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목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나의 흐름”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목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나의 흐름”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5.14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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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요 만나면서 음악 간의 교집합 느껴
한국적인 멜로디로 정서적 공감 담아낼 것

“한계는 무너졌어 내 길을 갈 거야 시도하기 전엔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초록마녀가 남들이 정한 규칙에서 벗어나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야기, 뮤지컬 <위키드>에 등장하는 ‘Defying Gravity’의 가사다. 

초록 피부를 가진 엘파바는 남들에겐 없는 ‘색깔’과 ‘능력’을 가졌다. 남들과 다른 ‘색깔’은 엘파바를 끌어내렸지만 ‘능력’은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의 요구에 따르길 거부하자, 세상은 그의 능력 위에 색깔을 뒤집어씌우며 사악한 마녀로 몰기 시작한다.

권력과 손을 잡으면 안전할 것을 알지만, 엘파바는 외롭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답이라 믿는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다. 모든 걸 잃고 추락할 수도 있지만, 그는 자신을 믿고 마침내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른다.

이정표는 국악중, 국악고를 거쳐 가야금 전공으로 서울대 국악과를 수석 입학·졸업했다. 서울대 국악과 재학 시절 MBC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제1회 한국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음악계로 발을 넓혔다. 드라마 ‘풀하우스’,‘대조영’, ‘바람의 나라’와 영화 ‘늑대의 유혹’,‘올드미스 다이어리’ 등에서 작사·작곡·노래 등의 활동을 해왔으며 리쌍, 김종국 등의 음반에 참여했다. 2016년에는 팻 메스니 밴드의 베이시스트 린다오와 함께 뉴욕에서 작업한 1집 앨범 Milestone을 발매했으며 마스터피스라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연주자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정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는 ‘능력’을 가졌고 그가 가진 능력의 ‘색깔’은 평범하지 않다. 국악을 전공했지만 이정표는 정통 국악인으로 통하지 않으며, 가요제 입상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름 앞에 가수 타이틀이 붙지는 않는다. 대신 ‘크로스오버 싱어송라이터’라는 다소 낯선 이름으로 불린다. 

가야금을 연주하며 가요적인 창법을 가지고 노래하는 그는, 국악과 가요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던 중 1920~1940년대 여성 가수들의 음악을 만났다. 이도 저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고민하던 중 국악과 가요의 중간 지점에 있는 그 시대 음악을 들으며 큰 매력을 느꼈고, 자신이 하는 음악에 대한 확신도 가지게 됐다. 만들어진 음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향하는 이정표 싱어송라이터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11회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린다. 상을 받은 소회와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문화투데이에서 연초에 상을 주신 덕분에, 한해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올해 마흔이 됐는데 지금 나이에 상을 받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보통 지금보다 이전 혹은 이후에 받는 경우가 많으니까. 예술 활동 중간 지점에서의 이번 수상은 나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됐다.

서울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현재는 온라인으로만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5월부터는 대면 강의 진행 예정이지만, 여러 변수가 있어서 아직은 집에서 머물면서 여러 작업을 병행하는 중이다.

▲이정표 가야금연주자의 인터뷰 모습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의 인터뷰 모습

지난 1월 수상소감으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며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나만의 영역’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처음 배운 악기는 피아노였다. 7살 정도에 피아노를 배웠고 12살에 처음 가야금을 만났다. 국악을 전공으로 삼으면서 서양음악을 동시에 배우다 보니, 필연적으로 하나의 음악에 머무는 것으로 나를 표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하다 보니 국악인, 가야금 연주자 혹은 가수와 같은 하나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만의 영역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는 이 소외감 역시 계속될 것이라 여겼다. 음악을 하는 이유는 어떠한 목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나만의 흐름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기조는 서양의 것을 흉내 내지 않고 한국인이 할 수 있는 한국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국악은 보수적인, 소수의 음악이기 때문에 ‘다름’이 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야금을 하면서 서양음악과 크로스오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보컬리스트 중에서는 많지 않다. 나는 가야금을 전공했지만, 보컬 쪽에선 가요를 더 많이 불렀던 사람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충돌이 있었고, ‘(가야금을 하면서) 가요처럼 부르면 안 되나?’ 이런 생각들로 고민도 했다. 그러다 옛 가요들을 만나면서 음악 간의 교집합을 많이 느꼈다. 엄청난 포부를 가지기보단,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연주자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옛날 노래는 석사 논문 <일제강점기 여가수들의 가창법 비교 분석>을 쓰면서 처음 접하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일제강점기 여가수들의 음악이 궁금해진 계기가 있는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사이에 보컬 강의를 처음 시작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원료를 찾게 된다. 최초의 한국 가요를 찾다 보니 일제 강점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가요는 어떤 걸까 궁금해 하며 들어봤는데, 음악을 전공한 나에겐 그 음악이 익숙했다. ‘이 시기가 최초의 가요이자, 국악과 가요가 맞물려있는 마지막 시대구나’라는 판단이 들었고 더 관심을 갖게 됐다. 

논문을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의 노래뿐만 아니라 여가수들의 가창법을 비교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초창기 가수들의 원류부터 지금 가수들이 서양의 무엇을 따라 하고, 우리 것의 무엇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시대 여가수들에겐 국악적 창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국악과 서양의 재즈가 만나서 새로운 발성의 새로운 창법이 나왔고, 그건 아직도 유효하다. 

단순한 관심이 음악 세계를 구축하게 된 바탕에는, 그 시대 여가수들에게 느낀 ‘동질감’이 있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동질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노래를 들으면, 이 가수가 노래 부를 당시 가졌던 생각이 조금은 느껴진다. 그 당시 여가수들의 노래에서는 혼재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같은 경우에는 원래 소프라노 성악가였다. 그가 배운 음악과 부모에게서 온 민요적 요소가 만나 여러 가지가 섞인 창법으로 부르는 게 노래를 들으면 느껴진다. 기생 출신의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들어보면, 기생 공부를 하며 배운 정가(正歌)나 민요 창법을 기본으로 서양의 빅밴드 노래를 흉내 내려는 시도가 보인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연주자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의 공연 모습

이것은 내가 가요적인 창법을 가지고 국악과 크로스오버 할 때 느끼는 것들이기도 하다. 잘 알고 있는 국악적 어법을 가요의 발성으로 녹여서 부르기 위해 고민하는데, 혼란함을 느낄 때도 있다. 결과물이 좋았을 땐 기분이 좋지만, 원하는 방향대로 나오지 않았을 땐 어중간한 짬뽕 음악으로 들린다. 내가 가지는 혼란을 그 시대 여자들의 음악에서 봤다. 어떤 곡은 되게 듣기 좋지만, 어떤 곡은 갈팡질팡하는 것이 보이더라. 이런 음악적 고민 속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내가 하는 노래의 가치가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음악처럼 보여, 멋있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당시 여자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큰 매력을 느꼈고, 내 음악에 대한 확신도 가지게 됐다.  

지난해 강원도립극단의 연극 ‘월화’에 참여했다. 주인공 이월화(조선 최초 여배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이정표의 음악(개화기 시대 여가수의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자 예술인들이 천대받던 시대였고, 주인공 이월화의 인생사는 불행했다. 연극 ‘월화’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예술인 여성의 인생을 따라가는 내용이기 때문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는 내내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자체였다. 작품 ‘월화’에서 사용된 음악은 제가 지난해 발매한 ‘경성살롱’에 실었던 음악에서 대부분 활용한 것이다.

논문에서 ‘기존 서양 성악 위주의 호흡법, 발성법 및 공명법 연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초창기 가요와 성악은 너무 다른 영역이다. 성악 콩쿠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리’다.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쉽게 아름답게 좋은 발성으로 내는지가 관건이고 비음은 감점 요소가 된다. 반대로 가요는 비음을 매력적으로 활용하는 가수들이 많다. 

‘기존 서양 성악 위주의 호흡법, 발성법 및 공명법 연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표현은, 원류를 서양 성악 벨칸토 창법에 두고 그 기준에 맞춰 가수를 평가하면 안 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가요와 성악의 평가 기준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베이스에 깔린 건 국악이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음악의 메인 컬러는 경성음악으로 보인다. 

앨범마다 여러 가지 장르와의 협업이 있었다. 1집에서는 뉴욕 재즈 작업을 했고 그 이전엔 가요를 부른 것처럼, 경성 시대 음악도 하나의 테마이다. 

이번 ‘경성살롱’ 앨범의 컨셉은 ‘복원’이었다. 클래식한 음악은 지나온 시간만큼 많이 연주되지만, 연주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1920~1940년대 음악을 재해석한 곡들은 많이 봤지만, 그대로 복원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제 식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매력적인 창법을 복원하고자 했다. 복원한 창법으로 부른 결과물에 대해 나도 만족스러웠고, 다행히 대중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국악을 전공했고, 가요를 부르는 사람이니까 그 시대의 노래를 복원하기에 굉장히 적합한 캐릭터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굉장히 유리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에도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다. 처음엔 단순 업로드였다면 지금은 직접 제작한 게시물의 비중이 훨씬 큰 것이 한눈에 보인다. 

지난해 ‘경성살롱’ 활동할 때까지만 해도 활동을 저장하는 용도였는데, 최근에는 여러 시도를 많이 해보고 있다. 조금 서툰 실력이지만 촬영부터 편집까지 혼자 하고 있다. 지금 구독자가 800명 정도인데, 1,000명이 넘으면 라이브가 가능하다. 그때가 되면 라디오처럼 활용해, 작은 이정표 음악 채널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채널 게시물 선곡 테마는 ‘오늘의 음악’이다. 오늘 노을이 너무 예뻤다면, 그걸 보고 떠오르는 노래를 연주하는 식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연주자
▲서울문화투데이 젊은 예술가상 수상자 이정표 가야금 싱어송라이터

유튜브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경성살롱’ 음악을 듣고 팬이 된 분들은 그런 종류의 음악만 찾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요나 팝을 올려도 좋아해 주시더라. 반대로 평소 즐겨듣던 음악의 커버 영상을 보러 채널에 방문했다가, 내가 하는 음악을 감상하는 젊은 친구들도 있다. 

해보지 못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음악은 어떤 게 있나

좋은 곡을 남기고 싶다. 시대나 유행을 너무 타지 않는 한국적인 가요를 만들고 싶다. 꼭 가야금이 들어가야만 한국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이라는 문화권의 나라에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생각들, 공감할 수 있는 멜로디를 담은 곡을 만들고 싶다. 외국곡을 흉내 내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를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 

또 하나는 25현 가야금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연주곡을 만드는 것이다. 어려운 의도를 담지 않고도, 가야금이 내는 소리기에 자연스럽게 한국적일 수밖에 없는 곡을 남기고 싶다.

나다운 생각을 표현하고 나에 가까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짙다. 무엇을 위하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들 수 있는 멜로디, 쓸 수 있는 가사,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가장 자연스러운 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개인적인 꿈은

‘인생이란 끊임없이 내가 아닌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아닌 더 좋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봤다.

오랜 시간 혼자 음악 생활을 해왔던 터라, 사람들과 협업하고 부딪히면서 사는데 미숙하다. 혼자 하는 작업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게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예술적으로도 유기적으로 협업하고 관계를 맺었을 때 더욱더 풍요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성공, 명예를 향해 달렸지만 그걸 이뤘을 때 노력만큼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것보단 나를 좋아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이든 휴식이든 즐기고 싶다. 예술적으로 국한된 것이 아닌 삶의 전반에 걸쳐 바라는 바다.

가까운 목표로는 유튜브 구독자 1,000명을 달성해, 라이브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또 하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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