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 잇기]코로나19가 멈춘 세상 … 사람과 사람 사이, ‘잠시 멈춤’
[박희진의 문화 잇기]코로나19가 멈춘 세상 … 사람과 사람 사이, ‘잠시 멈춤’
  • 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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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큐레이터/칼럼니스트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와는 다른 신종 코로나 사태가 대한민국을 비상사태로 몰아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혼돈이 커지면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속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한 개인의 삶조차도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손을 더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쓰며 문 밖 출입을 자제하여 경제활동을 잠시 줄이면서 자신에게는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하는 동시에 자신이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로 인해 일방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게 하면서, 전영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바이러스를 박멸하지 못한 인간의 최선의 방책으로 ‘격리’를 택한 것.

이런 개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종교단체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타인의 삶 속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종교집단으로 포섭하는 방식의 비상식적인 포교 활동이 사회적인 문제로 커져가고 있다. 개인의 믿음이 어떤 식으로 자리잡혀있건 상관할 바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키워가고 전염병을 확산시키며 이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였다면 이것은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위험요소를 지닌 이들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안이다.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믿음이 약해지는 지금 우리들의 삶이 요동치고 있다. 고립된 환경에서의 온라인과 주문, 배달은 최대 거래실적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은 공포가 되었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조직의 문화와 교육 방식은 비대면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생활습관까지도 변화되면서 누군가는 망해가고 누군가는 전염병 덕을 보며 성공의 기회를 노리는 사회적-윤리적 생태 구조까지도 변질되어간다.

한 종교집단의 신도들이 벌인 ‘나 하나쯤이야’라는 위험한 생각은 단순한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자신의 사회성을 망각하고 다른 개인들에게 끼칠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만을 챙기는 배타적 태도의 반사회적 인간이 벌일 수 있는 범죄로 보여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이 우려되는 이 시국에 전염병만이 우리사회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다. 해로운 믿음을 퍼트리는 종교집단이 바이러스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시국을 정치적 이해로 접근하려는 사람들과 비난으로 이간질하는 언론의 개탄스러운 행동은 모두를 비관적인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인간(人間)’은 자고로 혼자만은 살 수 없는 동물이기에 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사람 사이’란 뜻으로 쓰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싶어 공동체 문화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에 개개인의 삶과 문화를 이어간다는 것은 가치가 크다고 생각해왔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캠페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거리 두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떼어놓는 것으로 바이러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가장 단순한 조치가 취해진 것인데, 이렇듯 사람사이 거리 두기가 지속 된다면 인간사회 전반이 위축되고 마비되며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거리 두기’로 인한 사회변화는 예민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낯설게 하는 효과'를 근간으로 하는 연극론의 ‘거리두기’가 떠오른다. 예술의 심리치료 가운데 정신적 외상환자가 예술 활동을 통하여 기존의 외상 환경으로부터 정서적 거리를 두는 치료방식이다. 이것은 환자가 외상으로부터 정서적 거리를 둠으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모두가 고립되어 있는 지금의 ‘거리 두기’는 전염병의 공포 속에 우리의 안전을 위해 선택한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한 물리적, 생물학적 거리두기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쌓아왔던 우리사회의 신뢰와 믿음으로 정서적 거리두기를 통해 고립된 낯선 환경에서 조금 여유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전염병 공포에서 벗어나 함께 하는 데에 신뢰를 쌓고 스스로를 불안감을 치유하는 ‘거리 두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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