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행정인의 고객과 예술인의 고객이 같을까?
[장석류의 예술로(路)]행정인의 고객과 예술인의 고객이 같을까?
  • 장석류 정동극장 차장/행정학 박사
  • 승인 2020.05.1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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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정동극장 차장/행정학 박사

문화부와 서울시 문화본부에 재직하는 정부 행정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요?” 이 질문을 만나는 행정인의 대부분은 “국민이요, 시민이요.” 라고 대답을 하였다. 두 번째 질문, “당신은 고객의 기대를 어떻게 판단하시나요?” 어려워진다.

얼마 전 체육국에서 예술정책 쪽으로 발령을 받았다. 주택건축본부에서 문화본부로 온 경우도 있다.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새로운 분야에서 고객의 기대를 알기 위해 이해관계자를 찾는다. “누구를 만나면 될까요?” 협회의 대표나 업계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거나 만나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은 공식적이라는 옷을 입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행정인의 눈에 민원인의 대표라 생각되는 협회의 임원들은 부담스럽고, 이제 협회 관계자는 해당 분야 전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고객은 어디에 있을까?  

예술행정이 현실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어떤 요인에 영향을 받는지 연구해보았다. 행정인의 고객인 국민 혹은 시민의 기대는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현실에서 ‘고객의 기대’는 의사결정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재밌는 것은 당위적으로 어떤 요인이 중요한가를 물었을 때는 다행스럽게도 고객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고객의 기대는 중요하지만 행정인의 진짜 고객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상위조직, 조직대표, 직속상관으로 이어지는 계층제적 지시가 고객의 기대를 압도하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요구가 고객의 기대를 잘 읽어내면 문제가 없겠지만 무능하거나 사심이 있다면 고객과는 더 멀어지게 된다.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에 재직하는 지원기관 행정인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의 고객은 누구인가요?” 이렇게 주로 대답했다. 1차 고객은 예술인이고, 2차 고객은 시민들이다. 이 지점에서 간극이 발생한다. 1차 고객인 예술인이 만나고 싶은 고객과 2차 고객인 시민이 과연 같을까?

정치행정은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이름으로 광장과 같은 넒은 곳에서 무료공연을 즐기는 시민들의 환한 웃음을 결과보고로 남기고 문화가 있다는 공동체주의의 허상에 뿌듯해한다. 다른 날은 문화가 없는가? 창작지원 혹은 공익이라는 이름의 지원사업들이 시민의 평균적인 눈높이를 만족시켜야한다는 행정의 강박은 도전해보고 싶은 창작 작업이 아닌 맞춰줘야 하는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향유에 대한 평등성이 왜곡될 경우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제약할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행정인은 자신의 눈높이를 시민의 평균이라 가정하는 경우가 있다. 현장에 와서 맥락 없이 어렵다고 한다. 어려운걸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예술적 의사결정의 대안도 없다. 본인이 재미가 없으면 시민들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이런 대사를 친다. “이렇게 세금을 쓰면 안 되잖아요?”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문화예술 공유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미스터트롯 같은 대중예술 영역은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된다. 전국노래자랑도 전국을 돌면서 하고 있다. 그래서 행정이 대중음악을 직접 만날 필요는 없다. 알아서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떤 공공극장으로 가야할까? 다양한 우리시대의 마음이 문화예술 공유지에 투영되고 있는가? 기획인과 예술인이 만나고 싶은 고객은 자신의 예술을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시민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시민들이 존재한다. 예술인이 모든 시민을 만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재미없다는 이유로 연극이나 무용을 찾지 않거나, 무료티켓을 주어도 가지 않는 시민들도 많다. 그런 시민들을 무리해서 연극이나 무용을 보게 하는 것이 문화가 있어 보이는 정책목표가 되어야할까? 남산예술센터나 아르코예술극장의 작품을 꾸준히 찾는 관객은 시민이 아닌가? 반문해 볼 수 있다.

행정이 예술을 만날 때, 고객은 누구인가? 기획인과 예술인이 만나고 싶어 하는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두면 된다. 행정이 예술을 만났을 때, 고객을 “시민이요, 국민이요” 라는 잡히지 않는 대중의 평균적 눈높이에 맞추려는 강박이 심해질 때, 다양성을 해치고 표현의 자유의 유리천장을 만들게 된다. 기획인과 예술인이 더 고객을 깊고 자세히 안다. 그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이들이 고객이 되어주는 다양한 시민들과 다채롭고 깊게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행정은 개인의 창의가 다양하게 뿌려지고 키워질 수 있는 물이 흐르는 좋은 정책적 토양을 제공하는 책무를 다하면 된다. 그러면 굳이 문화가 있다고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나와 우리가 예술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문화국가로 익어갈 것이다.  

*이번호 부터 '장석류의 예술로(路) 칼럼이 연재됩니다. 예술인과 기획자, 행정인들간의 문화예술을 대하는 간극을 그의 성균관대 박사 논문인 『문화행정의 가치충돌에 관한 실증연구』(2020)를 토대로 쉽게 풀어낸 글입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