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시작품 관리 소홀 심각, 대책 시급하다
[단독]전시작품 관리 소홀 심각, 대책 시급하다
  • 김지현 기자
  • 승인 2020.05.1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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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들어오는 전시장과 습기 찬 바닥 설치, 관람객 훼손 등 잇달아
김구림 작가 80년대 작품 2점 파손, 보험가 책정 결과 작품 재료값 수준
전문가 “미술관 내 보존 전문 인력 부재 일침, 시장논리로만 작품 가치 판단된 결과”

공공기관 내 미술품 관리 소홀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하 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원로작가 김구림의 작품 2점이 미술관 측의 부주의와 전시장 관리 소홀 등으로 파손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작품 한 점은 햇빛이 들어오는 전시장 바닥에 설치돼 파손됐고, 다른 한 작품은 관람객 접촉으로 크게 손상됐다.

미술관 측의 작품 관리 소홀과 미숙한 대처 역시 큰 문제지만, 사후 보상절차 또한 도마에 올랐다. 미술관 측은 파손된 작품의 보상가 책정을 보험사에 의뢰한 결과 김구림 작가의 1981년 작품은 재료값 수준으로만 책정돼 또 다른 논란을 키웠다. 작품의 시가책정은 전문기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의뢰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팔괴’展에서 김구림 작가의 작품 '돌과돌'이 전시돼 있는 모습(도록사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이번 사건은 공공 전시기관(미술관) 내에 전문인력 부재 및 작품관리 소홀, 미술품 시가감정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관리ㆍ보전하는 전문 공간에서의 미술품 파손은, 작품 파손을 넘어 작가의 명예까지 실추시켜 심각한 상처를 입힌 것이다. 사건의 전말과 관련 분야 전문가의 부재 문제, 미술품 시가 책정 현실까지 살펴봤다.

“미숙을 넘은 무지...햇빛과 물에 의해 작품 파손, 벽에 걸린 작품 일부 찢겨”

지난달 24일 김구림 작가는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2019,10.01~2020.02.09) 장욱진미술관 ‘양주팔괴(揚州八怪)’展에서 자신이 작품 2점이 파손된 상황을 전하며, 미술관의 작품관리 행태를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진행된 작품 보상가의 책정 결과를 보고 더욱 참담한 심경이 됐다.

김구림 작가는 “지난해 10월 5일 런던의 실험음악 공연을 위해 내가 없던 상황에서, 전시 출품작을 미술관에 미리 전달했다. 전시 오픈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이후에 전시장을 방문했는데 1981년대 제작한 사진(인화지) 작품 2점은 벽에, 1점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쪽에 설치돼 있었다”라고 당시 전시장 상황을 설명했다. “햇빛이 작품에 최대의 적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라며 미술품 관리와 설치 등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미술관에서의 비전문적인 대처를 강하게 질타했다.

미술관 측의 부실한 작품 관리와 부주의가 작품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으로 드러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전시회 출품 작품 3점 중 2점이 파손된 것이다. 파손된 작품에 대해 김 작가는 “물에 젖어 우글우글하게 돼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했고, 벽에 걸린 작품은 일부 찢어졌다”라고 밝혔다.

사건 발생 이후 상황에 대해 김 작가는 “미술관에서 보험회사를 통해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에 의뢰한 감정결과는 찢긴 작품의 보상가로 보상금액이 400-600만원, 설치작품은 1000-1500만원으로 책정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술관에 제출한 작품 가격이 보험금액 보다 높아졌다 하더라도 원래 가격보다 반으로 내려, 벽에 걸린 작품은 4000만원 설치작품은 8000만원으로 책정한 것”이라며 “캔버스와 인화 가격으로 작품 가격이 산정됐다”라고 주장했다.
 

김 작가는 작품 가격 책정 결과를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처사”라며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사)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미술품 가격 책정 결과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구림 작가의 '돌과돌'작품이 파손되기 전 모습(돌과돌,가변크기,1981)(도록사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구림 작가는 “작품 설치의 기본도 안 되고 관리마저 소홀한 미술관은 말할 가치도 없고, 감정위원 역시 현대미술에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재료는 사진이나 오브제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데, 파손된 내 작품을 사진 작품으로만 판단한 것이다”라며 “사진 작품 중에서도 인화를 통해 얼마든지 다시 뽑아 낼 수 있는 식으로 취급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경우 단 하나밖에 없는 1981년도의 작품이다”라고 강조했다.

햇빛 창가 쪽에 작품이 설치된 상황에 대해  김 작가는 “내가 런던에 가있을 때 이미 작품 설치가 완료된 상황 이었다”라며 “8명의 단체전으로 전시 배치가 이미 다 정해진 상태에서, 싫은 내색도 할 수 없었다“라며 당시 심경을 술회했다. 이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전시장방문도 한번 밖에 하지 않았다. 작품을 돌려받고 보니 작품이 파손돼 있었다“라며 “작품 파손 상태를 보면 작품이 어떠한 경로로 파손된 것인지를 짐작 할 수 있는데, 밖에서 들어온 빗물에 의한 파손 같다”라며 “비가 들어와 물과 햇빛에 의해 작품이 완전히 쭈글쭈글하게 돼 버렸다. 작품을 완전히 버려 놨다“라고 작품 파손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차후 김 작가는 미술관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김구림 작가의 작품이 출품된 ‘양주팔괴’展 담당자 김명훈 학예연구사는 관리소홀로 인한 작품 파손은 인정했다. 그는 “설치 작품을 바닥에 설치했는데 바닥 습기로 작품 수축이 생겨 파손됐고, 벽에 걸린 작품은 관람객들이 작품에 접촉해 붙어 있던 평면사진이 찢겼다”라며 “한 점은 관람객들의 부주의로 손상이 일어났고, 한 점은 미술관 측 관리 소홀로 생긴 문제다”라고 했다.

▲관람객 접촉으로 파손된 작품 '돌'(사진,66.5x98x10cm,1981)'. 파손되기 전 모습(도판사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또한 “미술관 자체판단으로 사고 경위서를 작성해 보험회사에 의뢰할 당시는 조명에 의한 손상을 추측했지만, 보험가 판정을 위해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보존수복 조사팀이 파견돼 작품 손상원인을 파악한 결과 전시장소 옆 창문의 영향으로 전시장소 습기 발생이 작품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작품을 바닥에 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습기가 발생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작가가 전시장에 방문했을 당시 작품 전시 상황을 살펴봤음에도 바닥에 설치된 작품에 대해 별다른 요청 사안이 없었다”라며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다 보니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는데, 작가가 작품이 어둡다며 블라인드 올리라고 요청해 올렸다”라고 말했다.

작품파손 직후 문제해결 진행 절차에 대해 미술관 측은 “보험회사에 먼저 의뢰를 했고 작품이 왜 파손이 되었는지를 조사한 후, 보험금 지급에 대한 평가 결과가 나왔다”라며 “그런데 보험 지급금이 예상보다 낮게 책정돼, 보험금을 조금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추가 자료를 준비해 재의뢰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구림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사진=화면 캡쳐)

김구림 작가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이자 1세대 전위예술가다. 작가는 기존가치의 해체ㆍ파괴ㆍ전복을 통해 60~70년대 실험미술을 개척하고, 매체 확대를 시도해 왔다. 그의 작업은 개념ㆍ시간성ㆍ과정ㆍ행위  등을 비 물질과 물질로 시각화해 작품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 파손된 ‘돌(사진, 66.5x98x10cm,1981)’과 ‘돌과돌(가변크기,1981)’은 그동안 작가 펼쳐온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80년대 초 작품 경향을 함축한다. 파손된 두 작품의 경우 작가 고유의 작품 제작 방식ㆍ예술성, 1981년대 제작 작품으로 재제작이 불가능해 희소성이 있다. 이번 사건은 작품 파손된 문제뿐 아니라 한 평생을 작업에 전념해온 작가의 자존심과 명예에도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

과거에도 있던 작품관리 소홀 문제 대두...미술품 가치 산정방식 제고돼야

과거에도 전시회나 미술관에서 작품 관리 소홀로 미술품이 파손된 사례는 자주 있었다. 지난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미술품이 운송업체 운송 과정에서 작품 일부가 파손 됐다. 이에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작품을 대여해 준 해외 갤러리에 작품 파손의 배상책임을 져야했다. 또한 지난해 5월에는 서울역사박물관박물관 전시실의 진열대 유리가 산산조각이나 조선 영조 때의 병풍 ‘친림광화문내근정전정시시도’에 100군데 넘는 흠집이 난 일이 있었으며, 지난해 9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 제작 에트루리아 전차 바퀴가 관람객 접촉으로 손상된 경우도 생겼다.

문제가 발생된 상황에는 각각 차이가 있지만 작품 관리 부주의 문제가 크게 대두된 사안이었다. 특히 김구림 작가의 작품 파손은 미술관 측이 전시 작품의 재료적 특성을 파악해 작품을 배치해야 했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작품 배치로 작품이 파손됐다. 또한 관람 예절 및 작품 감상 에티켓 교육 소홀로 인한 작품 관리 문제까지 더해져 다른 작품도 큰 손상을 입은 만큼, 미술관 측은 무거운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작품의 가격을 재료값 수준으로 판단해 미술품 시가감정을 한 부분도 큰 문제다. 다른 활동들에 비해 복합적인 과정으로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문화ㆍ예술은 하나의 가치로만 판단될 수 없다. 특히 ‘예술 창작물’은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미술사적ㆍ사회적ㆍ경제적 가치 등 다각도에서 판단 내려져야, 작품 가치판단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 미술품의 시가책정에도 큰 구멍이 발견됐다. 미술품의 경우 시장 거래량ㆍ거래가 등과 같은 시장경제 논리와 재화적 가치에만 치중해 가치가 판단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문제가 이번 사건으로 대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예술 창작물’을 대하는 태도로까지 이어지는 점이다. 

김 작가의 작품가를 책정한 ‘(사)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 미술품 시가책정 산출방식과 평가조항 등을 문의했지만 ‘내부 사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지난해 새롭게 발족한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작품 가격 산정 기준에 대해 “작가 산출가를 바탕으로 작품 보존 상태·크기별 가격·작품성·시장성을 따져 최종 가격을 정한다”라고 공개한 바 있다.

공공기관 및 단체, 전문 인력 부재가 근본적 원인

한국미술과학연구원 최명윤 이사장은 미술관에서 김 작가의 작품이 파손된 것에 대해 “작품의 재료적 특성을 모르고 전시 한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인화 재질은 여러 가지 물질이 칠해져 수분에 치명적이다. 오브제를 바닥에 둘 때 조치를 취하고 작품을 두는 것이 기본인데, 작품 배치의 기본 개념이 전혀 없어 보인다”라며 “더군다나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작품을 배치한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사진 자료들은 자외선을 받으면 변하게 돼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선 작품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전공 학예직이 필수다. 전시를 위한 학예사만 존재해 발생한 문제”라며 “미술관 설립 목적의 기본을 작품 수집이라고 봤을 때, 수집 다음엔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고려돼야 한다. 재료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미술관 인력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작품을 보존관리 하는 전문 학예직이 있는 미술관은 3군데 정도로, 전무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가 이뤄지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라며 전문 학예시스템 부재 문제에 일침을 가했다.

재료값 정도로 김 작가의 작품 시가가 책정된 사안에 대해 “김구림 선생의 작품 값을 시장논리를 따져 내놓은 결과”라며 “캠퍼스나 인화지와 같은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가 중요하고, 재료는 나중에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일 페인팅만 그림인 것으로 잘못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김구림’이라는 작가는 행위미술이나 전위미술을 많이 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작가의 작품세계를 파악해 책정한 결과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