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청소년트롯 가요제? 역발상이 필요할 때
[발행인 칼럼]청소년트롯 가요제? 역발상이 필요할 때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20.05.13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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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적 성공 거두고 있는 장르 지원 앞서, 순수예술인 무대 넓히기에 힘써야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겸 대표기자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겸 대표기자

‘트로트 신트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재 대한민국은 트로트 열풍에 휩싸여 있다. 평소 트로트에는 무관심하던 나같은 사람들조차도 도저히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지난 해 한 종합편성 채널에서 시작한 성인대상 트로트 경연대회는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가히 그 열기는 폭발적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장노년층의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현재는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상파, 종편 가릴  것 없이 예능은 물론 주요 뉴스, 교양프로그램까지 트로트 가수들 모시기에 경쟁이다. 최근 경연을 통해 팬덤을 형성한 신인들이 ‘떴다’하면 높은 시청률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트로트가 현재 대한민국 대중예술 장르에서 ‘대세 중 대세’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경연대회를 개최한 종편은 상업적으로도 대 성공을 거두고 있음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대회에서 발탁된 신인들의 전국 투어는 고가의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오픈 동시 매진이라는 기록이 이를 방증한다.

청소년을 통해 트로트의 저변확대? 어디까지 확대돼야 하는 걸까?

이런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6일, 청소년트로트 가요제를 위해 2억5천만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공고문 아래에는 이례적으로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다. 공공기관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트로트 가요제를 연다는 발상자체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룬다. 문화예술계 종사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한 듯하다. 현재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트로트’에 중앙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행사를 개최한다고 하니, 비판이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문체부는 ‘2020년 대한민국 청소년 트로트가요제 지원사업 공고’를 통해 “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트로트 축제의 장을 마련해 우리나라 트로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트로트에 대한 문화적 관심 고취를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심사기준의 1순위로 가요제를 통한 트로트 저변확대’를 꼽았다.

문체부의 지원금은 광역지자체(10~50% 분담)와의 매칭 사업이다. 지자체의 예산까지 추가되면 전체 예산은 훨씬 더 늘어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트로트 경연대회는 이미 20년 전부터 민간단체 주관으로 각 지자체가 돌아가면서 주최해 오고 있다. 문체부는 그동안 후원기관으로 행사를 독려해 왔다. 그러다 올해 ‘저변확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직접 나섰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온 나라가 트로트로 들썩이고 있는데 어디까지 저변이 확대돼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트로트계의 BTS(방탄소년단)를 육성하려는 것일까?

상업적 자생력 가진 트로트 지원, 순수예술 오페라축제 예산 1/3 삭감된 현실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공연예술계는 크나큰 타격을 입고 있다. 현장 예술인들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이 코로나사태로 생계조차 막막하게된 경우도 상당하다. 당장 오는 6월부터 열리는 대한민국오페라축제 예산이 코로나사태 이후 예년의 1/3로 깎여 축제 개최마저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축제 참여 단체는 당초 책정된 예산도 축제를 꾸리기 위한 작품비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나마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해 했다.

예산이 깍이면서 지원금은 오케스트라 초청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에게 돌아갈 출연료의 액수는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정작 지원해야 할 순수예술 분야는 이미 책정된 예산을 깎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장르의 지원은 예술인들의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곳곳에서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돈 되는 가벼운 것만 찾으니 세상 경박해져, 청소년 창의력 위한 발상 넓혀야

청소년트로트가요제 공고문 아래에 달린 주요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더러 비아냥 섞인 글들도 있지만 문체부를 향한 한 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아이디 huhf***는 코로나 (재난 지원금)마련을 위해 정부가 각 부처별로 불용될 예산을 전환하도록 한 과정에서 문체부의 예산 조정 문제점을 지적했다. 계획됐던 순수예술인들의 지원금 대거 삭감의 선급선후가 바뀌었다는 것. 글에서 "순수예술 지원정책은 퇴보하고 있다"며 문체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코로나지원금으로 재정지출 전환으로 기 계획되었던 각종 예술페스티벌과 그것에 대한 정부 지출예산이 삭감돼 그 여파는 고스란히 예술인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실질적인 예로 2020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예산이 삭감돼 페스티벌의 개최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개최한다 하더라도 출연진 사례비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상업성과 자생력을 갖춘 장르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재고해 주면 좋겠다. 그 예산이 좀 더 어렵고 순수한 분야를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분들께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형평성이라도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dodorin*** 은 “국가지원사업은 상업성이 없어 죽어가는 것을 살려야 할 것들에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너도 나도 돈 되고 가벼운 것만 찾으니 세상이 경박해진다”고 일갈했다. zeroau***는 “청소년의 진정한 창의력을 위해서라면 할 일은 많다. 유행을 쫓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발상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국가기관이 할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트로트의 예술성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이런 사업은 방송국이나 기획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이미 지나칠 정도로 하고 있다”라며 비틀었다. cocomi***는 “청소년들에게 트롯트를 장려해서 어떠한 효과를 기대하는지, 왜 트롯트 여야 하는지?라고 따져 물으며 ”A4 4장 분량으로 간략히 요약해서 게시판에 올려주면 감사드린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어 청소년 국악배틀이나, 악기 재능 뽐내기 등 인재 발굴을 위한 순수예술이 더 없이 좋을텐데, 콕찝어 트롯트라니. 공무원들이 이러면 방송pd는 모먹고 사나?”라며 꼬집었다. eun0y***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노골적인 선정적인 트로트 가사가 청소년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 청소년들이 이런 노래 부르면서 자라면 야동보고 나중에는 더 자극적인 거 원해서 성착취 영상 제작하게 된다. 당신들이 책임질꺼냐? 라는 말로 격하게 반응했다. son***은 “대중들이 즐기면 그것이 진리인가? 문체부라면 고급스러운 문화로 상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짜고 이끌어야지”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시류에 편승해 상업주의로 청소년 내 몰아, 현실 직시 못하는 공무원”

일부는 트로트의 탄생배경을 들어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역사성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자.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존재하는 현 사회에서 남녀노소, 지식과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트로트가 타 예술장르를 제치고 이토록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때가 있었을까? 트로트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순수예술, 즉 기초예술은 한 나라의 문화예술의 근간이다. 소외되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문화예술을 장려해야할 문체부가 나서서 현재 성업 중인 트로트 저변확대를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현 상황에 부합하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상업적 자생력의 뿌리를 튼튼히 내린 트로트 판에 국가 기관이 지원금을 걸고 청소년들까지 본격적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대중예술 콘텐츠를 지원하는 것도 문체부 정책의 한 방향이겠지만, 시류에 편승해 청소년을 상업주의의 대상으로 내몰고 있는 현재의 정책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인정받는 성악가, 트로트 경연 참여 시사점 찾아 순수예술 위한 판 만들기에 더 힘써야

최근 트로트 경연대회를 통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출신 한 트로트 가수의 경연지원 배경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해외유학 당시 현지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국내에 돌아와 보니 설 무대가 없었다.

자신을 성악의 길로 이끌어 준 은사를 찾아가 트로트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할 때 은사의 황망한 표정이 떠오른다. 곧 이어 부둥켜 안고 쏟아내는 두 사람의 눈물 속에는 깊은 회한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제자의 선택을 존중해 줄 수 밖에 없는 은사의 모습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다.

트로트는 현재의 상업성에 맡겨둬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다. 문체부가 할 일은 민간에서 너무나 잘 차려놓은 진수성찬에 기름진 요리 하나 더 얹어 줄 것이 아니라, 배고픔에 지쳐있는 순수예술인들을 위한 소박한 밥상 하나라도 더 차리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기에 혼신을 바쳐서 갈고 닦아온 성악과 국악의, 꿈과 가치를 버리고, 무대를 찾아 떠나는 그들을 위한 자리를 하나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애쓸 순 없는가? 오히려 이런 기회에 그들이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었던 그 무대를 만들고 넓혀야겠다는 역발상은 할 순 없을까? 문체부의 이번 청소년트로트 가요제 추진은 여러모로 아쉽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문체부는 이 가요제를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문체부는 순수예술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과 관련 산업계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크게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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