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시간의 궤적, 엄상빈의 ‘서른살 엄주현의 성장일기’
[전시리뷰]시간의 궤적, 엄상빈의 ‘서른살 엄주현의 성장일기’
  • 정영신 기자
  • 승인 2020.05.0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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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꽃피다'갤러리에서 오는 7일까지 이어져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영국에서는 딸과 아버지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사진이 공개되어 사회적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보여줬다. 가족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는 시기에 충무로 꽃피다갤러리에서 기획한 카메라로 그리는 자화상 가족이라는 테마의 첫 번째로 엄상빈작가의 서른살 엄주현전이 지난달 24일 사진집출판과 함께 열렸다.

엄상빈사진가 Ⓒ정영신
엄상빈사진가 Ⓒ정영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한아이가 태어나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처음 겪는 일에 주목하고 있다. 처음으로 자기이름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입학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수능시험을 보고, 처음으로 면도를 하거나, 군에 입대하고, 사회인으로써 첫 출근을 경험한 사진들이 저장해둔 시간을 펼치듯 관람자를 투사하게 만든다. 사진가아버지로서의 입장과 가치를 드러내는 지극히 사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으로 서정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첫 출근하는 날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첫 출근하는 날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흔들리는 이를 실로 감아 뺀 사진을 보게 되면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세대 간의 차이는 보이지 않고, 아들로 인해 화양연화만이 넘실거린다. 언어는 마음을 담아 표현하기에는 불안전한 그릇이다. ‘아버지가 사진으로 쓴 성장일기를 펼치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사진이 생생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걸어오고, 시간이 한꺼번에 들어가 전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아차산 축구경기장에서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아차산 축구경기장에서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처음 이름을 쓴 아들을 관찰한 작가의 시선을 들여다보자. “어느 날 이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쓴다기보다 그리는 수준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자가 이름이다, 다음날엔 사람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동그라미를 그린 후 팔, 다리 네 개를 붙여 넣는다. 귀도 있고, 눈도 있다. 심지어 눈썹까지 있으니 완벽하지 않은가? 말과 낱말을 익힐 때는 독특한 연상법을 쓴다. 양말을 가르쳐주고 뭐냐고 물으면 발양이라 하고 주유소는 기름소’, 저녁놀은 점심놀’ ....이런 식이다. 레미콘은 왜 래컨먼이라 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받아쓰기 할 때는 색칠을 색7‘로 쓰는 등 가끔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재주도 부린다사진가아버지가 아이가 성장한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한 장의 사진이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어 공감하게 된다.

처음으로 이름쓰고, 그림그리기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처음으로 이름쓰고, 그림그리기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우리나라에서도 19574월 경복궁 미술관에서 인간가족전 The Family of Man’이 전시되어 30만명이라는 관람객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순수성을 깨닫게 하는 전시로 가족사진도 하나의 훌륭한 다큐멘터리적 기능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가족사진에는 당 시대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한 장의 가족사진에서 그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와 유행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들의 첫사진 수상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아들의 첫사진 수상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사진가 한선영씨의 발문중 통과의례를 읽어보면 누가 찍고, 무엇으로 찍느냐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개인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의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다. 기록의 대상은 자녀이거나 점점 연로해지는 부모님이거나 혹은 사랑하는 대상일수도 있고, 기록의 수단도 핸드폰이건, 카메라건, 혹은 다른 무엇이든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곧 과거가 될 현재를 기록이라는 수단을 통해 더 오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의지일 것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첫 휴가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첫 휴가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우리 모두는 카메라 시선아래 살고 있다. 사진은 텍스트 없는 사회학으로 역사의 목격자이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 느낌이나, 생각이 과거를 계속편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기억은 항상 업데이트된다. 그래서 그 어떤 삶도 무관심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하는 면도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처음으로 하는 면도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엄상빈작가는 전시와 더불어 서른살 엄주현에 부쳐 아버지가 사진으로 쓴 성장일기사진집을 출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디에도 갈수 없는 지금, 한아이가 태어나 성장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는 책을 들고 방구석 여행을 해도 좋을성싶다. 첫 장을 열면 눈이 내리는 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덩이를 안고 있는 어린꼬마와 신병교육을 마친 청년의 사진이 반긴다.

 

처음 고양이를 안아보기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처음 고양이를 안아보기 (사진제공/엄상빈사진가)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된 시대에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사진가 아버지가 쓴 성장일기 속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투사하면서 어렸을 적 기억을 소환해 그물 속에 갇혀있던 시간을 건져 올리다보면 위로받고, 치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른살 엄주현' 엄상빈사진집 책표지 (사진제공/눈빛출판사)
'서른살 엄주현' 엄상빈사진집 책표지 (사진제공/눈빛출판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중심은 가족이다. ‘꽃피다 갤러리김유리관장은 카메라로 그리는 자화상 가족전시기획을 하면서 “2020갤러리 꽃피다 기획전 가족은 낸골딘(Nan Goldin)의 사진처럼 관계를 이질적이거나 배타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근하고 사적이다. 아들, 남편, 아내, 시어머니, 아버지, 부모님, 쌍둥이, 이산가족가지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작가들의 가족앨범이다고 했다.

다음전시는 오인숙의 남편은 봉산리 김씨’(58~21), 유순영의 옥희’(522~64), 김종현의 아내와 선’(65~618), 김용철의 ‘37년전, 이산의추억’(619~72), 이창환의 한비 단비이야기’(73~16), 조희철의 사랑인가 봅니다’(717~30), 마지막으로 김래희의 아빠의 색소폰은 늙지 않는다’(84~17일까지)연작으로 전시된다.

엄상빈사진가의 서른살 엄주현전은 오는 7일까지 충무로 1번출구 꽃피다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문의 070-4035-3344. 서울시 중구 필동21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