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상상력이 21세기 경제의 기초다”(2)
“문학적 상상력이 21세기 경제의 기초다”(2)
  • 임미성 재즈보컬리스트
  • 승인 2009.11.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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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와 재즈보컬...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역사의 만남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지금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이 8년이나 걸렸고, 친일 인사 4,370명에, 유족들의 이의신청, 법적 소송 4건,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부통령,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씨 등등의 화려한 이름들이 사전에 올랐다. 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암 장지연 선생 유족들이 소송까지 냈고, 패했다(참고로, 이 대담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뤄졌다). 무수한 설전이 오가고 있는 중심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있다. 40여 년 문학평론가로도 활약해온 임 소장을,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한 내공 깊은 실력에 우리 시조나 판소리를 접합시킨 재즈보컬 임미성 씨가 만나, 문학과 역사와 재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미성(이하 임미) 문학은 현실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지만 음악이나 미술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현실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문학보다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임헌영(이하 임헌) 어럽지만 우리나라도 7, 80년대에 많이 나왔죠. 가수 안치환을 비롯 영화배우ㆍ탤런트ㆍ연극인ㆍ미술인 등 모든 예술인들에게 있어 예술의 본질은 누구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 명작을 보세요. 다 자기 민족과 역사를 직시한 것 아닙니까?

베토벤은 자신의 독일을 무척 많이 생각했지요. 차이코프스키도 그랬구요. 피카소도 조국 스페인의 민주화를 얼마나 열망했습니까. 그것이 예술의 본질입니다. 요즘 순수예술을 하자고 하는데, 순수예술 그 자체가 편견입니다. 자기가 살아온 나라와 역사를 잘 그리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순수예술입니다.

세계문학을 보세요. 괴테, 톨스토이 등 다 자기가 살아온 나라를 위해 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흥부전ㆍ심청전ㆍ홍길동전 등 다 그 시대를 비판한 거예요. 고전문학은 훌륭하다 하면서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임미 아쉽게도 요즘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예술가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임헌 자연과학에 있어 수학이 기본이듯이 예술에 있어 문학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학이 예술사조에서 모든 사조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경제라고들 말하는데 21세기는 그냥 경제가 아닙니다. 경제 문화를 건설해야 하는 경제 문화의 시대죠.

프랑스 문학평론가 겸 사회학자인 보드리아르가 말하길, 21세기는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바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자동차 회사가 200개 있을 당시 포드사에서 T형 승용차를 1905, 6년인가 만들었는데, 미국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만든 승용차는 그 10분의 1 가격이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만에 포드사가 생산을 중단하게 됩니다. 유선형이 나오니까 T형을 사지 않고 멋있는 유선형을 사기 시작한 겁니다.

무슨 말인가. 그 전에는 상품을 대량 생산했지만 소비의 시대에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술품을 산다는 애기죠. 이제는 자동차도 예술품처럼 좀 더 아름다운 것을 사는 시대가 온 겁니다.

임미 소비의 시대에는 폭격기나 군납품까지도 예술품으로 만듭니다.

임헌 그렇죠. 기업도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에는 기초과학이 문학입니다. 경제인ㆍ정치인도 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대학 강의할 때 전자공학과 박사가 왔길래 왜 왔냐고 했더니 자신들이 전자공학의 하드웨어적인 것은 자신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문제라 했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해야 예술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21세기 경제의 기초입니다.

오늘 제목을 이것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대기업에서 문학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합니다. 21세기에 맞는 문학이 뭔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소비자 심리를 알 수 있어요.
 
임미 직접 만나뵈니 무척 부드럽고 편해 보이시는데요,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투사’라는 이미지, 선입관을 갖고 있으신데, 혹시 그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임헌 저는 투사일 때는 투사가 됩니다. 저를 만나본 사람들이 저를 만나기 전 가진 이미지와 다르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좋은 사람입니다. 착하고 나쁜 짓 못 하고….

우리 같은 사람이 정말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름다운 민족,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데 예술적?문화적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

임미 1974년 문학인 사건을 비롯해서 남민전 사건 등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는데, 이는 참여 문학의 차원에서 벌어지게 된 사건입니까.

임헌 그때 몸과 마음이 다 고생했지요. 그러나 필요했던 고생이라 생각합니다. 웬만한 지식인들은 그런 고난을 격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참 억울하죠. 제 인생이 망가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 당시 그런 사건을 겪는다는 것은 제도권 내 진입이 차단되는 것을 의미했고, 대학교수가 되거나 외국여행은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 같은 사람이 더 안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제가 할 일이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미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는 지금 그 전보다는 행복한 시대에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임헌 그렇습니다.

임미 어느 인터뷰 보도를 보면, “만년에도 바라는 것은 연구해 글 쓰는 것이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한국문학사, 특히 현대문학사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전히 그런 희망을 가지고 계신지, 세부적으로 어떤 부분을 정리하신다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임헌 한 5, 6년 정도 책을 안 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뚜렷한 것은 아닌데, 내 나름대로는 90년대 전후해서 세계사적인 대변화를 겪으면서 내가 좀 더 성숙되고 내면적인 성찰을 하는 이론으로 승화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계속 써왔어요.

벌써 20권 분량 낼 정도가 쌓였습니다. 정리할 시간이 없어요. 그동안 안 낸 것도 조금 후회도 되구요. 그동안 약간의 오만도 있었어요.

임미 저의 첫 음반도 거의 여성이 주체가 돼 있는데, 선생님 책에도 여성 평론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황진이를 멀티 예술인이라 생각합니다. 시대를 너무 일찍 태어난 불운의 아티스트죠.

저는 선생님께서 문화비평 이외에도 예술비평도 같이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독일의 아도노르는 문학가이자 철학가로서 문화비평, 음악비평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아도노르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할 텐데요.

임헌 대한히 고무적인 말입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나라 평론이 너무 어렵습니다. 평론가들이 각주 쫙 붙여서…. 그야말로 소설처럼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평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예술 비평에 대해서 항상 유혹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제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 장르별로… 우리나라 미술, 영화가 평론에 잡혀 있고, 그 외에도 음악에 대해서도 비평이 약합니다.

나는 후배들 중에 충분히 아도노르 같은 사람이 곧 나올 것으로 봅니다.

임미 문학과 재즈의 만남에 대한 선생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임헌 아주 멋진 조화라고 생각해요. 모두 열정과 상상력이 결합된 예술 장르지요. 예전에 한국에서 하루키 소설 때문에 재즈음반 시장이 활기를 띠었다고 하는데요,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재즈를 이야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임미 진중권 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임헌 대단히 훌륭한 인문학자이자 우리 시대 문화예술 비평가이자 연구가, 이론가라고 생각해요. 그의 활동을 보면 기지와 정확성, 어떤 사건을 파악하는 객관적인 정확성에 있어서는 우리 시대에 가장 앞서 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식력과 판단력, 대응력 사건에 대해 코멘트하는 대응력이 대단히 순발력 있는 비평가이고 제가 주목하고 후배이기도 합니다.

임미 오늘날 윤동주는 어떤 의미입니까?

임헌 근대 우리 문학인들 중에 동아시아 세 나라를 다 살았던 유일한 문인이었어요. 아쉽게 북경에는 없었지만요, 중국에도 평양에도 서울에도 도쿄에도 있었습니다. 이는 말하자면 윤동주를 통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

윤동주의 시에는 셰계적 보편성이 있습니다. 선량한 인간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가 윤동주 시이고, 앞으로 남북간 화합, 동아시아 협력, 세계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문학정신이기도 합니다.

임미 바쁘신데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헌 고맙습니다. 저도 오늘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임미성 재즈보컬리스트, 정리/사진 이은영 편집국장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