의 인생 행로는 “고뇌를 너머 환희로”라는 모토에 집약돼 있으며, 5번 교향곡은 이 모토를 들려주는 위대한 걸작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크나큰 불행 속에서도 삶의 슬픔과 고통까지 다 끌어안으면서 삶에 감사할 수 있다면 더욱 위대한 경지 아닐까. 우리가 6번 <전원> 교향곡을 다시 들어야 하는 이유다. 모두 5악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곡에서 피날레인 5악장 ‘양치기가 드리는 감사의 노래’에 교향곡의 메시지가 집약돼 있다.

베토벤은 1808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하고 있었고, 이때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이 곡을 썼다. 이 때 일과는 아침이 밝으면 일어나서 오후 2시까지 일을 한 후 저녁 때까지 산책을 하는 게 전부였다. 때로는 어둠이 내린 뒤까지 산책만 할 때도 있었다. 귓병 때문에 사람과 만나는 걸 두려워한 그는 숲속에서 마음의 자유와 평화을 누렸던 것 같다. 이 무렵 그는 “사람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숲길을 산책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전능하신 신이여, 숲속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여기서 나무들은 모두 당신의 말을 합니다. 이곳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이 감사의 노래는 태양 아래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이 함께 부르는 삶의 찬가다.

<전원> 교향곡은 인간이 자연과 좀 더 가깝던 시절의 순박한 음악이다. 월트 디즈니의 <판타지아>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고대 그리스의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의 하루로 묘사했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심심풀이로 벼락을 내리꽂을 때 인간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모른다. 폭풍우가 몰려간 뒤 무지개가 뜨면 인간은 신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베토벤 <전원> 교향곡 중 4악장과 5악장 (디즈니 만화영화 <판타지아>)
https://youtu.be/3rY7VNbaZb4

베토벤은 자필악보에 “전원 교향곡, 또는 전원생활의 회상. 묘사라기보다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써 넣었고, 악장마다 한 줄씩 설명을 붙여놓았다. 1악장은 “시골에 도착했을 때 유쾌한 기분이 눈뜸”이다. 2/4박자의 동기가 반복되며 정답고 평온한 느낌을 발전시킨다. 2악장은 ‘시냇가의 풍경’이다. 시냇물을 따라 야생동물이 뛰놀고 멀리 뻐꾸기와 꾀꼬리가 노래한다. 3악장은 ‘농민들의 즐거운 축제’다. 풍성한 과일, 달콤한 와인과 함께 농민들은 즐겁게 춤을 춘다. 4악장은 ‘폭풍’이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 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다.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고 나약한 존재인가! 잔인한 폭풍우 앞에서 인간은 이를 악물고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윽고 5악장, ‘폭풍이 지나간 뒤 양치기가 드리는 감사의 노래’다. 클라리넷, 호른이 떠오르는 햇살을 묘사하면 모든 생명이 다시 요동친다. 끝부분, 경건하게 감사의 기도가 펼쳐진 뒤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휴식 없이 연주하는 드라마틱한 구성이다. 베토벤은 5악장에서 성악을 사용할 생각도 했지만, 결국 순수 기악으로 완성했다. 노랫말이 없어도 우리는 이 곡이 ‘감사의 노래’라는 걸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전원>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2012 BBC 프롬스 연주)
https://youtu.be/aW-7CqxhnAQ

교향곡 5번 C단조와 6번 <전원>은 흥미롭게도 같은 날인 1808년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함께 세상에 나왔다.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해서 10시 30분까지 장장 4시간에 걸쳐 이어진 이 음악회는 역사적인 연주회답게 정말 장관이었던 모양이다. 베토벤이 직접 지휘를 했고 피아노를 쳤다. 6번 F장조 <전원>이 먼저 연주됐다. 파죽지세로 오라토리오 <올리브산 위의 크리스트>를 지휘한 베토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협주곡 4번 G장조를 연주했다. 2부는 C단조 교향곡으로 시작했고, 이어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환상곡> Op.80까지 내쳐 연주했다. 장내가 추운데다가 리허설 부족으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맞지 않아서 연주가 중단되는 참사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미친 듯한 열정으로 음악회를 끝까지 이끌었다. 이 어마어마한 연주회를 지켜본 라이하르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우리는 지독한 추위 속에서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그곳에 앉아, 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장점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긴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초연 당시 빈 사람들은 5번 C단조보다 6번 <전원>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5번 C단조가 운명과 투쟁하는 강렬한 베토벤의 얼굴이라면, 6번 <전원>은 인간과 자연을 한없이 사랑하는 따뜻한 베토벤의 얼굴이다. 두 곡 모두 “고뇌를 너머 환희로” 가는 베토벤의 인생 모토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6번 <전원>은 이 모토를 한층 부드러운 형태로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운명과의 투쟁과 승리도 위대하지만, 삶의 불행과 고통을 끌어안은 채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게 더 어렵고, 더 위대한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