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저 산 너머’, 옹기에 담긴 마음의 씨앗
[리뷰] 영화 ‘저 산 너머’, 옹기에 담긴 마음의 씨앗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5.01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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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甕器)는 영어로도 옹기(Onggie)이지만, 우리말로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장독·시루·물항·쌀항·시루·젓동이 등 종류와 쓰임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붙는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옹기’로 통용된다.

그릇은 아니지만 ‘옹기’로 불리던 사람이 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는 옹기장수였고, 추기경이 군위보통학교 1학년 때 별세하자 어머니는 거의 평생 옹기와 포목 행상을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추기경과 옹기는 이처럼 인연이 깊다. 

지난 30일 전국 동시 개봉된 김수환 추기경의 유년 시절과 신부의 길을 걷기까지의 고민이 담긴 영화, ‘저 산 너머’에서는 추기경의 옹기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속 어린 수환은 고민이 있을 때나, 누군가가 필요할 때 옹기 속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옹기의 품에 안기듯 들어가 동그란 구멍을 통해 하늘을, 세상을 내다본다. 

옹기는 피부로도 수환을 담고 있다. 수환을 감싸고 있던 이들이 곁을 떠날 때마다, 그는 옹기 속 면에 그들의 얼굴을 그렸다. 아버지를 병환으로 보냈을 때, 형이 신부가 되기 위해 대구 신학교로 향했을 때, 어머니가 형을 만나러 길을 나섰을 때. 수환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새기며 다시금 피부에 그들을 둘렀다. 이렇듯 옹기는 안팎으로 어린 수환을 품으며 길러냈다.

수환은 찢어진 고무신을 기워 신으며 자랐지만, 형 동환에게 “우리 집은 억수로 가난한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가난을 몰랐다. 이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넘치는 애정과 올바른 가르침이 물질적 빈자리를 채웠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순한’으로 불릴만큼 착했던 김수환 추기경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고, 짚으로 만든 공을 차고 노는 평범한 아이였다. 다만 사람에 대한 사랑만은 남달랐다. 방귀 뀐 친구가 창피할까 봐 고개 숙여 맘 졸이고, 자신보다 생일이 빠른 조카와 다투다가도 조카가 울자 그 모습에 같이 눈물을 흘렸다. 

타인의 부끄러움과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얼굴 붉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의 마음속에 자리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수환의 어머니는 어린 수환을 앉혀놓고 ‘마음밭’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 마음밭에는 각자 다른 씨앗이 심어져 있다”고 말하며, 수환이 스스로 마음밭을 들여다보게끔 한다. 

소년은 마음밭 깊숙한 곳에 박힌 씨앗이 무언지 몰라 고민한다. 이웃집 누나와 혼인해 가정을 이루는 인삼 장수를 꿈꾸었지만, 먼저 사제를 결심하고 이 산을 넘어 저 산으로 향한 형과 어머니를 그리다 문득 깨닫는다. 씨앗은 ‘저 산 너머’ 마음의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저 산 너머’ 스틸컷(사진=리틀빅픽처스)

옹기의 표면에는 스스로 산 너머 세상으로 향한 소년 수환의 얼굴이 깊숙이 남았다.

어린 소년이 홀로 내딛은 용기 있는 발걸음이 모여 김수환 추기경이 걷는 길이 됐다. 추기경이 생전 가장 좋아했다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은 커다란 옹기가 되어 많은 이들을 품을 것이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한편 영화 ‘저 산 너머’는 故 정채봉 동화작가가 故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정신을 엮어냈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최종태 감독이 ‘해로’로 2012년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한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복귀작이다. 이 영화의 전액을 투자한 남상원 아이디앤플래닝그룹 회장은 불교신자로, 원작을 읽고 감명받아 영화에 투자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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