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숙 칼럼]간송미술관 재정난과 문화가업 상속세 문제
[남정숙 칼럼]간송미술관 재정난과 문화가업 상속세 문제
  •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0.05.2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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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 남정숙 문화기획자, 본지 편집기획위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한국 문화의 자존심’ 간송미술관이 설립 82년 만에 경영난으로 소유하고 있던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문화재 보유 사립박물관의 공공성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평소에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간송 일가의 소장품이었던 문화재가 경영난으로 거래되는 것에 대해 연민과 상실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해외유출만 되지 않는다면 개인이 소장하던 문화재를 거래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대중적이거나 특별한 문화재일 경우 특별전시 기간에 대중에게 공개하면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이번 간송미술관 이슈에서는 문화재를 보유하므로 보존처리 및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사립박물관∙미술관의 공공지원의 범위와 수준에 대한 사립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가 더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 간송미술관의 숨어있는 핵심문제는 ‘문화가업의 상속세와 증여세 문제’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불거질 것이 불거진 것이다.

간송미술관의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간송미술관은 1대 간송 전형필 – 장남 전성우 – 차남 전영우 – 장손 전인건 등 3대에 걸쳐 운영되는 대표적인 문화가업 집안이다. 일본은 14대~15대, 아니 가업을 이어받은 백년기업이 수두룩한데 우리나라는 왜 3대 밖에 안된 명문이 휘청거려야만 하는 것일까?

좌,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 우.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

간송미술관을 지켜주지 못한 국민들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여론을 살피는 문체부는 간송미술관에 예외조항을 살려서 사립미술관 중 간송미술관에만 지원금을 듬뿍 주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때그때 일개 사립박물관에 예외조항을 적용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왜 우리나라에는 문화가업을 이어받는 환경이 되지 못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 도공 가문인 심수관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 간 조선인 도공 심당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로, 12대 심수관씨 이후 가문 당주(堂主)가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

2019년 7월에는 14대 심수관인 오사코 게이키치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오사코 가즈테루가 15대 심수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예인들 14대~15대 자손들까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고 왜 우리나라는 3대 이상의 도예작가도, 3대 이상의 문화가업을 물려받은 사람도 나오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상속세와 증여세 때문이다.

도예분야를 예로 들자면 도예인들이 작업을 하려면 도예공방도 있어야 하고, 대형가마도 있어야 하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전시관과 매장도 있어야 한다. 일부 도예인은 좋은 흙이 있는 산을 사야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부자가 아니라도 도예인이라면 최소한의 직업적 필수요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세 도예인이 2세에게 가업을 물려주려면 할증과세를 적용할 경우에는 최대 65%까지 세금으로 내야 한다. 만약 35% 남은 2세 도예인의 재산을 3세 도예인에게 승계를 하려고 할 경우에는 남은 재산 35%의 약 50% 정도가 상속세와 증여세로 나간다. 3세까지 가업승계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전체 재산의 17.5%만 남게 된다. 멀쩡한 3세가 가업을 물려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 산술로 이재용 상속세 탈세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기업과 문화예술 가업승계의 상속세 및 증여세의 일괄적인 부가적용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이다.

만약 현재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간송일가에게 적용한다면 지정문화재를 제외한 집, 미술관, 미지정문화재 등에 의한 상속세로 간송일가 역시 보물의 경매처리 정도가 아니라 4세 문화가업 승계가 어려운 형편이 될 수도 있다.

문화가업 승계 시 상속세 문제는 예전부터 불거져왔으나 유명한 간송미술관 때문에 드러난 것뿐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는 가업 승계를 통해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50,000개에 달하고, 독일은 가업승계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중소기업의 수는 약 500여 개 이상이라고 한다.

일본의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는 약 13% 정도에 불과하고 중소기업 중에 상속세와 증여세를 낼 형편이 어려운 기업은 세금납부 유예기간을 5년 연장해 주거나 심지어는 상속인이 사망할 때 가서야 상속세와 증여세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승계 후에 기업이 파산하면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있다.

독일은 상속세 최고 세율이 50%이나 직계가족이 가업을 물려받으면 30%로 낮아지며 할증제도도 없다. 상속인이 납부할 능력이 없으면 또 다시 감면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기는 하다. 당초에는 5년 이상 계속 경영한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1억 원의 상속세를 공제해 주었으나 현재는 3년 간 평균 매출액이 3천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가 대상으로 확대하고 상속세 ‘과세공제제도’라고 해서 일부 세금을 깎아 주는 제도도 있다. 일반 기업의 경우 100억 원까지 상속공제율을 상속재산가액의 40%로 깎아 주는 등 일자리가 부족한 시대에 가업승계로 숨통을 틔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혜택이 일반기업에게 소용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의 가업승계를 일반기업의 가업승계와 동일선상에서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문체부에서 문화예술분야의 특수성이 반영된 ‘문화가업 상속세 및 증여세’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문화예술 기업의 경우 영세규모를 면치 못하고 있거나 승계하는 재산들이 기계, 기술, 상품 등이 아니라 생계에 직결된 부동산이나 제작 및 판매 사이클이 긴 예술작품이거나 문화재, 저작권 등이다. 일반기업의 승계재산 내용과 문화예술기업의 승계재산 내용은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계의 현실을 모르는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의 가업승계를 마치 재벌들의 부의 대물림같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하고 있는 것 같다. 문화가업의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를 유예하거나 비과세해야 한다.

간송미술관 사건으로 문화가업들의 상속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요즘 지정문화제 상속세 비과세뿐만 아니라 ‘문화가업 승계 시 상속세와 증여세 비과세’가 이루어져서 14세~15세 자손들이 문화예술 가업을 물려받는 문화강국의 시대가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