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미나유의 ‘BODY ROCK’
[이근수의 무용평론] 미나유의 ‘BODY ROCK’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5.1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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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현대무용가 미나유의 ‘BODY ROCK’(2.19~20, 아르코 대극장)을 보았다. 지난 해 가을 ‘구토’를 통해 인간실존의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 살아가야할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했던 미나유가 5개월 만에 내 놓은 신작이다. 2020 무용창작산실지원을 받은  60분 작품을 통해 미나유는 이 시대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주제의 무거움과 달리 작품은  이태리 명곡인 ‘노노레타(Non ho l'eta)’의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된다. 

무대 한 편에 축조된 목조 구조물들이 도시의 형상을 상징한다. 사람들이 그 앞에 펼쳐진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두명 세명 자연스럽게 모여진 그들이 건물 위에 올라타고 구조물들을 조금씩 변형시키기 시작한다. 처음엔 어색한 관계였지만 친근함과 따뜻함이 함께하는 사회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집단이 형성되고 그들 사이에 갑을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개 줄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갑’과 채찍을 피해 움직이다가 결국은 그 아래 무너지고 마는 ‘을’로서 이러한 관계는 현실화된다. 개인적인 갑·을의 관계가 확장되면 계층이 만들어지고 사람들 간에 경계가 지어진다. 경계는 소외된 개인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외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차단벽이다. 울타리 안에 갇히는 사람들과 이를 가두는 사람들 간에 신분과 재산과 정보의 불균형이 심화된다. 자유로웠던 삶에 가해지는 제약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사회적 선택일 것이다.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미나유가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이다. 한 부분이 겹쳐진 두 개의 정사각형이 무대 아래위로 포개진 채 보여 진다. 복합적인 사회구조를 상징하는 것일까. 뒷면 배경이 녹색에서 적색으로, 또 청보라 색으로 계속 바뀌는 사이 무대 중앙에선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독립적인 힘을 보여주는 남성(김성훈)의 솔로, 목판을 앞으로 맨 남성이 갈 지(之)자로 무대를 누비고 이를 따라가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군상 들, 오늘의 사회가 보여주는 소외된 인간의 고뇌와 다양한 인간 삶의 형태들을 은유한다. 개인화된 사람들은 방황하고 때로는 절망하며 포기한다. 그들은 독백하고 집단적인 광기를 보이기도 한다. 음향은 우울하고 조명은 낮게 깔린다. 현대인은 누구나 디아스포라를 경험하는 난민과 같은 존재들임을 미나유는 암시한다. 무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이동해간다. 각자의 모습이 다른 만치 삶의 양태도 각각이고 생각의 정도도 다를 것이다. 무대 중간 어딘가에서 그들이 만나 하나의 원을 형성한다. 무대가 밝아지고 다시 음악이 들려온다. 

미나유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외부의 환경 아래 인간성은 상실되어가지만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존재에 대한 본질적 희망을 미나유는 서정적인 이태리 칸쏘네 음악을 통해서 표현한다. 첫 번 째 노래는 16세 소녀 신케티(Gigliola Cinquette)가 부른 ‘Non ho l'eta'다. ’사랑을 하기에 지금은 아직 어리지만 기다려줘요. 언젠가는 모든 것을 드릴 게요‘. 두 번 째 노래는 솔로(Bobby Solo)가 부르는 ’Una lacrimo sul viso'다.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보지만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요’ 라는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구토‘를 통해 절망적인 한계 상황에서 “예술은 끝까지 남아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한 배려로서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미나유는 후속작인 ‘BODY ROCK’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마지막 음악인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Passion'은 미나유가 전해주고자 한 희망의 서곡일 것이다. 난해한 주제를 서정적으로 조율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준 인상적인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