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나무공장 이야기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나무공장 이야기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0.05.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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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오늘 아침 산책은 매봉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가다가 예쁜 풀꽃이 보이면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 본다. 모든 게 놀라움 그 자체다. 자연의 오묘한 질서를 새삼 깨닫는다. 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울 때쯤이면 수액을 힘껏 빨아올려 꽃봉우리를 만든다.

나무공작소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바빠지기 시작한다. 공장문을 열고 들어선 작업반장은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어디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하고는 양 손에 침을 탁 뱉고 비비며 주변을 둘러본다. ''어이, 거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일을 시작하지 않고. 어이, 자네는 어서 물동이를 들고 물을 뜨러 가야지!' 

험상궂게 생긴 작업반장은 도무지 못 마땅하다는 듯이 툴툴거리고는 면장갑을 낀다. 공장 안에는 순간 활기가 돈다. 노동자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도르레에 걸린 쇠사슬을 컴컴한 우물 속으로 내려보낸다. 그 끝에는 커다란 두레박이 달려 있다. 첨벙 소리가 나더니 두레박이 물 속으로 잠기는 느낌이 양손에 느껴진다. 이제 두레박을 들어올려 꽃나무 줄기로 통하는 관 속에 부으면 된다.

밖에서 보면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나무 안에서는 이런 활기 찬 노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밖에서 보는 저 잎새의 연한 연두색이 나무 안에 사는 노동자들이 큰 함지박에 물감을 풀어 정성스레 혼합한 노동의 결과임을 아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러면 저 예쁜 박태기의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핑크빛 꽃들은? 저 희디 흰 목련의 수려한 자태는? 저 붉은 진달래 꽃은? 희고 소담한 저 철죽꽃들은? 울타리에 가득 핀 저 노란 개나리꽃들은 또 어떻고? 도대체 이 눈부신 기적을 어떻게 다 말로 설명한단 말인가? 며칠 전에는 안 보이던 오동나무의 봉오리가 밤새 자라 그 앙징맞은 잎새를 펼쳤는데 그 기적은 대체 뭔가?

감사할 일은 이 황홀한 눈의 잔치가 올 봄으로 끝나지 않 는다는 사실이다. 내년에도 잔치는 어김없이 이어질 것이며, 후년에도 질리도륵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연은 질서있게 되풀이되며 순환의 수레바퀴는 아무 탈 없이 굴러갈 것이다.

▲1년동안 모은 비닐봉투의 현재 모습으로 재가공전이다(사진=윤진섭 제공)

그러한 자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늘어나는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품종을 개량해야 하고 농약을 써서 해충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해충만 죽으면 되는데 해충을 먹고 사는 또 다른 벌레들이 굶게 돼 덩달아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자연의 먹이 사슬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노자가 말한 것처럼 자연의 근본원리인 질서에 금이 가게 되고 종국에는 우주의 운행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지구촌의 대재앙인 코로나19 이후 공기가 맑아지고 썩지않는 플라스틱과 비닐제품 등 쓰레기가 줄었다 한다.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 나부터 비닐봉투를 버리지 말자는 생각에 집에 배달돼 오는 비닐봉투를 모았다가 뭉치는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실을 사진과 함께 얼책(facebook)에 올렸는데 많은 얼친들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달았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잘 한 짓이리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비닐이 완전히 분해되는데 걸리는시간은 20년이라고 한다. 전에 어느 신문에선가 본 사진 한 장이 뇌리에 떠오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해안에 플라스틱 류의 쓰레기가 밀려와 산더미처럼 쌓인 광경이다. 그 엄청난 양을 보고 기절할 만큼 놀랐다. 나 한 사람이면 괜찮겠지 하고 버린 것이 대재앙이 된 것이다. 지구온난화 현상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으니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니다. 비닐봉투 모으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코로나19 이후 전시가 취소되거나 급격히 줄면서 비닐봉투의 양도 줄게 된 것이다. 팜플렛이나 엽서, 도록의 양이 십분지 일도 않될 만큼 줄었다. 중국에서 공장 가동이 중단돼 서울의 하늘이 맑아졌다는 이야기도 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 확인은 안 해  봤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우주가 지구촌에 보내는 경고음은 아닐까? 생태의 위기는 이제 지구촌 전체의 의제로 떠올랐다. 그 누구도 시대가 부여한 이 의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