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무용예술과 과학의 연결고리-김성한의 ‘비트 사피엔스’
[이근수의 무용평론] 무용예술과 과학의 연결고리-김성한의 ‘비트 사피엔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4.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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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2월 첫날 공연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휴관하게 될 강동아트센터의 마지막 공연 날이기도 하다. 객석이 썰렁하다. 대부분 마스크를 쓴 관객들이 좌우로 길게 설치된 무대 좌우편에 앉았다.

무대 바닥에 조명이 만드는 4각형 공간들이 좌우로 움직이고 이 공간 안에 한 남자가 죽은 듯 쓰러져 있다. 몸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으니 죽은 것은 아니다. 죽음을 거부하듯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조금씩 앞으로 움직여가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형태를 가졌으되 의식은 기계화된 존재, 컴퓨터 정보의 최소단위 비트와 호모 사피엔스를 합성해 만든 단어가 '비트 사피엔스(bit sapiens)'다. 반은 인간, 반은 기계인 그들이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죽어갔는가? 미래형 인류에 희망은 있는가? 강동아트센터 상주단체인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김성한)가 100년 후 미래의 인간형으로 창조해낸 ‘비트 사피엔스’(2.2~3,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공연의 주제다.

비트 사피엔스는 인공적으로 태어난다.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자아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고와 행동이 지배자에 의존하고 순종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의식은 철저히 세뇌되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욕구의 뿌리와 자아의 흔적이 숨겨져 있다.

때때로 반항을 꿈꾸지만 시늉뿐이고 발버둥 쳐보지만 지배자에 맞설 힘이 그들에겐 없다. 그들은 결국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고 지배자에 의해 사용되다가 파괴되어질 운명이다. 비트 음을 내는 기계음악이 전 편에 흐른다.

간혹 옛날을 떠올리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간시대의 평화로웠던 정경을 떠올려준다.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참 인간들의 모습이 영상에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소통하며 가족과 함께 손잡고 웃으며 즐긴다. 비트 사피엔스가 회상하는 꿈속 같은 장면은 잠깐 스쳐지나갈 뿐이다.

잠수부와 같은 초록색 발광안경을 쓰고 그들은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크고 작은 육면체의 나무 상자들을 이동시키고 그 위에 올라서거나 상자 속에 몸을 숨기는 행위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제한된 반항이다. 무대 위에 명멸하는 원형의 조명이 그들을 유혹한다. 잡으려 뛰어다녀보지만 신기루일 뿐 잡을 수는 없다. 언덕을 기어오르며 탈출을 위한 발버둥이 거듭된다. 실패만이 예정된 마지막 저항이다. 흰색의 길로 경계가 지어지던 무대바닥의 4각 공간들은 이제 붉은 색으로 바뀌어 있다. 인간이 파괴되고 자연이 파괴되고 프로그램만이 존재하는 비트 사피엔스 세계의 우울한 미래가 어둡게 그려진다.

비트 사피엔스로 출연하는 네 명의 남녀 무용수(권혜란, 이주형, 최진주, 강천일)는 모두 장신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기계로 찍어내듯 미래 인간들의 체형이 규격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동작들도 표준화되어 있다. 장난감 인형에 감아놓은 태엽이 풀리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로봇공학의 발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과거의 로봇 춤 상태에서 진화하지 못한 비트 사피엔스의 움직임은 아쉬운 부분이다. 미래인간이라면 인간보다도 더 인간다운 모습으로 창조되고 인간보다 더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춤을 추어야하지 않을까.

김성한이 만드는 무대는 늘 실험적이고 주지적(主知的)이다. ‘기억의 지속’(2018)에서는 평소에 무대로 쓰이는 공간에 의자를 늘어놓아 객석을 만들고 계단식으로 된 객석이 무대로 변모했었다. ‘비트 사피엔스’의 무대 또한 특이하다. 객석과 무대를 가로지르며 스키장 슬로프처럼 경사를 만들며 객석이었던 한 쪽이 언덕이 되고 중앙의 평지를 거쳐 무대가 끝나는 반대편에 흰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변칙적인 무대만치 그가 선택하는 텍스트 역시 특이하다. 단테의 신곡(神曲), 구토(사르트르)·이방인(카뮈)·보이체크(뷔히너) 등 철학적 소설에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 그림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 상상력은 미래세계로까지 확장된다. 과학과 예술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그가 새롭게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예술의 주요한 속성이 실험이지만 새로운 소재와 실험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드는 작품,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가슴 속에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주제를 발견하고 합당한 음악과 연출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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