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옆에서>의 일왕ㆍ전쟁 찬미
<국화 옆에서>의 일왕ㆍ전쟁 찬미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09.11.26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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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정주 <국화 옆에서>의 두 얼굴

제1장. 서정주 <국화 옆에서>의 두 얼굴

1. 해방 후 한국문학 최대의 스캔들
ㄱ. 가장 아름답게 위장된 국화
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국화
ㄷ. 무모한 시각장애인들
ㄹ. 민족 우롱 60년
ㅁ. <국화 옆에서>는 해방 후 친일문학
ㅂ. 국정교과서에서 삭제된 시

2. 어휘 분석
제1연
ㄱ. '생명파' 시인도 친일하고 전쟁 선동하나?
ㄴ. 잘못된 평가들
ㄷ. 인신어공(人身御供) 선동
ㄹ. <귀촉도>와 소쩍새

제2연
ㄱ. 천둥 먹구름과 전쟁 실황
ㄴ. 국화가 일본 왕인 이유
ㄷ. 팥쥐와 계모의 무지

제3연
ㄱ. 거울 앞에 선 히로히토(裕仁)
ㄴ. 거울 앞에 선 아마데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
ㄷ. 젊음의 뒤안길에서 일어났던 일들

제4연
ㄱ. 무서리와 원폭 투하
ㄴ. '살인자 그루누이의 향수'와 국화향
ㄷ.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무서리
ㄹ. 왜 꼭 '노오란 꽃잎'인가
ㅁ. 왜 끝 연이 '무서리'인가


1. 해방 후 한국문학 최대의 스캔들

ㄱ. 가장 아름답게 위장된 국화

서정주가 <국화 옆에서>에 그린 국화는 두 가지의 상반된 얼굴을 지닌다. 아름다운 가면과 그 밑의 악마의 얼굴이다.

속은 악마지만 가면의 표피층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의 국화는 아름답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국화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실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는 '한 송이의 국화꽃'이 이처럼 '봄부터 소쩍새'가 밤마다 구슬프게 울어서 피어났다고 제1연에서 설명하고 있다. 꽃이 핀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쩍새가 울어서 이루어지는 어떤 성과를 아름다운 국화의 개화로 찬미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긴긴밤을 눈물로 지새는 아픔의 세월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너무도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서 핀 아름다운 꽃이다.

주인이 온실에서 물 잘 주고 엄마가 제 자식 보살피듯 잘 가꿔서 핀 꽃이라면 특별히 감동받을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서정주의 국화는 그렇게 밤마다의 구슬픈 울음과 그 고통의 결과로 피어난 꽃이라기에 가슴을 울린다. 그 감동적 효과가 꽃의 미적 가치를 더욱 상승시킨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다음에 서정주의 천둥과 먹구름의 험악한 환경에서 국화가 피어났다고 설명하고 있다.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진 성과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를 더욱 아름답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엷은 커텐을 통해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좋은 그림이 걸려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자주 찾아와 친절한 말을 건네주는 일류 병원에서의 출산보다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군사들에게 쫓기며 힘들게 살아남는 아기 예수의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그 탄생 과정에 시련이 있기 때문이다. 서정주의 국화는 그런 시련의 꽃이란다. 그래서 그 감동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켜 준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이것은 마지막의 제4연이다. 여기서 서정주의 국화는 그해 겨울 첫서리가 내리자 다른 꽃들이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 죽어 자빠진 자리에서 혼자만 고고하게 피어난 꽃이라기에 더욱 아름답다는 의미로 읽히기 쉽다. 꽃 가게에서처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수많은 꽃들 속에 함께 묻혀 있는 국화였다면 그것만 특별히 감동적일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서정주의 경우는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다른 꽃들이 ‘무서리’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몰사해버린 자리에 저 혼자 강인한 힘으로 그 추위를 이겨내며 피어난 것이라기에 가슴을 울린다. 그래서 그 감동이 아름다움의 가치를 더욱 상승시킨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세계의 어떤 국화도 이처럼 아름다운 수식어로 장식된 국화꽃은 없다.<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