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파일럿의 현실적 고민 다룬 모노극 ‘그라운디드’, 전석 매진으로 성공적 출발
여성 파일럿의 현실적 고민 다룬 모노극 ‘그라운디드’, 전석 매진으로 성공적 출발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0.05.1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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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경계와 존재의 양면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에이스급 전투기 조종사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라스베이거스의 크리치 공군기지에서 군용 무인정찰기(드론)를 조종하는 임무를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그라운디드’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주인공은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장을 감시하며 적들을 공격하는 한편,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괴리에 점차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번 한국 초연은 명확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연출, 무대미술, 기술,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처음으로 모노극에 도전한 차지연은 완벽하게 파일럿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자신감과 명예로 가득한 캐릭터가 맞닥뜨리게 된 균열과 그로 인한 심리적인 변화와 영향을 누구보다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특히 이번 ‘그라운디드’는 각 디자인 파트의 협업과 치밀한 텍스트 분석이 빛을 발했다. 피라미드의 꼭지점은 하늘을 향해 있고, 죽은 자의 무덤이기도 하다. 무대는 여기서 착안해 피라미드를 구조적으로 비틀어 엎어진 사각뿔 형태로 구현했다. 

▲모노극 ‘그라운디드’ 공연 모습(사진=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그룹 일다)
▲모노극 ‘그라운디드’ 공연 모습(사진=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그룹 일다)

무대 중앙으로 모인 소실점, 피라미드 밑면이 드러난 무대는 마치 스크린 속에 있는 배우를 감시하는 듯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며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가른다. 또한 여러 각도에 위치한 조명은 무대 양 벽면에 부딪히며 다양한 그림자를 파생시키는데, 점차 분산되는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파일럿의 심리 변화를 밀도 있게 좇는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 역시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객석을 두르는 수십 대의 스피커를 구의 형태로 배치한 사운드는 드라마의 흐름에 따라 창공, 트레일러, 파일럿의 내면으로 관객들의 심상을 유도한다. 

모노극 ‘그라운디드’는 공격의 무기이자 방어의 수단으로 전쟁의 새로운 무기가 된 드론의 양면성에 착안해 하나의 존재가 가진 경계와 양면성을 다룬 밀도 높은 대본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020년 우란시선 첫 번째 기획 공연 모노극 ‘그라운디드’는 문화예술인재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해온 우란문화재단과 다년간 파트너십을 맺어 온 프로젝트그룹 일다가 공동으로 기획한 작품으로 2019년 초연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이은 두 번째 모노극이다. 

모노극 ‘그라운디드’는 오는 24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